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4일 홍콩 민주주의의 여명
  • 홍콩·관춘호이(關鎭海) (전 <빈과일보> <명보주간> 기자)
  • 호수 634
  • 승인 2019.11.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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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4일 홍콩 구의회선거 투표율이 사상 최고가 될 전망이다. 사실상 모든 성인이 유권자로 등록했다. 친중 정치인이 장악한 의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시위의 향방도 달라진다.
ⓒ장진영9월30일 홍콩 침사추이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인간 띠잇기 행사가 열렸다.

11월24일 홍콩 구의회선거는 송환법(逃犯條例·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이후 열리는 첫 번째 선거다. 유권자들은 18개 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선출한다. 홍콩은 선거 두 달 전에 사전 등록한 시민만 투표할 수 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전체 홍콩 인구의 절반이 넘는 시민 412만명이 유권자로 등록했다. 등록 유권자는 지난 선거에 비해 38만명 이상 늘어났다. 1981년 지방선거 실시 이래 사상 최대 기록이다. 사실상 홍콩 내 모든 성인이 등록한 셈이다. 2014년 ‘우산운동’ 이후 열린 선거에 등록한 유권자는 311만명으로 투표율 역시 47%에 그쳤다.

유권자 사전 등록 증가는, 일국양제 아래 살고 있는 홍콩 시민에게 민주와 자유는 아직 먼 이야기이며 ‘완벽하지 않은 민주주의’가 홍콩의 현실이라는 걸 시민들이 자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4개월 넘게 시위가 지속되는 동안 공권력은 폭력을 남용함으로써 홍콩 시민의 인권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한 후보자는 “2019년 홍콩은 ‘정치 각성의 해’가 될 가능성이 보인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기점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0주년을 맞은 10월1일이었다. 이날 홍콩 지하철은 거의 폐쇄되다시피 했다. 홍콩 시위대는 국경일인 이날을 ‘항쟁 데드라인’으로 여겼다. 신계의 튠문(屯門), 샤틴(沙田) 그리고 췬완(荃灣)에서 벌어진 시위는 특히 치열했다. 거리마다 ‘중국 국경절을 왜 축하해야 하느냐’라는 내용과 거친 욕설이 담긴 낙서들이 보였다. 시위대는 후일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폭력 노선 역시 이날을 기점으로 사실상 무너졌다. 시위대는 경찰 혹은 경찰차에 화염병을 던졌다. 다른 시위자를 구조하기 위해 경찰을 습격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날 고등학교 2학년인 창쯔킨은 경찰로부터 총을 맞고 쓰러졌다. 경찰은 병실에 누워 있는 창쯔킨을 ‘폭동죄’로 기소했다. 이 밖에도 15세 이하 홍콩 청소년 105명 이상이 시위를 이유로 체포되거나 구금됐다.

몇몇 청소년은 중국 국기를 모욕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9월22일 한 소년은 샤틴 타운홀에 걸린 오성기를 끌어내렸다. 이후 이른바 ‘국기 모욕’은 일상이 되었다. “중국 국기가 학생 손을 거치지 않도록 하라”는 건 학교마다 불문율이다. 일부 중학교는 국기게양식에 교장이 직접 나서 국기를 올리기도 했다.

시위대의 분노는 이미 ‘캐리 람 하야’에서 중국의 공산당 정권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리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70주년 축하 배너가 훼손된 모습이나 ‘홍콩 광복’이라는 문구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장진영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은 10월1일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이 몽콕 지역에서 시위대를 강제해산하고 있다.

10월5일 홍콩 정부는 영국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긴급법’까지 동원했다. 긴급법은 1922년 당시 식민지 정부가 선박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에 대응해 시행됐다. ‘공중의 이익에 부합한 조례’라면 입법회 의결 절차 없이도 행정장관이 제정할 수 있다. 홍콩은 52년 전인 1967년 이른바 ‘좌파 소란’을 진압하기 위해 긴급법을 발동한 역사가 있다. 당시 긴급법에 따라 만든 조례(선동성 표어 제지 긴급 조례)는 집회 활동을 전면 금지했고, 시위와 표현의 자유 역시 제한했다. 길거리에서 정치적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배포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었다.

