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의 깊은 사유 한눈에 읽기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634
  • 승인 2019.11.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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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그림

실패로 점철되었던 발터 베냐민(1892~1940)의 삶은 오늘날 그가 누리는 영향사적 명성과 놀라운 대조를 이룬다. 그는 그리 긴 생애를 산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날 많은 이론가와 비평가들이 그가 시도했던 문화 비평·매체 철학·언어철학· 역사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영감을 길어 올리고 있다. 김진영의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포스트카드, 2019)는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드높고 폭넓게 흩어져 있는 베냐민의 사유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기술해놓아서, 그를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좋은 선물이 된다.

베냐민은 당대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의 매우 부유한 부르주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종교적·민족적 정통성을 버리고 세속화의 길을 걸었던 독일계 유대인인 부친은 은행업과 투자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이처럼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난 베냐민은 일찍부터 장난감과 고서적 등 여러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는데, 그가 28세 때 뮌헨 골츠 화랑에서 거액을 주고 구입한 그림이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다. 이 그림을 처음 보고 눈물을 흘렸다던 베냐민은 몇 년 뒤 자신이 창간한 잡지에 그림 제목과 같은 제목을 붙이기도 했으며, 나치를 피해 유럽을 전전하는 중에도 이 그림을 마지막까지 간수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유치원생의 서툰 솜씨를 곧바로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몸통보다 더 큰 가분수 머리를 한 천사는 무엇에 놀란 듯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약간 벌린 채, 두 팔을 치켜들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감정이입을 해보려고 해도, 대체 베냐민은 낙서보다 조금 나아 보이는 이 엉성한 그림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그는 열여덟 개의 테제로 구성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제9번 테제를 이 그림에서 추출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그는 얼굴을 과거로 향하고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 천사는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다시 결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김진영 지음, 포스트카드 펴냄

‘전통’과 ‘전승’을 구분해야 한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나치에 쫓긴 베냐민이 피레네산맥을 넘지 못하고 모르핀을 먹고 자살했던 해에 쓴 글로, 틀을 갖춘 형태로 완성된 그의 마지막 글이다. 다분히 유서의 성격을 띤 이 글에서 베냐민은 근대의 시간관과 진보주의자들의 진보 사관을 비판한다. 근대의 시간관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일직선·일방향으로만 흐른다. 또 진보 사관은 현재를 미래에 기탁하면서 과거를 현재와 단절시키고 과거를 망각하려고 한다. 이런 사고는 과거 속에서는 아무런 발전을 찾을 수 없다는 진화론적 사고에 바탕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베냐민은 ‘과거 속에 구원이 있다’라면서, ‘전통’과 ‘전승’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진영의 설명을 들어보자.

“베냐민은 ‘전통’과 ‘전승’을 구분하려 합니다. 전통이 권력 상속 체계에 의해서 고착되어 내려오는 것이라면, 전승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전통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전통 속에 소속되어보지 못한 그 어떠한 것,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무엇입니다. 과거 속에는 우리에게 권리를 요청하며 전승되어온 것이 있는데, 그것들을 다시 복원해서 전통, 즉 과거의 정통성이라는 권리를 다시 부여하려고 하는 것이 베냐민의 역사철학입니다.”

이런 설명은 <새로운 천사>를 열여덟 개 테제로 응축한 베냐민의 역사철학에 대한 도상적 해석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즉 역사의 천사는 과거를 보듬으며 재구성(전승)하려 하지만, 역사주의 또는 진보라는 폭풍은 역사의 천사를 미래 쪽으로 자꾸만 떠민다. 천사를 미래로 떠미는 폭풍은 진보 또는 근대라는 그럴듯한 환상으로 포장된 자본주의이며(천사의 발밑에 쌓이는 잔해는 ‘유행’이고 ‘신상품’이다), 이 자본주의는 과거로부터 잘못 전승된 전통인 종교와 습합(習合)되어 있다(신으로 승격된 돈과 그것을 얻기 위한 활동은 이미 종교다).

“역사의 인식 주체는 투쟁하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제12번 테제)이라고 말하는 베냐민은 마르크시스트가 분명했지만, 그의 싸움터는 계급투쟁이 아니었다. 그는 구체적 생활 속에서 자본주의가 펼쳐놓은 억압과 매혹의 양가적 정체를 분석하려고 했으며, 그만의 독특한 법철학을 전개했다. ‘조국 대전’으로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부상했지만, 이 기회에 법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제6강을 읽어야 한다. 베냐민에 따르면 법은 애초에 우리(억압받는 계급)의 삶을 배제한 채 만들어졌다가, 권력을 창출한 후에는 슬그머니 우리의 삶을 자기 안으로 내포해, 우리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신성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배제되었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포됩니다. 우리 삶의 외부에서 창출된 법적 권력은 자체 법조문으로는 아무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자기 안에 내포시키기 위하여 인권이라는 명목을 활용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웃음을 빼물었다. 국민으로부터 강한 개혁을 요구받은 검찰이 10월1~29일 자체적으로 내놓은 총 일곱 차례의 개혁안 속에는 공개소환 전면 폐지·심야조사 폐지·변호인의 변론권 강화 등의 인권보호책이 포함되어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검찰개혁이 ‘고작’ 이것이었다는 말인가? 이런 술수에 의해 우리는 삶이 법이고 법이 곧 삶이 되어버린 관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을 쓴 김진영은 한국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베냐민과 아도르노의 철학을 공부했다. 귀국해서 여러 인문학 기관에서 철학·소설·예술을 강의했던 지은이는 2018년, 향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가 생전에 했던 강의 녹취를 푼 유고이며, 최근에는 또 다른 강의록을 정리한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읽기> (메멘토, 2019)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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