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장검진’을 시작한 이유
  •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호수 635
  • 승인 2019.11.22 01: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현지 그림

2016년, 한 청소업체 노동자들이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왔다. 특수건강진단은 사업주가 법이 정한 유해인자 노출 작업자에 대해 정기적으로 건강문제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제도이다. 한 수검자가 청소 일을 시작한 지 1년째인데 피부, 눈, 코, 목 자극 증상, 기침 등이 비행기 기내 청소작업 이후 발생했다고 했다. 특히 비행기 전체를 소독한 뒤 바로 들어가야 할 때, 밀폐된 곳에서 작업을 할 때 증상이 심해진다며 증상이 더 악화되면 퇴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후에 만난 수검자들도 작업환경에 대해 일관된 이야기를 했다. 검진 결과 증상이 심한 수검자에 대해서는 보호 장구 지급이 필요하다고 적었고, 사업주에게는 다음과 같이 서면 권고했다. “모든 청소 작업자를 대상으로 비행기 소독 후 잔류 물질이 남지 않도록 충분히 환기된 상황에서 작업하는지 확인하고, 밀폐 공간에서는 방독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지급 및 교육하기 바랍니다.” 그때는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퇴사를 각오했던 그 수검자는 결국 이듬해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현장 방문하고 나서야 청소업체 노동자들 현실 이해

2018년, 이번에는 다른 비행기 기내 청소업체에서 임시건강진단 의뢰가 들어왔다. 임시건강진단이란 직업병 발생의 우려가 현저할 때 지방 노동관서 장의 명령으로 사업주가 실시하는 건강진단이다. 기화 소독이라 부르는 비행기 전체에 대한 소독 직후 청소하러 들어갔던 노동자들이 집단 실신한 것을 계기로 실시하게 되었다. 수백 명에 대한 출장검진을 의뢰받고 망설인 것이 사실이다. 당시에는 우리 병원에 출장검진팀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고, 연간 계획에 없었던 일을 추가하면 의사를 포함한 우리 부서원의 노동강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기로 결심한 것은 화학물질 관련 증상에 시달리다가 퇴사했을 그 노동자를 떠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시건강진단 준비를 위해 공항을 방문해 먼저 노사 간담회를 하고 나서 비행기에 올랐다. 그제야 2016년에 다른 청소업체 노동자들이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는 바닥에 소독제를 뿌리는 사람, 세척제를 사용해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 객실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의 소속 업체는 모두 달랐다. 비행기의 다음 일정을 위해 모두가 시간에 쫓기며 일하고 있었다. 임시건강진단 결과 일부 작업자에게서 살충제 관련 성분이 의미 있는 농도로 검출되었다. 이후 모든 비행기 기내 청소업체에서 세척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짐칸 소독 작업 시 방독마스크 지급, 기화 소독 시 충분히 환기 후 작업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 우리 건강진단이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을까.

출장검진은 병원에 앉아서 하는 검진보다 더 힘들지만, 작업 현장의 유해인자 노출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제조업 밀집지역에 있던 전 직장에서 출장검진을 할 때는 수검자를 만나고 바로 현장을 순회해 작업환경의 문제를 확인하곤 했다. 문제가 해결될 때의 보람과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두고 씨름해 얻는 배움이 나를 성장시켰다. 2014년, 이대목동병원으로 이직할 때는 연구 활동에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출장검진을 더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메탄올 실명 사건에 대응하느라 유기화합물 냄새가 가득한 소기업 밀집지역을 다니면서, 비행기 소독제 임시건강진단을 하러 공항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직업병 예방의 사각지대가 많은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난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출장검진을 시작했다. 작업 현장이라는 바다에 출장검진 버스라는 배를 띄우고 구석구석 항해하면서 직업병 걱정 없는 일터를 만들어나가는 데 아주 작은 힘을 보태보고자 한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