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탈코르셋(脫corset, corset-free)에 관한 책 세 권을 읽었다.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탈코르셋 인문학〉(인간사랑, 2019)을 쓴 연희원은 기호학 박사이지만 그가 꾸준히 연구해온 주제는 ‘패션 철학’이다. 지은이의 논문과 저서는 키르케고르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이 패션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복식과 나체에 대한 사유는 어떠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패션(fashion)은 옷을 입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양식(樣式)이나 유행을 뜻하는데, 그것은 개인의 순수한 자유와 개성을 표현하는 자기만족의 산물이 결코 아니다.

“언제나 외모는 정치의 전면에 있으면서도 마치 보이지 않는 듯이 여겨왔지만, 계급적·성별 불평등에 따른 외모의 구별은 필수이므로, 개인의 자유와 취향이라는 것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외모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개인적 자유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인이 전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한 내에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아랍 여성들의 히잡을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한국 여자들이 쓰개치마를 벗어던지고 맨얼굴로 자유로이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작 1920년경부터다.

패션을 통해 계급과 성을 정해주지 않으면 통치와 질서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신분 사회가 철폐되고 민주와 대중의 시대가 되면서 계급적인 여러 장벽이 사라졌지만, 남녀 간에 달리 적용되는 패션 관행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탈코르셋 운동은 그 장벽을 없애고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입자는 운동이 아니다. 여성적이라는 구실로 강제된 여성복은 여성의 몸과 행동을 남성의 시각(성적 대상화)에 맞추게 하고, 내면까지 ‘여성성’이라는 허구로 길들인다. 남성 가부장제는 “형식은 곧 내용이자 사유, 사유 내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탈코르셋 운동이 “그들의 시스템에 혼돈과 파괴”를 가져오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2017년부터 여성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던 탈코르셋 운동은 2018년 내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옷 입기와 화장에서부터 성형수술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외모를 꾸미는 ‘꾸밈노동’ 일체를 거부하는 이 운동은 ‘어디서 어디까지가 코르셋인가?’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 ‘탈코’가 자신을 꾸미는 일에서 다양한 성취를 얻기도 하는 여성 개개인의 자율성을 빼앗고 획일화를 강요한다는 페미니스트 내부의 비판을 받았다. 〈탈코르셋:도래한 상상〉(한겨레출판, 2019)을 쓴 이민경은 이 문제를 놓고 ‘탈코’에 동참한 열일곱 명의 실행자를 만났다.

이들은 탈코를 알고 나서야 “화장이 의무가 아닐 수 있음을, ‘화장하지 않기’라는 선택지도 존재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새로운 선택지는 곧바로 실천되지 않았다. “사회가 강요하는 욕망과 외부로부터 주입된 욕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나의 진짜 욕망이 한데 엉켜서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웠다”라는 망설임의 고백은, 꾸밈노동이 여성에게 자연처럼 주어진 ‘기본값’이었다고 말해준다. 여성에게 화장은 아픈 경우와 같이 특별한 사정 없이는 절대 면제되지 않는다. 탈코 선택은 각자의 자유라지만, 선택의 자유라는 똑같은 권리를 행사했음에도 탈코를 선택한 사람만 불편한 현실을 마주한다. 선택의 자유를 “선택지가 문제없이 실현되는 상태”라고 할 때, 노동자의 파업이나 사보타주(태업)에 비견될 만큼 강한 제재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탈코는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자유다.

탈코는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연인과 헤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실행자는 코르셋 상태에서 얻지 못하는 커다란 자유를 얻게 된다. 탈코는 그것의 실행자를 ‘속탈코’로 인도하는데, “‘속탈코는 외양뿐 아니라 규범적인 여성성을 만들어내는 내적 기제”마저 벗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남성 가부장제가 여성의 외형을 강제하려고 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탈코는 여성의 외형과 내면을 변화시켜 여성 자신의 전체 생애를 새로 기획하게 만든다. 탈코는 ‘이성애 로맨스’를 탈낭만화시켜, 이성애 중심주의가 숨겨온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 341쪽 밑에서 첫째 줄에서부터, 343쪽 위에서 다섯째 줄까지를 보시라.

〈아름다움이그대를 속일지라도-탈코르셋 인문학〉연희원 지음, 인간사랑 펴냄

“여성 억압의 구조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가장 먼저 읽었지만, 가장 뒤늦게 소개하게 된 윤지선·윤김지영의 〈탈코르셋 선언〉(사월의책, 2019)은 탈코르셋 운동에 철학적 기반과 언어를 제공하기 위해 쓰였다. 원래 코르셋은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 형상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의 허리를 조이도록 고안된 보정용 속옷이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코르셋을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몸과 마음에 채워놓은 족쇄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탈코르셋이 남성 통제를 거부하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 이유다.

대개의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남성의 여성 통제 근거를 자신들의 경전에서 찾아내지만(신의 섭리), 두 공저자는 추상적인 유래가 아니라 여성이 남성의 ‘욕망경제’ 속에 포획되어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내놓는다. 남성 가부장제 속의 여성은 부계 혈통의 재생산 도구이자 성애의 도구이기 때문에 감정적 친밀도(상냥함·친절함·미소), 성적 매력(예쁜 외모·몸매·동안), 행실과 품행(조신함·정결성·도덕성)을 신체 자원의 기본값으로 연마해야 한다. 남성 가부장제가 뒷받침하고 있는 남성의 욕망경제 속에서 구매자인 남성은 상품인 여성을 통제할 권리를 갖는다. “여성의 몸은, 스스로가 발화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 항상 남성들의 욕망과 욕구에 화답하는 대상으로 재현됩니다.” 이런 불균등한 위계 속에서 남성은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할 권리를 누리게 된다.

가부장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정상적 규범성(여성성)은 다양한 역량을 가진 여성을 앞서 열거한 기본값을 개발하는 데 진력하게 만든다. 자신의 신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때 인간은 기쁜 상태가 되지만, 자신의 신체 역량을 타인의 의지에 구속(품행·유행·다이어트· 성형수술 등)시킬 때 인간은 신체의 부작용과 더불어 정신적 하락 상태(우울증·자신감 결여·대인기피)를 맞게 된다. 이민경의 책에는 그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라나는 여자아이에게 코르셋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범을 보이고 싶어서 탈코를 했다는 인터뷰이의 증언이 있다. 윤지선·윤김지영 역시 탈코의 마지막 실천 단계로 “미래의 어린 여성 세대들에게 동일한 여성 억압의 구조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든다. 미용산업이 어린 여아를 상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지금, 탈코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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