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기업 뺨치는 공공기관의 노동 탄압
  • 전혜원 기자
  • 호수 636
  • 승인 2019.11.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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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본사에서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이 ‘노동 3권 무력화’에 나선 모양새다.
ⓒ시사IN 조남진10월16일 한국도로공사 본사 로비를 점거해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취침 준비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이 손해배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국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원 5명과 소속 노동조합(5곳) 및 그 간부(4명)를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피고들이 경북 김천의 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 일부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1억원 상당의 피해를 주었다며 이를 공동으로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추정 손해액’은 대략 이렇다. 1층 로비 회전문 파손 및 고장 4000만원, 2층 로비 회전문 파손 및 고장 3000만원, 옥외 잔디 망실 1500만원, 맥문동·비비추 등 옥외 야생화 망실 1000만원, 호접란 화분·프린터·인터폰 등 집기 파손 80만원….

경남 칠서톨게이트 수납원으로 15년 일해온 전서정씨(53)도 피고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집으로 뭐가 날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가족들에겐 뜯어보지 못하게 했어요.” 그는 지난 9월9일부터 도로공사 본사 로비에서 농성 중이다. 15년 동안 최저임금에 야간근로수당을 더한 금액을 받으며 3교대 근무를 해온 전씨는 “저희들이 1억원을 배상하려면, 한 달에 100만원씩 모아도 10년 가까이 일해야 될 것 같은데 너무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대로 저희를 직접고용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텐데, 수납원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1억원씩이나 책임을 묻는지 정말 되묻고 싶습니다.”

수납원들은 왜 도로공사를 점거했을까? 이들은 계약상으로는 용역업체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영업소에서 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도로공사를 위해 일해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은 도로공사가 ‘불법파견’을 저질러왔다고 판단했다. 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하라고 도로공사에 주문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자회사를 설립해서 수납업무를 통째로 넘겨버렸다. 수납원 6500여 명 중 5000여 명이 자회사의 정규직이 되었다. 끝까지 자회사 입사에 동의하지 않은 1500여 명은 외주업체와의 계약 만료라는 방식으로 해고되었다. 해고 수납원들이 자회사행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고용불안이다. 도로공사가 수납업무 자동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자회사를 선택해봤자 미래가 없다고 봤다(〈시사IN〉 제633호 ‘톨게이트에서 노동의 미래 읽다’ 기사 참조).

지난 8월29일, 대법원은 ‘수납원은 도로공사 직원’이라고 최종 확인했다.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자회사행을 선택하지 않은 수납원들이 소송을 낸 시기는 각자 달랐다. 9월9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대법원 판결이 직접 적용되는 수납원 수백 명만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혔다. 1·2심 소송 중인 1000여 명과는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것이었다. 소송 당사자는 다르지만 그 내용은 거의 완전히 같은데도 이런 방침을 냈다.

해고 수납원들이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한 것은 이강래 사장의 방침이 나온 직후였다. 경찰이 해산을 시도하자 그들은 상의를 벗고 저항했다. 도로공사가 주장한 각종 파손은 이 과정에서 해고 수납원들과 도로공사 직원, 경찰이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이후 도로공사는 1심 승소 뒤 2심 소송 중인 수납원들을 추가 고용했지만, 1심 소송 중인 수납원 900여 명은 1심 판결이 나온 뒤에야 직접고용한다는 방침이다. 농성 수납원 전서정씨도 그중 한 명이다.

ⓒ시사IN 이명익〈시사IN〉과 아름다운재단, 손잡고 등이 함께 벌인 ‘노란봉투 캠페인’(왼쪽)에는 4만7547명이 참여해 14억6874만1745원을 모았다.

“수납원들의 점거 농성은 정당한 노조 활동”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과)는 도로공사 사태를 보며 현대자동차를 떠올렸다고 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최병승씨는 2012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최씨만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다른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버틴 바 있다. “(도로공사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애초에 격렬한 다툼이 생긴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수납원들은 소송 제기라는 방법으로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평화롭게 문제 해결을 추진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먼저 소송을 낸 수납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다른 수납원들에게 개별 판결을 받아오라고 버텼다. 공공기관이 민간기업인 현대차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판결의 효력이 소송 당사자에게만 미치는 우리 법 구조를 도로공사가 악용하고 있다.”

파업 등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는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돼왔다. 2003년에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한진중공업 김주익씨가 손해배상·가압류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는 2012년,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158억”이란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전개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역시 2013년, 회사와 경찰에게 4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기사를 본 주부 배춘환씨가 〈시사IN〉에 4만7000원이 든 편지를 보내온 것을 계기로, 2014년 〈시사IN〉과 아름다운재단, ‘손잡고’ 등이 공동으로 ‘노란봉투 캠페인’을 벌였다. 4만7547명이 14억6874만1745원을 모아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를 지원했다. 손잡고는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출범한,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손잡고의 공동 발기인이다. 노란봉투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9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손잡고에 다음과 같은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은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도로공사의 손해배상 청구도 이런 맥락에서 비판할 여지가 있다. 송영섭 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장(변호사·손잡고 운영위원)은 “수납원 노동조합은 (대법원 판결로 그 정당성이 입증된) 직접고용 의무를 이행하라고 도로공사에 요구해왔다. 그 수단으로 ‘전면적이고 배타적인 점거’가 아닌 ‘부분적이고 병존적인 점거’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미 대법원이 ‘도로공사가 수납원들에 대해 직접적인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하지 않았나. 이런 측면에서 수납원들의 점거 농성은 정당한 노조 활동 범위에 있다고 보인다”라고 말했다.

물론 파손 등 도로공사의 손해가 발생한 데 대해 법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는 있다. 그 경우에도 “무작정 파손한 것과, 직장 점거를 하려다 막히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파손한 것은 다르다”라고 송 원장은 설명했다. 또한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경위로, 얼마나 손해가 발생했는지 도로공사가 먼저 입증해야 한다. (소장에 제시된) 견적서 몇 장만으로는 피해가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도로공사는 누가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특정하지도 않은 상태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직접고용 수납원들 ‘풀베기’에 투입

도로공사는 소장에서 “피고들의 공동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일부 청구로서 우선 1억원을 청구한다. 현재까지의 추정 손해액이 이(1억원)를 초과하지만, 향후 피고들의 행위로 인해 원고의 손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고, 아직 원고가 발견하지 못한 손해가 더 있을 수 있으므로 추후 청구 취지를 확장하도록 하겠다”라고 주장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면 원칙적으로 손해액이 확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구했다. 보통 쟁의행위 기간 중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손해의 보전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쟁의행위를 약화시킬 의도다. 쟁의행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던 과거로 회귀한 것이며, 노동 탄압이란 관점에서 충분히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도로공사가 소송을 건 피고 중에는 대법원 판결로 도로공사 직원이 된 수납원도 있다.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이다. 그는 현재 도로공사 천안지사로 발령받아 톨게이트 영업소와 휴게소 뒤 회차로에서 휴지를 줍고 있다. 직접고용된 전직 수납원들은 이 외에도 돌을 캐서 나르거나 낫으로 풀을 베는 등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도로공사가 수납원 업무를 자회사로 넘겼다는 이유에서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도로공사는 농성 수납원들을 돈으로 옥죄면서, 직접고용한 이들에게는 ‘이거 할 거면 자회사 가라’고 하고 있다. 악덕 기업이나 할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도로공사가 자신의 불법행위를 시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인데도 바로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은 적반하장이다. 일반 사기업도 아닌, 법을 잘 지키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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