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이란혁명 이후 영국 외무부는 왜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는지에 관해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테헤란의 영국 외교관들이 엘리트 말고 보통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은 게 하나의 이유였다. 그 후 영국 외교관들은 현장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관한 조사를 강조했다. 영국의 이란 주재 대사는 언제나 부하의 신발에 흙이 묻었는지 살펴보았다고 한다.

외교관만이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을 실행하는 관료들과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바로 그런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갔다. MIT의 바네르지와 뒤플로, 하버드 대학의 크레이머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빈곤에 맞서서 무작위 대조실험이라는 방법론을 들고 가난한 나라로 달려갔다.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정책 개입 효과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밝혀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이러한 실험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빈곤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씩 찾아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수업일수나 교과서에 대한 지출을 늘리기보다 뒤처진 학생들의 수준에 맞춘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성과에 중요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또한 그들에 따르면 케냐의 학교에서 구충제를 보급했을 때 학생들의 건강이 개선되고 등교율이 높아졌으며, 이동진료소에서 콩 한 주머니를 나눠줄 때 예방접종 참여율이 크게 높아졌다. 그들은 가난한 농민들이 현재를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비료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마이크로크레디트 프로그램의 효과도 인도에서는 별로 크지 않다고 보고했다.

물론 개발경제학계 내부에서도 이들의 연구에 관해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케냐의 구충제 프로그램이나 인도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실험은 결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 실험 연구의 결론을 일반화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실험이 다른 환경에서 수행되어도 그리고 대규모 정책이 되는 경우에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실험의 결과를 낳는 메커니즘에 대한 더욱 깊은 분석에 기초하여 증거뿐 아니라 이해를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시경제의 성장과 불평등 그리고 정치와 부패가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이들이 강조하는, 현장에서의 작은 정책 개입은 한계도 뚜렷하다. 지난해 8월, 디턴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인을 포함한 경제학자 15명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교사에게 유인을 주어 교육성과를 높이는 것보다 대외 부채를 갚기 위해 교육예산 자체를 줄이고 있는 게 더 문제라는 얘기다. 빈곤이 개인의 행동 문제만은 아니며, 경제와 정치 시스템이라는 큰 그림이 여전히 빈곤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현실 바꾸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실천

과거에는 빈곤 문제를 두고 국제사회와 경제학계가 원조 대 시장의 발전이라는 구도하에서 이념적으로 대립했다. 이들의 연구는 빈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기초하여 어떻게 빈곤에 맞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실을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경제학의 실천적 역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바네르지 등은 이제 실험의 규모와 장소를 확대하며 연구 결과를 정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이 설립한 J-PAL이라는 연구기관은 전 세계로 네트워크를 확장했고, 인도에서 학생 수백만 명이 수준에 맞는 학습 보조를 받는 등 그들의 연구에 기초한 프로그램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발경제학에서는 실증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이 주류가 되었고, 이들의 접근법은 증거에 기반한 경제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포함하여 한국에서도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역시 현장에서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책 담당자들과 경제학자들도 신발에 흙을 더 묻혀야 하지 않을까.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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