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중국 관광객 유치할 제2의 평양 만들라”
  • 남문희 기자
  • 호수 635
  • 승인 2019.11.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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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북 이후 관광이 북한의 생존수단으로 ‘격상’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관광객 포화 상태인 평양을 대체할 지방의 관광거점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AFP PHOTO평양 김일성광장의 중국 관광객들.

금강산의 한국 측 시설을 들어내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 배경은 매우 복합적이다. 한국과 미국에 압박을 가해 협상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북한의 생존전략이 되다시피 한 관광 활성화의 측면에서 김 위원장의 언행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인력의 대외 파견은 물론 지하자원 등 상품 수출도 차단된 상태다. 유일한 탈출구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관광산업이다.

그렇다면 남북 간 최대 관광사업이라 할 금강산의 한국 측 시설을 들어내는 조치는 관광을 중시해야 할 북한의 처지와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일단 한국과의 관광사업은 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다. 반면 북한은 현재 늘어나는 중국 관광객을 수용할 시설이 부족한 상태다. 대표 관광지라 할 평양은 지난 3월 하루 수용할 수 있는 외국 관광객 수를 1000명으로 제한했다. 지난해 네 차례 정상회담으로 북·중 관계가 호전되면서 금년 상반기부터 중국 관광객이 대폭 늘었다. 예년에 비해 30~50% 늘어나 하루 1800~2000명까지 평양에 몰려들면서 몸살을 앓았다. 숙소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고려호텔, 양강도호텔, 서산호텔 등이 외국인 숙소로 제공되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민박이 등장하는가 하면, 북한에서 에어비앤비까지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3월 관광객 제한은 평양의 수용능력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또 당시까지는 북한 당국이 관광산업을 크게 중시하지 않았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다른 산업을 해외에서 유치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상황이 변했다. 북한 당국 역시 전반적인 정세를 총괄하면서 관광산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대북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북한의 대외 전략에 큰 변화가 불가피했다. 더 이상 미국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각성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관광산업이 북한의 유일한 생존전략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면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는 물론 미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도 기대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을 준비하면서 북한 무역일꾼들에게 “6월까지만 기다리면 다 해결된다”라고 다독인 데에는 이런 낙관적 전망이 깔려 있었다. 당시 북한 지도부에는 중국과의 경협에 매달리기보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 하나만 들어오면 다 해결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낙관의 근거가 사라져버렸다.

ⓒXinhua지난 6월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시진핑 “관광으로 북조선 도우라”

더구나 이때부터 미국과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제재가 곧바로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북한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우, 1970년대 초 핑퐁 외교에서부터 미국과 관계 개선이 시작됐지만 경제제재가 풀리기까지 20여 년이나 걸렸다. 베트남도 1989년부터 미국과 교섭이 시작돼 1995년에는 국교 정상화까지 성사시켰다. 그러나 경제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1998년 미국이 베트남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면서부터였다.

지난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대미 관계 개선에만 목을 매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북·러 관계와 북·중 관계 강화는 김 위원장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이었다. 북·러 관계의 주안점은 주로 군사 분야 협력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재래식 군사력의 첨단화를 준비하려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이 필요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 제재라는 현실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중국과의 관계에서 찾지 않을 수 없었다. 6월20일 시진핑 주석 방북이 결정적 계기였다. 중국 역시 안보리 제재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돕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북·중 정상이 찾아낸 해법이 바로 중국인의 북한 관광 활성화였다.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후 중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관광으로 북조선을 도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8월20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북·중 정상회담 당시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중국 관광객 500만명을 북한에 보낼’ 것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1000만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내 한 북한 경제 전문가는 “당시 중국이 약속한 인원이 1000만명이라는 얘기를 복수의 채널로부터 들었다”라고 전했다.

