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 교실의 풍경과 상처
  • 이윤승 (서울 이화미디어고 교사)
  • 호수 633
  • 승인 2019.11.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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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어느 날 학생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친구가 지금 하는 수업은 누구를 위한 수업인지 물었다’며 ‘교사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에서 수업하기 어떠냐’라고 물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시간은 학교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은 시간이다. 내가 속한 학교는 미디어 관련 특성화고여서 크게 세 부류의 학생들이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 수시로만 진학을 준비한 학생,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이 모든 부류 중에서 3학년 2학기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은 없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오로지 수능을 위한 시간이고, 수시를 준비한 학생들에게 지금은 수시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잉여의 시간이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10월부터 하나둘 현장실습을 떠나 학교에 오지 않는다. 정말 누구를 위한 시간이고 무엇을 위한 수업일까.

이런 시기 교사들은 수업에 들어가서 할 것이 없으니 자습시간을 주고 자신도 책을 읽거나 업무를 하곤 한다. 절대로 그냥 자습만 하면 안 된다는 각오로 수업 준비를 해가기도 하지만 듣는 학생이 몇 명 없으니 며칠이 지나면 결국 자습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진학에 필요 없다 해도 이렇게 수업을 안 들을 수가 있느냐며 한숨을 쉬거나 학생들의 자세를 꾸짖는 교사가 있고, 이것이 한국의 교육이지 싶어 포기하는 교사도 있다.

학생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수능을 봐야 하는데 수업시간마다 교사의 꾸짖음과 한숨을 듣는 것도 눈치가 보이니 차라리 학교를 결석하는 게 낫다는 학생이 있다. 하루 종일 하는 자습이 지겨워서 잠만 자는 학생도 있다. 수시 면접이나 적성평가,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의 경우엔 재수생과 달리 학교에 묶여 있는 것 같아 초조해하기도 한다. 더구나 미술이나 연기 등 실기학원 강사들은 학교를 결석하고라도 아침부터 나와서 실기를 연습하라고 종용하니 학생들로서도 참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과 교사 중 누가 문제라고 말하긴 어렵다. 서로가 답답하게 생각하며 상처를 주고받지만, 사실 둘 모두 누구의 책임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엔 각자의 사정이 절실하다.

11월이면 수능을 본다. 수능이 끝나면 자습하러 나오던 학생도 잘 나오지 않는다. 출석이 나중에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렇게 수능이 지나고 두어 달 동안 교사와 학생은 학교의 존재 이유를 결국 찾아내지 못한 채 졸업을 맞이한다. 3학년 1학기 때까지는 개근이었고 수업시간에 매우 잘 참여하던 학생이었다 해도 2학기엔 어쩔 수 없다. 그동안 고등학교는 졸업과 진학을 위한 곳이었을 뿐이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알고 있었다. 수업조차 시험을 위한 시간이었다. 시험이 없는 수업을 온전히 채워갈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학교가 ‘삶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당장 대입정책과 고교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을 테니 앞으로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의 풍경은 비슷할 것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2월의 졸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활기록부를 채우는 5학기의 과정이 끝나고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면, 고등학교는 그 순간 끝난다. 그렇다고 입시 시기를 늦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이 시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학교와 수업은 늘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였으며 교사와 학생 모두 그것에 익숙해졌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상황을 바꾸려면 수업 그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학교가 변해야 한다. 또는 학교 자체의 목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는 더 이상 뭔가를 배우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배움만이 목적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변화는 지금 당장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은 교사와 학생 모두 ‘멍 때리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주자. 10여 년을 경주마처럼 살았는데 두어 달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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