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헌고 교실에 그어진 두 개의 전선
  • 이상원 기자
  • 호수 635
  • 승인 2019.11.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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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정치적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정치권으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학교가 ‘좌편향’되었다고 비난하는 쪽과 ‘정의 실현’을 했다며 옹호하는 쪽이 맞섰다.
ⓒ연합뉴스10월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열린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 기자회견을 보수 단체 회원 및 보수 유튜버들이 지켜보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학생에게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가? 서울 관악구에 있는 인헌고등학교 일부 학생들은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학수연)’이라는 단체를 결성한 이들은 10월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제는 이 끔찍한 사상 주입을 끝내야만 한다. (…)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의무다. 인헌고 교사분들의 정치적 발언과 사상 독재는 법에 위반되는 행위다. 학생들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라고 말했다. 학수연은 서울시교육청에 감사 청원서를 냈다. 보수 단체 회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기자회견에서 학수연은 인헌고 교사들의 ‘사상 주입’ 예시를 몇 가지 들었다. “교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가 적힌 띠를 두르고 달리도록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에 대해 교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자 ‘가짜 뉴스 믿는 사람은 개돼지’라고 했다” “학생에게 ‘너 일베니?’라고 모욕했다” 등이다.

10월25일 인헌고 나승표 교장이 학교 홈페이지에 게재한 설명은 다르다. 그는 마라톤 구호와 관련해 “교내 마라톤 주제가 매해 바뀌는데 올해는 ‘나라 사랑’이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는 심정으로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구호를 기록하게 했고, 구호 내용은 학생이 자유롭게 썼다”라고 적었다. 가짜 뉴스 발언은 “수업 전 조국 전 장관 사퇴를 두고 한 학생이 ‘당연히 사퇴해야 한다’고 말하자 교사가 ‘확실한 조사 결과가 나온 게 아니니 단정할 수 없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 일회성 사건이다”라고 밝혔다. 일베 논란에 대해서는 “평소 ‘문죄인’이라는 말을 하던 한 학생이 맥락과 무관하게 ‘조국이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해 순간적으로 묻게 됐다. 수업 후 학생에게 항의를 받아 사과하고, 다음 날 해당 학급 전체에 사과했다”라고 나 교장은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사실 확인을 위해 특별장학을 진행 중이다. 11월1일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대상 전수 설문조사 실시 결과 ‘선언문 띠 제작 활동 시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제작하도록 교사의 강요를 받았나요?’ 등의 질문에 대해 반별 1~2명 정도 ‘예’라고 답하여 전체 20여 명이 응답했다”라고 밝혔다. 추가 조사와 심층 면담을 진행한 뒤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실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시사IN 조남진조희연 교육감(위)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은 인헌고에 대한 특별장학을 진행 중이다.

헌법은 왜 교육의 정치 편향을 경계할까

자유한국당은 인헌고를 비난했다. 10월23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그토록 정치를 하고 싶거든 차라리 교사를 그만두고 직접 정치에 나서시라. 왜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정치교육을 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틀 뒤 원내대책회의에서 김한표 의원은 “인헌고가 마라톤 대회에서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사상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11월6일 자유한국당은 ‘정치 편향 교육 실태 관련 교육시민단체·전문가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자유한국당 인사들과 보수적 교육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인헌고를 성토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근본적 대책’으로 “좌편향 교육감 체제로 교육이 운영되기 때문에 (…) 교육감 직선제를 고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11월5일 “‘NO 아베’가 문제라고?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 알라!”라는 성명을 냈다. 성명에서 전교조 서울지부는 ‘마라톤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이것이 어떻게 ‘정치 편향’이 될 수 있는가? 역사 정의를 실현하자는 목소리를 ‘반일 감정’ ‘사상 주입’으로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것이야말로 정치 편향이다. (…) 이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악의 편에 서는 것일 뿐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10월21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 교육감은 이렇게 말했다. “교사가 학생에게 ‘너 일베냐?’라는 표현을 쓴 것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 (마라톤 행사는) 학생들이 이런 걸 문제 삼는 건 조금 과하지 않나 생각했다.”

우리 법은 교육의 정치 편향을 경계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에 있고, “교육은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기본법 조항이 뒷받침한다. 이를 위해 교원의 정치활동은 금지된다.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과 그 하위 법령은 공무원인 교사가 정당 조직·지지·반대, 특정 후보자 당락 운동 등을 할 수 없도록 정했다. 2012년 대법원은 ‘2009년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에서 “아직 독자적인 세계관이나 정치관이 형성되어 있지 아니하고 감수성과 모방성, 그리고 수용성이 왕성한 미성년자들”을 교육하는 교원들은 “학교를 정치 공론장으로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행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지에 대해 대법원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행위 동기 또는 목적, 그 시기와 경위,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배경, 행위의 내용과 방식, 특정 정치 세력과의 연계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성명에 따르면, 학생들이 마라톤 행사에서 반일 구호를 외친 일은 대법원 기준에 비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었다. 예컨대 이 행사의 ‘동기’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이고 ‘시기와 경위’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이다. “아베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라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고, ‘내용과 방식’은 (인헌고 주장에 따르면) 자유로웠다. 인헌고 교사들과 ‘특정 정치 세력과의 연계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우리는 이것을 가르칠 수밖에 없으며 (…)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한 교육의 길에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라고 적었다.