위헌 소지가 있는데도 캐리 람 행정부는 긴급법을 근거로 복면금지법(禁蒙面法)을 강행했다. 행정부는 이를 통해 ‘폭력행위를 제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0월5일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진 시위로 홍콩은 마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시위대는 중국계 은행과 점포를 파괴했고, 곳곳에서 불길이 일었다. 일부 외신까지 시위대를 폭도(Rioters)로 지칭했다.

홍콩 사회운동 사상 초유, ‘저항’을 외치다

복면금지법 이후 시위대가 사용한 구호와 문구도 변화가 있었다. ‘자유’를 외치던 이들은 ‘저항(反抗)’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홍콩 사회운동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찰 통제는 무의미했다. 10월 중순에 이르면서 시위는 ‘동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른바 중산층이 살고 있는 타이구(太古)나 신계의 튠문 등에서도 자연스럽게 시위대의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철도시설과 친중 상점이 부서지기도 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 진압도 날로 잔혹해졌다.

공권력은 법원까지 등에 업었다. 10월28일 홍콩 고등법원은 ‘경찰과 경찰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당사자 동의 없이 언론이나 SNS 등에 경찰의 신원(얼굴 등)을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일부에서는 “홍콩 경찰이 비밀경찰이 되었다”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위법적으로 시위를 진압하더라도 공권력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기자들 역시 ‘가해 경찰’의 신원을 공개하는 보도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와 별개로 몇몇 경찰은 ‘중국 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지난 8월 시위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시위대에게 산탄총을 겨눈 장면이 언론이 포착되며 주목받은 라우첵케이 경장은 중국 정부 요청으로 다른 홍콩 경찰 9명과 함께 10월1일 국경절 기념행사에 참여한 뒤 그의 웨이보 팔로어 수가 80만명을 넘기도 했다. 이후 라우 경장은 캐리 람 행정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시민과 소통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내놓자 라우 경장은 자신의 웨이보에 이렇게 썼다. “행정장관이 ‘폭도’와 대화하겠다는 게 사실인가? 상상할 수 없다. 이게 법치인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법을 집행할 수 있을까.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라우 경장뿐만 아니라 많은 홍콩 경찰이 웨이보를 통해 ‘막말’은 물론 시위대를 비난하는 일을 일삼고 있다.

ⓒ시사IN 이명익‘우산운동’의 주역 조슈아 웡(아래)은 구의회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11월24일 구의회선거를 앞두고 출마 자격 박탈권(Disqualify, DQ)을 가진 홍콩 민정사무처의 태도도 묘하게 달라졌다. 그동안 야당인 ‘민주파’ 후보의 출마 자격을 이유 없이 박탈하기도 했던 민정사무처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출마자 검증을 매우 신중하게 진행했다. 민주파 후보 대부분이 출마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지난 4개월에 걸친 시위를 통해, 더 이상 친중 세력인 건제파와만 호흡을 맞출 수 없다는 압박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우산운동’의 주역인 조슈아 웡 홍콩데모시스토 비서장만은 예외였다. 그의 출마 자격은 10월29일 최종 박탈됐다. 여러 번 미국을 방문해 “홍콩 정부 고위 공직자를 제재하라”고 요구한 조슈아 웡은 베이징 당국의 눈엣가시였다. 조슈아 웡의 출마 자격 심사를 담당한 민정사무처 지역구 선관위 주임이 갑자기 병환을 이유로 휴가를 내고 사라지는 등, 홍콩 정부가 개입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바뀐 선관위 주임은 조슈아 웡에게 ‘홍콩 독립’에 대한 견해를 세 차례 물었고, 조슈아 웡은 “중국 정부가 홍콩 주권을 가지고 있는 체제에서 홍콩 독립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답변을 보냈지만 결국 출마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독립’이나 ‘자주’를 입에 올릴 수 없는 일국양제하의 선거는 젊은 세대에게 이처럼 ‘레드라인’으로 작용한다. 친중 성향의 건제파가 70% 이상 다수를 장악한 의회는 송환법 이후 변화를 맞을 수 있을까. 시위의 향방도 11월24일 선거에 달려 있다.

번역·양첸하오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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