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10㎝ 턱이 장벽이었다. 손에 힘을 주어 바퀴를 굴려도 넘을 수 없었다. 이런 장벽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장애인 이동권’ 취재를 할 때였다. 직접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비장애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장벽이 그제야 보였다. 거리는 온통 장벽투성이였다.

땀을 흘리며 장애인 활동가와 함께 버스 정류장까지 겨우 갔다. 휠체어로 이동 가능한 저상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가 앞에 섰다. 버스 기사가 내렸다. 휠체어에 탄 장애인 활동가를 안아서 버스 자리에 앉혔다. 나는 친절한 기사라고 생각했다. 장애인 활동가는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임을 자신뿐 아니라 모두에게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동권’은 말 그대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지만 시혜로 취급받았다. 그 말을 듣고 ‘선량한 차별주의자’ 시선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다. 당사자 시선이 주는 깨우침이 왜 중요한지는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연재 원고를 읽을 때도 실감했다. 장애인인 두 작가는 기술과 의학이 장애를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허상을 깨우쳐주었다. 두 작가의 시선은 깊었고 내 시선은 얕았다.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의 정의당 입당을 보며 여러 단상이 들었다. 20대 국회까지 이주민 출신 의원은 그 한 명뿐이었다. 역지사지. 언론계를 되돌아보았다. 아직까지 이주노동자나 그 자녀가 기자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언론사 공채 시스템이라는 장벽을 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인서울 대학’ 졸업자들이다. 거대 언론사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많다. 이주노동자가 직접 쓴 기사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미국 등 해외 혁신 언론사에서는 뉴스 다양성을 최우선 순위로 둔다. 뉴스룸 구성원의 다양화도 추구한다. 소수자 출신을 따로 뽑는 시도도 한다. 한국 언론사가 이주민이나 소수자 등을 쿼터제로 특별채용하면 아마 공정 이슈가 불거질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뉴스룸의 다양화는 필요해 보인다. 한국 언론 신뢰도가 바닥 수준이다. 뉴스 그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광고 연동 기사, 협찬 기사 등이 뉴스로 포장된다. 가짜 뉴스는 단속이나 처벌 조항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공론장에 진짜 뉴스가 많아져야 한다. 2017년부터 〈시사IN〉은 저널리즘 콘퍼런스(SJC)를 열고 있다. 해외 언론사를 취재하고 오프라인에서 고민을 나눈다.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올해는 미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비영리 저널리즘을 살펴봤다. 그 결과물을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올렸다. 12월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탐사보도와 비영리 저널리즘’을 주제로 열리는 2019 SJC에서 언론과 민주주의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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