ⓒ연합뉴스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월30일 인헌고 사태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을 방문했다.

문제는 남는다. ‘정의로운 정치적 발언(교육)은 허용된다’는 전제가 사회적으로 통용된다면, 교사들은 제각기 ‘정의’라고 확신하는 바를 학생들에게 설파하지 않을까? 가령 지난 9월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정부가 간첩이 넘어와도 넘어왔던 것으로 뭐 (봐주고 있다). 무슨 나라가 이래”라고 발언했다. 같은 부산 지역의 다른 고교에서는 10월 ‘바꿔라 정치검찰’이라는 문구가 중간고사에 등장했다. ‘학교의 정치 공론장화’를 배제한 대법원 태도와는 배치되는 광경이다. 학생은 어떤 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신념을 접하게 되고, 이 임의의 신념은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1970년대 독일 교육학자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 정치적·세대별 갈등이 심각하던 당시 서독은 각 정치 세력이 정치교육을 활용하려 했다. 양쪽 진영에 속하는 교육학자들은 서로를 비판했다. 우파 학자는 좌파가 서독 학생들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한다고 주장했고, 좌파 학자는 우파가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주입한다고 주장했다. 1976년 서로 정치색이 다른 학자들이 보이텔스바흐라는 소도시에 모여 독일 정치교육의 방향에 대해 토론회를 벌였다. 여기서 나온 결과물이 ‘보이텔스바흐 합의(또는 보이텔스바흐 협약, Beutelsbacher Konsens)’다. 오늘날 이 합의는 전 세계 정치교육의 표준 원칙으로 통한다.

합의는 3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첫째, 강제성을 금지한다. 어떠한 수단으로든 바람직한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기습하고 자립적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둘째,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재현한다. 서로 다른 관점은 테이블에서 밀려나지 않고, 토론되어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관심 상황을 분석할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논쟁적인 정치 이슈를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되, 그 방식은 반드시 토론을 통하며, 최종 판단은 온전히 학생들에게 맡긴다는 방법론이다.

일견 간단하고 당연해 보이는 이 합의에는 사실 급진적인 성격이 있다. 학생의 정치적 판단을 교사가 강제하지 않는다는 1원칙은 사회적 상식으로 통하는 이념에 대해서까지도 적용된다. 2009년 나온 책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충분한가?>에서 지그프리트 실레 뷔템베르크 정치교육원장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자유민주주의가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의 의지에 반해서 덮어씌워지지 않을까 염려한다”라고 썼다. 실레는 학교 측이 ‘동물보호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 <아기 돼지 베이브>를 의무 상영한 사례를 “정치교육이 하나의 도구로 간주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쟁에 대한 2원칙을 다룬 실레는 “신념의 전달이 아니라 정치교육이 중요한 것”이라고 썼다. 합의문에 “자유나 평등, 평화와 같은 헌법적 가치를 합의에 넣자”는 의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 해석도 진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합의는 ‘무엇을’ 가르칠지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칠지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지닌 독일 교육학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학교 민주시민교육 진흥조례’가 있긴 한데…

헌법적 가치를 강요하지 않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나름의 방식으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한다. 독일에서 ‘과학적 정치교육학의 시조’로 불리는 발터 가겔 교수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어떠한 가치평가를 포함하지 않지만, 가치논리를 포함하고 있다. 가령 강제성의 금지 원칙은 학생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의미가 있고, 헌법 1.1조항(‘인간 존엄성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책무다’)에 상응한다.”

지난해 1월 서울시교육청은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과 유사한 ‘학교 민주시민교육 진흥조례’를 공포했다. ‘논쟁성 원칙’은 그대로 따왔다. ‘강제성 금지 원칙’은 ‘주입식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과 참여(제4조 3)’라는 문구로 약화되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배제한 ‘헌법이 규정한 가치와 이념을 계승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다(제4조 1)’는 내용은 들어갔다. 서울시교육청이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을 저울로 삼는다면, 인헌고에서 ‘무엇을’ 가르쳤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쳤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학교가 ‘좌편향’되었다며 비난하는 쪽과 ‘정의 실현’을 했다며 옹호하는 쪽 모두 이 관점과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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