중국의 대외 관광청에 해당하는 국가여유국은 지난해 북한을 여행한 중국 관광객 수를 120만명으로 집계했다. 북한 여행 시 1인당 300달러 정도를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약 3억6000만 달러의 관광 수입을 북한 측에 남겨준 셈이다. 시 주석이 제시한 중국 관광객 수가 1000만명이면, 지난해(120만명)의 8배를 넘는 셈이다. 시 주석의 지시가 떨어진 직후인 올해 7월부터 북·중 접경지대에서 때 아닌 북한 관광 러시가 일어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시 주석의 지시는 매우 구체적이었다고 한다. 국가기관의 공무원을 비롯해 교사 심지어 유치원 선생님까지 의무적으로 한 번 이상 북한 관광을 다녀오라고 한 것이다.

북한 관광의 일반적인 코스는 평양에 들러 조중우호기념탑에 참배하고 평양 시내를 둘러본 다음 비무장지대를 견학하는 3박4일 일정이다. 이 정도면 2500위안(약 41만4000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최근에는 중국인의 북한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평양-칠보산-금강산-개성-판문점 등을 경유하는 5박6일 내지 일주일짜리 관광 상품이 늘어나는 추세다. 김정은 위원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평안남도 양덕온천 사례처럼, 온천을 즐기면서 스키도 타는 체류형 관광 일정이 등장하는 등 관광 상품이 다양화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의 지시 이후 지린성, 랴오닝성 등 국경지대 거주 중국인들의 당일치기 내지 짧은 일정의 관광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특기할 사항이다. 지린성의 지안과 북한 만포를 잇는 압록강대교나 투먼-남양 간 도문대교 위를 관광객을 가득 채운 관광버스들이 매일 저녁 드나든다고 한다. 500위안(약 8만3000원) 정도 하는 반나절 상품으로 접경지대 인근을 다녀오는 경우도 많다. 훈춘시에서 러시아 해안선을 타고 북한 나진선봉시에 들어가 주민들과 격리된 채 바다 구경만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단둥에서 신의주로 건너가는 관광객이 급증하자 북한에서 업무차 단둥에 나왔던 무역일꾼들이 돌아가는 국제열차 표(단둥→평양)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 경우, 단둥 시내버스로 2위안 정도의 거리에 불과한 신의주까지 국제관광 버스를 타고 입국한 다음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일반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정을 감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동 이후 관광이 북한 경제의 생존수단으로 격상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인해전술식 북한 관광이 본격화함에 따라 북한 역시 이를 수용하기 위한 체제 정비에 나섰다. 먼저, 북한의 고려항공과 중국의 에어차이나가 분담하던 평양-베이징 항로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다른 두 개 항공사와 항공 노선 증설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4월 중국 관광객들이 북한 여행 중 차량 전복 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여행보험 도입을 검토 중이기도 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사항이다.

ⓒ조선중앙통신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중국, 단둥-평양 간 고속철 사업 제안

지난 9월2일 평양을 방문한 왕이 외교부장이 북측에 단둥-평양 간 고속철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고속철이 도입되면 단둥-평양이 일일 관광권으로 연결되는데 북측이 평양의 수용능력 한계를 들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입장은 분명하다. 평양은 더 이상 개발할 필요가 없다. 지방을 개발해야 한다. 지난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는 이와 관련된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지방의 각 도와 기관에 권한을 대폭 위임해 지방 차원에서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지방정부와 기관들이 별도의 여행사를 꾸려 중국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10월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 관계 기관과 합의하에 들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발언을 전후해 김정은 위원장은 한창 공사 중인 평안남도 양덕온천을 방문했다. 양덕온천에 개설 중인 스키장은 마식령스키장보다 규모가 크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관광사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머릿속은 밀려오는 중국 관광객들을 평양 대신 지방의 관광시설로 유치하는 문제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제2의 평양’이라 불릴 지방의 관광거점 후보로는 서쪽의 신의주, 백두산에 이어 동쪽의 원산, 칠보산 그리고 금강산이 있다. 생존의 돌파구 마련에 마음이 급한 그가 금강산에 11년째 방치된 남측의 시설들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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