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헨리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 장소가 낯설었다. 그는 열 명도 넘는 장정들과 치솟는 불기둥에 휩싸여 있었다. 불필요할 정도로 비장한 선율에 맞춰 격렬하게 관절을 꺾는 이들을 배경으로 헨리 역시 춤을 추며 바이올린을 켰다. 데뷔 2년째에 막 들어섰던 그룹 슈퍼주니어의 ‘돈돈(Don’t Don’t)’ 무대에 선 객원 연주자 헨리였다.

아직 연습생 신분이었는데도 정식으로 무대에 난입해 바이올린 연주를 난사하던 그때도, 〈나 혼자 산다〉 〈비긴 어게인〉 등에 출연해 가수보다는 예능인으로 인지도를 높인 지금도 헨리를 떠올리면 꽤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는 아이돌인가 가수인가, 아니면 그저 예능인인가. 심지어 홍콩·타이완계 캐나다인으로 한국과는 아무런 혈연도 인연도 갖고 있지 않은 그는 이 나라 이 땅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국경과 장르를 넘나들며 재능을 인정받아온 그의 과거와 비교해보면 더욱 선명한 물음표로 드러난다.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며 타고난 음악적 소질을 뽐낸 그는 음악과 관련된 각종 대회를 휩쓸며 부지런한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클래식의 길로 진로를 고정하려는 찰나, 예고도 없이 춤이 그의 삶에 들어왔다. 우연히 본 비보잉 공연이 계기였다. 오랫동안 단짝으로 지내온 악기들만큼 춤에도 푹 빠진 그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장르를 마침내 찾아냈다. 다름 아닌 케이팝이었다. 2006년 캐나다에서 열린 SM엔터테인먼트 글로벌 오디션에 합격한 후, 헨리는 한국으로 적을 옮겨 슈퍼주니어의 중국 유닛인 슈퍼주니어-M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정답 없는 케이팝 세계는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재능 부자에게 순순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때로는 국가 간 정치외교적 문제가, 때로는 케이팝 팬덤 특유의 분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그럴 때마다 헨리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2013년 발표한 데뷔작 ‘트랩(Trap)’에서는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다 갑자기 뚜껑을 닫고 올라가 춤을 추기도 했고, 이듬해 발표한 ‘판타스틱(Fantastic)’에서는 세기말적 디자인을 적용한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색다른 안무를 구성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인 건 그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엔터테이너로서의 매력이 예능을 통해 꾸준히 재소환된다는 사실이다. 행복한 얼굴로 각종 악기를 어루만지는 모습과 집 현관문에 붙인 ‘네가 사랑하는 것을 하라(Do What You Love)’라는 격언이 겹쳐질 때, 그리고 이국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들로 스모키한 결이 인상적인 보컬의 특징이 살아날 때 헨리는 다시 한번 가수로, 아이돌로 살아난다. 그는 지난해 10년 동안 함께했던 기획사의 품을 떠나 몬스터엔터테인먼트그룹이라는 1인 기획사를 차리고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나섰다. 그의 재능은 여전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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