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복날을 앞둔 때였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상담실로 불렀다. 선생님 손에 모의고사 성적표가 들려 있었다. “1점당 한 대!” 그땐 매월 모의고사를 봤다. 모의고사 직전에 써낸 예상 점수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낮으면 ‘점당 한 대’를 맞았다. 그해 선생님은 해태 타이거즈 4번 타자 김봉연 선수를 흉내 내듯 풀스윙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맞았던 매보다 그날 하루에 더 많이 맞았다.
학력고사 세대다. 점수대별로 지원했다. 적성은 그때도 ‘적당한 성적’의 줄임말이었다. 학력고사 세대들이 요즘 향수를 말한다. “점수 하나로 대학을 갔으니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 “전두환이 잘한 게 과외금지와 학력고사지”. 금융상품보다 복잡한 대입 전형이 빚은 기억의 왜곡이다. 착각이다.
‘조국 대란’이 불러온 공정 이슈가 교육 이슈로 전환됐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교육 이슈가 입시전형 정책이라는 블랙홀로 빠져버렸다. 이른바 ‘정시·수시’ 논쟁이다. 교육 문제가 입시전형 정책으로 매몰되는 순간 답은 없다. 뫼비우스 띠와 같다. 단기책의 무한 반복이다.
핀란드 교육을 취재한 적이 있다. 부러운 게 있었다. 교육의 3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를 모두 만족시킨 핀란드가 어느 날 갑자기 교육 강국으로 떠오른 건 아니었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교육정책이 복지정책과 함께 추진됐다는 점이다. 핀란드는 복지국가 개념이 확립된 1960년대 후반부터 교육개혁의 씨앗을 뿌렸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얼마나 끈질기게 추진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 있다. 바로 1972~1991년 핀란드 국가교육청장을 맡은 에르키 아호다. 전직 교사이면서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연구한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20년간 교육청장을 맡으며 교육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자유한국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정의당이 집권하든 한 사람이 교육부 장관을 계속 맡아 중장기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결과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추진했다. 초당적 기구로 중장기적인 교육정책 수립을 목표로 했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정부 탓만은 아니다. 사회적 대타협 경험이 부족한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은 입시전형 정책이라는 블랙홀 속에 빠지면 길을 잃고 만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입시전형 정책과 공정 이슈를 점검했다. 지난해부터 〈시사IN〉은 광주형 일자리 등 노사정 대타협의 성과와 한계를 조명하고 있다. 다행히도 군산 등 지역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일부 이뤄지고 있다. 이 두 문제는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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