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급소 건드린 이주여성
  • 천관율 기자
  • 호수 635
  • 승인 2019.11.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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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이자스민(42) 전 국회의원은 묘한 정치인이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민 여성인 그녀는 헌정 사상 최초의 이주여성 출신 국회의원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호탕한 리더십이나 유권자를 사로잡는 친화력이나 탁월한 연설 능력으로 국회에서 이름을 날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존재만으로 선 자리의 급소를 정확히 건드리는 독특한 정치적 존재감을 갖고 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이자스민 전 의원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정의당으로 간다.

당적 변경 과정에서 이자스민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급소를 건드렸다. 그녀가 새누리당 비례대표가 된 2012년 총선은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한 선거다. 당시 박 위원장은 청년·여성 등 새 인물을 과감하게 전진 배치해, 어려울 것이라던 총선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자스민 의원은 그중에서도 상징적이었다. 보수 정당이 이주여성을 공천할 정도로 유연하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지금의 보수 정당은 이 유연함이 한참 뒤져 있다.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문제가 되었던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문재인 정권 적폐몰이 희생자라며 영입 인사로 내세우려다가 역풍만 맞고 후퇴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합류하게 되는 정의당의 급소도 건드렸다. 이번 합류는 심상정 대표가 주도했다. 당내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의 노선이나 상징성은 대체로 환영받는다. 논쟁은 진보 정당이 정치가를 키우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자스민 합류 이전부터도, 심상정 대표가 외부 유명 인사를 폭넓게 영입해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짤 것이라는 예상은 당내에 있었다. 진보 정당은 기층에서부터 정치가를 키워 올리는 시스템이 특히 중요한데, 명망가 위주의 비례대표 공천을 당 대표가 주도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쟁이다. 이것은 정당의 작동원리에 대한 고전적 논쟁이어서 안 그래도 큰 폭발력이 잠재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이자스민이라는 불씨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자스민 전 의원은 한국 사회의 급소를 건드린다. 19대 국회에서 그녀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와 오유(오늘의 유머)가 모두 싫어하는 정치인”으로 불렸다. 온라인에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이자스민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도, 인터뷰를 해도, 본회의장에서 초코바를 먹어도, 모바일 게임을 해도 셀 수 없는 악플이 쏟아졌다.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유언비어이거나 침소봉대에 그쳤다. 그렇게 해서 이 이주여성 국회의원은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와 여성혐오를 생생히 드러내는 역사적인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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