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지배하는 세상
  • 장일호 기자
  • 호수 636
  • 승인 2019.11.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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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스민 전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당연히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은 12년째 표류 중이다. 국회와 정부가 이를 미루는 동안 차별과 관련된 법, 조례,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2015년 6월28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서 보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10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48만1565명이다. 광역자치단체 중 인구수 7위인 대구시 인구(244만3528명)보다 많다. 주민등록 인구의 약 4.8%에 해당한다. 외국인이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는 길게 잡아야 30년이다. 보통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을 기점으로 본다. 공고해 보였던 단일민족 신화는 이후 국제결혼이 증가하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 국적자를 낳는, 그리하여 ‘국민’으로 관리하고 통합할 필요성이 생긴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은 2006년 ‘다문화’라는 용어로 정책 대상이 되었다.

한국인은 사회가 다양해지는 만큼 계속 재구성된다.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수선’해서 사용하는 까닭이다. 결혼이주여성 당사자인 이자스민 전 의원이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는 질문도 여기서 출발한다. 이 전 의원은 11월11일 정의당 입당식에서 “차별금지법은 당연히 우리가 제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은 사후 규제 장치지만 사전 예방의 목적도 가진다. 한 사회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에 대해 ‘선언’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은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나 난민 등 이민자를 사회통합의 대상이라기보다 국가안보 관점에서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데 익숙하다. 국민인지 아닌지, 즉 그의 신분이 ‘불법’인지 아닌지가 중요해지면 당사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인권침해 문제는 부차적이 된다. 이런 차별 경험은 외부에서 온 ‘타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은 하나가 아니며 한 사회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헌법 제11조는 기본권으로 법 앞의 평등을 선언한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조항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기관, 사람, 절차, 예산 등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사상 검증’ 잣대가 된 차별금지법은 헌법 제11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손과 발인 셈이다.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정부 입법으로 최초 발의됐다. 애초 ‘누더기’ 운명을 타고난 법이었다. 당시 법무부는 논란을 이유로 성적 지향은 물론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학력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했다. 분명한 후퇴였다. 법무부가 제외한 사유는 이미 2001년 제정돼 시행 중인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호에 명시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포함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제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차별금지법은 폐기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굳이’ 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 나올 법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 피해를 겪은 당사자를 구제하는 중요한 독립기구다. 차별 관련 사건을 진정받고 접수해 조사할 수 있지만 시정 권고까지가 최선이다. 배상 책임까지 포함한 실질적 구제가 보장되는 차별금지법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려운 이유

보수 정권으로 바뀐 2008년과 2011년, 2012년에도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는 계속 있어왔다. 액세서리 취급을 받을망정 박근혜 정부도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올렸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가장 상징적인 시기는 2013년 2월이다. 그해 2월12일 김한길 의원 등 51인과 2월20일 우원식 의원 등 12인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회의 테이블에 올리기도 전에 자진 철회됐다.

‘종북’ 무기를 잃은 보수 개신교계가 ‘빨갱이’를 대체할 새로운 적으로 ‘성소수자’를 발견하고 조직적 반격을 시작한 시기와 겹쳤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안의 ‘성적 지향’을 물고 늘어졌다. 법안 자진 철회로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이후 지자체가 주도하는 학생인권조례나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등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을 불러놓고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약속받는 풍경도 익숙해졌다.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적’이 정말 보수 개신교계일까. 법안 철회 과정과 이후 논의 과정을 잘 아는 전직 국회 보좌진은 국회가 대응을 잘하지 못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온 동네 목사들이 국회 의원실마다 전화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물러선 바람에 이후 다시 발의하기 어려워진 분위기가 생겼다. 당시에도 갈등 조짐이 없었던 게 아닌데 방법에 대한 고민이나 전략이 없었다. 일단 ‘좋아 보이니까’ 냈다가 더 큰 후퇴를 불러왔다.”

