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이야기 나보다 씩씩하고 멀리간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634
  • 승인 2019.11.14 12: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갓 등단한 장류진 작가의 작품은 한국 문학이 수호해온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객관적인 자기 인식, 경쾌한 실천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비 제공

장류진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 그의 SNS에 ‘새 글’이 떴다. ‘리뷰 읽으며 눈물 줄줄인 나날들.’ 작가의 근황을 요약하는 문장이었다. 책에 대한 리뷰를 읽을 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정도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맺히는 정도가 아니고 단어 그대로 줄줄 흐른다고.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등단 1년 만에 나왔다. 1, 2쇄 합쳐서 1만 부를 찍었고 일주일도 안 되어 5000부를 추가로 인쇄했다. 갓 등단한 소설가로서는 이례적인 숫자다. 단기간의 성취라고 볼 수만은 없다. 소설을 처음 쓴 건 10여 년 전이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는 ‘나’는 회사가 만든 중고 거래 앱에 글을 도배하는 ‘거북이알’의 정체를 파악하라는 미션을 받는다. 회장의 심기를 건드려 월급 대신 카드 포인트를 받지만 절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거래를 통해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는 직장인의 이야기를 접한 독자들은 실제 어떤 기업을 떠올리기도 했고,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라는 등장인물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창작과비평 웹사이트에 공개될 당시 4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판교에 실제로 있는 ‘건널 수 없는 육교’가 작품에 등장했고,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지난 1년간 작가는 판교에 있는 IT 회사에 다니며 청탁받은 글을 썼다. “열 명 중 한 명 뽑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몇천 명 중 한 명이라 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운이 내게 왔는데 잘못해서 이걸 놓쳐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청탁이 계속 들어오자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최근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간 출간 계약을 많이 했다. 향후 몇 년간, 그 계약들로 나태하진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느낌보다 직업을 바꾼다는 감각이었다. ‘인생 2회 차’였다.

여덟 편의 단편에는 이삼십 대 직장인 화자가 자주 등장한다. 그 속엔 ‘(축의금으로)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세상,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는 받는’ 세상에서 특 에비동을 시켜놓고선 새우를 많이 준다고 마냥 좋아하는 빛나 언니가 답답한 ‘나’도 있고(‘잘 살겠습니다’), 한여름 첫 출근길 ‘아메리카노 2000원’이라는 문구를 보고 들어간 카페에서 아이스는 4500원이라는 말을 듣고 망설이는 ‘나’도 있다(‘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현실적이지만 쉽게 냉소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눈물 줄줄’의 표현을 빌리자면 ‘웃음 킥킥’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작가는 일상 속 한 장면에서 소설을 시작하는 편이다. ‘오피스텔 성매매’를 하러 왔으나 목적지를 잘못 찾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새벽의 방문자들’에는 집 안의 여자와 문 밖의 남자가 렌즈를 통해 서로 마주보는 장면이 나온다. 태연함, 주저함,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남자들을 화자는 카메라로 촬영하고 프린트한다. 시선이 전복되는 순간이다. 이 역시 한 장면에서 시작했다. 작가가 혼자 살 때 실제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고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문의 렌즈를 통해 이쪽을 들여다보았다.

예전 살던 동네에서 장 작가는 갈림길의 가운데에 섰던 적이 있다. 한쪽은 여자가 나오는 술집들이 즐비했고 반대편으로 가면 집이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작가에게 알은체를 했다. 저기서 일하는 아가씨가 아니냐면서. 아니라고 하자 사과하고 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면 끝인가. 돈 주고 여자를 사는 사람이라면 일상 속에서 다른 여자를 만날 때 어떤 형태로든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앞의 장면과 그런 생각이 만났다. 소설 속 성매매하는 남자의 외양 묘사는 실제 인물이다. 외모를 그릴 때 고심했는데 실제 성매매 경험을 당당하게 말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썼다.

‘이 작가가 소설 기계가 됐으면 좋겠다’

해설을 쓴 인아영 문학평론가는 그의 소설에 대해 ‘한국 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내면과 자아라는 말이 소설에서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다. 습작을 할 때도 그런 평을 들었는데 비슷한 생각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그게 없다고 하니 잘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데뷔를 하고 뭔지 모르는 그 점을 새로움으로 평가해주어서 기뻤어요.”

쓸 때는 몰랐는데 다 묶고 해설을 읽은 뒤 일관되게 자신이 돈, 숫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축의금 5만원, 창틀 청소는 1만원 추가, 연봉 2663만원같이 숫자가 등장한다. 돈이 자신에게 중요한 감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쓰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속한 계급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에게 문학은 ‘지어낸 이야기’고, 읽고 난 뒤 뭔가 남기는 것이다.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스무 살, 수능 지문에 나온 문학·비문학만 읽다가 처음 정이현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한국 문학이 재밌다는 걸 알았다. 김애란, 권여선, 김금희, 편혜영, 황정은 작가 등의 작품을 읽었다. 소설을 특히 많이 읽은 건 취직하고 나서였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10여 년 전부터 IT 회사의 서비스기획 파트에서 일했다. 글 쓸 일이 전혀 없었다. 허전했고, 소설 쓰기 강좌를 듣기 위해 문화센터에 나갔다. 가다 안 가다 할 때도 있었고, 2~3년간 소설을 잊고 산 적도 있었다.

직장 생활 5년째가 되었을 때 1년 정도는 쉬어도 되겠다 싶었다. 업계에서 선호하는 연차였다. 다시 돌아오거나 다른 회사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에 다니며 1년 동안 사이버대학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동국대 대학원에 편입하며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취직을 했다. 재취업 3일 만에 등단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소설 쓴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도 숨겨왔다.

‘나는 겁이 많고, 걱정이 많고, 좀처럼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나보다 씩씩하고 나보다 멀리 간다.’ 작가의 말에 실린 문장이다. 글을 쓸 때마다 만족감과 자기 비하 사이에서 감정이 널을 뛴다. 그사이 작품은 독자들의 반응을 얻고 씩씩하게 갈 길을 간다. 독자는 각별하다. 작가 인생의 시작부터 영향을 주었다. 책도 나오기 전이고,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데도 많은 사람이 읽어주었다. 예전에는 오로지 합평을 위해서만 보여주었고 그게 목적이었다. 순수한 독서의 반응을 본 건 처음이다. 리뷰를 볼 때마다 눈물 흘린다는 작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가) 소설 기계가 됐으면 좋겠다’는 독자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현재로서는 ‘계속 써보겠다는 마음, 그 마음밖에는 없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