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 논하는 자리에 입시 질문만 쏟아졌다
  • 변진경 기자
  • 호수 634
  • 승인 2019.11.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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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서 전 세계 교육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한국 교육이 ‘학생 성공’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하지만 언론의 초점은 결국 대입 전형이었다.
ⓒ시사IN 윤무영10월23일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에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이 한국 교육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추진으로 교육계 안팎이 떠들썩하던 10월 끝자락,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작지 않은 교육 행사가 하나 열렸다. 10월23일부터 사흘간 열린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우리나라 국가교육회의, 교육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한국교육개발원 등 총 11개 교육기관이 주최했다. 국내 교육계 인사들뿐 아니라 독일·핀란드·미국·네덜란드·일본 등 해외 교육 전문가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콘퍼런스의 바탕은 OECD의 ‘교육 2030 프로젝트’이다. ‘교육 2030 프로젝트’란 2030년 무렵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역량이 무엇이며, 학생들이 그 역량을 갖추기 위해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할지 논의하는 국제적 사업이다. 그동안 교육과정과 정책은 국가마다 따로 논의되고 결정되어왔지만 이제 범국가 수준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공통으로 맞닥뜨린 여러 도전 과제(기후변화, 인공지능, 사회적 불평등, 테러 등)에 대응하는 교육의 역할과 기능은 결코 개별 국가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2016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학습자의 지식·태도·기술·가치를 설정하기 위해 교육학계와 정부 등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토론해왔다. 이번 콘퍼런스는 그동안 흘러온 논의의 도착점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교육 전문가’ 안에 머무르던 미래 교육 의제를 학생·교사·학부모·지역 주민 등 모든 교육 주체에게 던지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시사IN 윤무영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왼쪽)과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오른쪽).

■ ‘앎’에서 ‘할 줄 앎’, 나아가 ‘살 줄 앎’으로

2030년을 위한 미래 교육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10월23일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2030 미래교육체제의 방향과 주요 정책의제’를 발표했다. 김 의장은 앞으로 교육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으로 학력 개념의 ‘역량’을 제시했다. 그간 우리 교육에서 학력은 요약·압축된 학문적 지식을 암기·적용하는 과정이며 상위 위계의 직업으로 나가기 위한 자격증 역할에 그쳤다. 이런 ‘개념적 앎(지식)’에서 ‘할 줄 앎’, 나아가 ‘살 줄 앎’으로 학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고, 이 세 가지 앎이 융합한 ‘살아가는 능력’이 곧 ‘역량’이다.

김 의장은 이런 역량 중심의 미래 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전략으로 ‘교육 내적 공정성 강화’ ‘경제·사회 혁신과 맞물리는 교육 혁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통한 중장기 개혁의 안정적 추진’ 등을 제안했다. 교육 내적 공정성이란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아갈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고, 그럴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부분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것이다. 김 의장은 현재 대입 전형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성은 이런 교육의 내적 공정성과 관계없는, “지위 획득을 위한 게임 룰의 유불리를 따지는 이해관계 다툼”으로 해석했다. 김 의장은 “이 다툼이 교육의 장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다툼의 연원이 교육 외부에 있다는 점에서 교육 외적 공정성 논란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 OECD 교육 전문가가 본 한국 교육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세계 각국의 교육정책과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이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비롯한 국제적인 평가 도구를 창설했고 지금껏 관장해오고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독일인이지만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장관에게 “영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교육을 범국가적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그에게 한국 교육을 분석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가 뽑은 키워드는 ‘학생 성공’이었다(10월23일 한-OECD 국제교육콘퍼런스 기조연설 ‘2030년을 향한 한국 교육, ‘학생 성공’을 다시 정의하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이 고안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은 상위권을 유지한다. 잘 알려져 있고 많은 국민이 뿌듯해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조금 ‘상대적인’ 성적표를 하나 화면에 띄웠다. 총 학습시간을 반영한 과학 성취 점수, 즉 학습 효율성 점수다(<그림 1>). 절대 점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던 한국은 이 ‘학습 효율성’ 그래프에서 중하위권으로 밀려난다. 그는 “학습 경험의 질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들이는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의 긴 학습 시간은 많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신체활동, 사회생활 및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이다. 여러 OECD 지표들이 뒷받침한다. 학업 관련 불안감이 두드러지게 높고(<그림 2>) 학교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학생 비율이 가장 낮다(<그림 3>). 15세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도 최하위권이다(<그림 4>).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한국 교육에서 ‘학생 성공’이 더 이상 ‘학업 성공’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이 학생의 인지적 성과 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성과의 발달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평생학습, 디지털 교육, 대학 혁신, 마을공동체…

사흘간 진행된 콘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미래 교육 의제와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일-학습-삶의 선순환을 위한 평생학습 체제 수립의 방향과 과제’를, 김대현 부산대 교수는 ‘미래 사회와 새로운 학교체제’를, 김진숙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미래교육정책본부장은 ‘디지털 전환과 교육체제 융합 방향’을,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 등은 ‘한국 고등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체제 혁신과 정책과제’를, 김용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육자치와 교육주권’을 미래 교육의 화두로 던졌다.

의제별로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들도 소개했다. 바바라 헴크스 독일 연방직업교육훈련연구소 본부장은 ‘학습자의 다양한 발전 경로를 보장하는 독일의 평생학습 사례’를,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혁신국장은 ‘핀란드 교육과정의 개혁과 실행’을, 에이드리언 림 싱가포르 정보통신미디어개발청 디지털리터러시 본부장은 ‘사회 성장을 위한 싱가포르의 디지털 시민성 추진 사례’를 발표했다.

존 오브레이 더글러스 미국 UC 버클리 고등교육센터 선임연구교수는 ‘캘리포니아 체제로 바라본 한국 고등교육 체제’를 통해 사립대 위주의 한국 대학 체제를 비판했고, 고이치 나카타 일본 대동문화대 교수는 ‘일본 커뮤니티스쿨 정책의 현황과 과제’를 통해 한국의 마을교육 공동체 운동에 시사점을 주었다.

이처럼 많은 미래 교육 의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교육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대입’이라는 좁은 영역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과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이 ‘역량’ 중심의 미래 교육 혁신과 한국 교육에서의 ‘성공의 재정의’를 주제로 한 발표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의 질문 90%가 대입 전형에 관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정시 확대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종과 수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외국에는 대입 전형과 관련해 어떤 논란이 있습니까?” 등등. 슐라이허 교육국장이 ‘표준화된 성취 평가’의 한계에 대해 발언하자 한 언론사는 이런 기사 제목을 내걸었다. “OECD 교육국장, 수능 확대 반대.”

이런 상황임에도 미래는 다가오고 있다. OECD가 설정한 2030년은 결코 멀지 않은 미래다. 지금 중학생 정도 나이의 아이들이 취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할 즈음이 2030년 전후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쯤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그 능력을 갖추도록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정시 대 수시 몇 퍼센트의 비율로 대학 입시를 치를 것인가’ 논쟁에 묻혀버린, 이 거대하고 막연하지만 기필코 그 답을 찾아야 할 미래 교육 의제를 우리는 더 자주 입에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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