복수의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책은 ‘쉽게’ 발의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안을 비롯해 비슷한 법안이 여럿 나오면 병합 심의되고, 일단 법이 제정되면 이를 본인 성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자진 철회된 차별금지법은 이후 내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국회의원들은 굳이 자신이 앞장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섰다가 두들겨 맞는 걸 ‘학습’했다. 무엇보다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협의와 조정을 거쳐야 한다. 여당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면 다른 법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법안 처리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이를테면 김용균법처럼 사회적 공분을 사거나 사건이 있으면 그걸 타고서라도 어떻게든 밀어붙일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다기보다 이게 없어서 생기는 구체적인 피해가 뭔가를 따지다 보면 다른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린다. 개정법이 아니라 제정법이고 예방적 성격의 포괄적인 법이다 보니 절박하지 않은 법으로 분류하기도 좋다. ‘있으면 좋다’라는 정도로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52시간이니 최저임금이니 같은 쟁점 법안과 바꿀 수 있나? ‘카드’로 쓰기에 너무 약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다고 해서 법이 차별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나 ‘양성평등기본법’처럼 시급하고 구체적인 차별에 대한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존재한다. 이렇게 차별금지법이 포괄하고 있는 이슈를 하나하나 분리하다 보면 사실상 가장 논란이 되는 성소수자 문제가 남는데, 국회 안에는 이를 대표할 사람이 없다. 법이 통과가 되든 안 되든 이슈화하고 싸우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물론 국회, 특히 여당 안에서 차별금지법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에서 빠져 있긴 하지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National Human Rights Plans of Action) 안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이 들어가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있지만 주무부처인 법무부도 공식적으로는 차별금지법을 “안 낸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관련 입법을 해야 하는 법무부 내에서 사실상 인권 이슈가 주력 업무가 아닌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인권정책과가 있긴 하지만 법무부 안에서도 한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여당에서는 정부 입법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한 여당 보좌관은 “우리가 야당이었다면 차별금지법을 의원 입법으로 써먹을 수도 있다. 통과 여부와 별개로 의원한테는 좋은 일 하고 욕먹는다는 ‘알리바이’가 되니까. 그런데 여당 처지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정부 입장을 확인해야 하는데 불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퇴행적 법률 개정안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차별금지법에 대한 내부 논의가 막힌 상황이다. 2018년 취임한 최영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평등권 실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겠다”라고 했지만 ‘총선’을 이유로 논의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관련 보고를 한 적 있는 한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은 “‘나중에’라는 요지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대외적으로 하는 말과 내부에서 하는 말이 너무 다르다. 총선 이후에 하자는 건 하지 말자는 거다”라고 최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연합뉴스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총선 이후로 미루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이미 있는 법마저 흔들려는 움직임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11월12일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 외 40명이 발의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호 안에 포함되어 있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사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걸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성별에 대해서도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이 어려운 생래적, 신체적 특징으로서 남성 또는 여성 중 하나를 말한다’라고 못 박았다. “성적 지향의 대표적 사유인 동성애가 법률로 적극 보호되어 사회 각 분야에서 동성애가 옹호 조장되어온 반면, 동성애에 대하여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에 기반한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 행위 일체가 오히려 차별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개정안 발의 사유는 보수 개신교계가 주장하는 논리에서 조금도 비켜가지 않았다.

이처럼 차별을 옹호하는 세력은 차별금지법을 막기 위해 차별을 정당화하고 조장한다.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특정한 차별금지 사유를 ‘빼는’ 행위는 모든 차별을 금지한다는 대원칙 자체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 자체가 어떤 차별을 금지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고도 말한다. “논란을 이유로 뺀다면 법의 목적을 훼손할 뿐 아니라 입법자에 의한 고의적 차별 행위로 ‘차별조장법’이라 할 수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차별금지법을 ‘나중에’로 미뤄두는 동안 성적 지향으로 시작된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는 인권이나 차별과 관련된 모든 법, 조례, 정책에 제동을 거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차별금지법은 더 이상 단순한 ‘법’이 아니다. 12년째 표류 중인 이 법은 이제는 제정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차별 철폐 의지를 가늠하는 상징 기표”가 되었다(〈선량한 차별주의자〉). 한국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과 역학관계가 이 안에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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