한 지자체의 축제 광고(왼쪽)와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 두에인 핸슨의 작품.

지하철을 타고 가다 우연히 한 지자체의 축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녹색 바탕에 문자와 드로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드로잉이 어쩐지 낯익다. 몸매가 뚱뚱한 남녀 관광객이 뭔가를 쳐다보고 있는 자세인데 틀림없이 누군가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로 유명한 두에인 핸슨의 작품인 듯싶었다. 이상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역시 두에인 핸슨이 맞았다. 물론 조각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고 선으로 형태만 따왔다.

핸슨은 실제 사람의 몸에 석고를 발라 떠낸 다음 주조한 조각에 채색하고, 실제 옷을 입힌다. 가구 등 소도구를 배치해 실제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정밀한 사실성을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그의 전시장에 들어가면 조각을 진짜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인, 청소부나 노동자 등을 소재로 삼아 미국 사회를 비판했다. 한국 지자체의 축제 광고 포스터에 쓰인 작품 역시 1980년대에 만들어진 관광객 시리즈 중 하나다.

어느 외국계 커피 전문점의 의자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이럴 때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정확히 표절이라고 할 수 없고, 참조라고 하기엔 형태를 너무 그대로 따왔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지만 괜히 난감한 기분이 든다. 모르긴 해도 이미 작고한 조각가의 허락을 받아 사용했을 리는 없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미지를 사용했을까 궁금해진다. 지자체 축제 운영 주체와 어렵사리 통화해보니 이미 두에인 핸슨의 작품인 줄 알고 있으며 ‘참조한 정도’라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같은 날 또 겪었다. 어느 커피 전문점 앞을 지나가다 젊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뭔가 싶어 들어갔다. 뉴스에서 많이 나온 외국계 유명 커피 전문점이었다. 애초부터 커피를 마실 생각은 없었으므로 실내외를 한번 둘러보았다. 기본적으로 줄서서 커피를 사갈 것을 예상한 실내 디자인이었다. 편히 앉아 오랫동안 뭔가를 할 수 있는 의자가 아닌 나무로 된 딱딱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의자도 어쩐지 낯이 익다.

변형을 하긴 했지만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헤릿 리트벨트의 의자 디자인을 ‘참조’했거나 따온 것이다. 색깔은 전체 인테리어와 맞춰 밝은 회색이었고, 디자인은 곡선도 사용해 리트벨트 의자와 약간 다르다. 그러나 몬드리안도 소속되어 있던 네덜란드의 ‘데 스테일’ 그룹의 일원인 리트벨트의 영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리트벨트 의자는 직선과 사각형 모형의 딱딱한 나무에, 빨강·노랑·파랑· 흰색·검정의 다섯 가지 색만 사용하는 등 엄격한 디자인 원칙을 따랐다. 같은 원리로 그가 건축한 슈뢰더 저택에 잘 어울리는 의자다. 리트벨트의 의자는 너무 많이 인용, 참조되었기에 이제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래도 이런 유명한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한 걸 보니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피곤해지니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아마도 이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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