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그래픽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펴냄

“이 일이 누구한테 더 끔찍할까? 그일까, 그녀일까?”

‘세계명작 전집’이라는 동아시아 특유의 출판사 기획물을 기준으로 ‘읽어야 어디 가서 교양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책의 목록을 학습해온 사람에게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생경한 작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인구구조의 변화가 한국 등 선진국의 복지제도나 국민소득, 나아가 전체 시스템에 미치는 악영향을 걱정해온 사람이라면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취중 만담 수준에서라도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1985년 발표한 〈시녀 이야기〉는 이미 성과 권력의 관계를 섬뜩하게 탐구한 ‘고전’으로 승인되어 ‘세계명작’ 반열에 들어간 작품. 텔레비전 드라마판 역시 글로벌 차원에서 폭발적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이런 작품의 그래픽노블을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윤이나 지음, 코난북스 펴냄

“밀레니얼은 체념으로부터 출발한 능동성과 포기로부터 시작된 창의력으로 일한다.”

결혼은 뭐, 꼭 해야 하나. ‘평생직장’이 사라졌다고 해도 평생 일해야 하는 건 불 보듯 뻔하고, 임금은 쥐꼬리만큼이어서 부자가 되기는 글렀다. 쥐꼬리 같은 소득이란 언제든 도망쳐도 날려버릴 기회비용이 적다는 뜻이라, 기왕 일할 거라면 더 당당하게 자기만의 방식대로 하는 게 좋다. 성공을 향한 과정은 때로 너무 지루하게 느껴진다. 스마트폰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고, 원한다면 전 세계로 떠날 수 있다.
1983년생인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2000년 즈음 성인이 된 사람부터 그 무렵 태어난 사람) 가운데 선발주자다. ‘어쩌다 밀레니얼 노마드’가 된 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적극 모색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현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분노로 인해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우리 일상생활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그 힘을 길러야 한다.”

모르는 여성이 당한 죽음과 폭력이 ‘내 삶’과 겹쳐질 때 나는 자주 넘어졌다. 때로 마음이 아니라 몸이 몹시 아팠다. 그렇게 ‘대리 외상’을 겪어온 사람이 당연히 혼자만은 아니었다. 함께 아파하고 분노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달라졌다. 피해자의 용기를 기억하고, 변화를 약속할 수 있게 됐다.
여성주의 활동가 권김현영의 첫 단독 저서다. 2003년부터 최근까지 써왔던 글을 다듬어 묶었다. 20여 년간 여성주의 진영에서 활동해온 저자 덕분에 독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만들어온 변화의 궤적을 더듬어볼 수 있게 됐다. 페미니즘은 갈등의 ‘벽’을 쌓는 학문이 아니다. 갈등을 통해 좀 더 평등한 세상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를 만드는 일임을 그의 글이 증명한다.


 

 

 

 

 

 

 

 

할머니들의 야간중학교
서아귀 지음, 유라주 옮김, 오월의봄 펴냄

“비가시화됐던 재일조선인 여성이 운동을 통해 처음으로 사회적 존재로 드러났다.”

재일조선인 여성 1세대는 해방을 전후해 일본으로 건너왔다. 대부분 10~20대였다. 이후 평생을 가족 돌봄노동에 종사했다. 글을 배우고 싶다는 평생의 소원이 이뤄진 건 중·노년기가 되어서였다. 1990년대 동오사카 지역의 야간중학교 학생 대부분은 중·노년 재일조선인 여성이었다. 학생 수가 늘어 시설이 부족해졌지만, 시 교육위원회는 증설은커녕 1㎞ 떨어진 곳에 분교 교실을 만들었다. 재일조선인을 멸시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재일조선인 여성들은 이후 8년간 야간중학교 독립을 위해 싸웠다. 저자는 ‘어떻게 이들이 배울 권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안고 연구를 시작했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외 지음, 문학동네 펴냄

“동물을 사랑함은 시절과 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동물과 살아본 사람은 안다. 동물도 나이가 들면 질병을 앓는다. 반응속도가 느려지고, 눈도 어딘가 모르게 퀭해진다. 그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노견을 키우며 알게 되었다. 비슷한 기억이 많다.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 9명이 각자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비영리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가 반려동물 복지센터인 ‘카라 더봄센터’의 건립과 운영을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라지만 반려동물과 끝까지 함께하는 경우는 12%에 불과하다. 연간 10만 마리에 이르는 동물이 버려진다. “동물을 사랑함은 슬픔까지 포함하는 일(김하나 작가)”이기도 하고 “새로운 우리를 발명하는 일(이슬아 작가)”이기도 하다.
 

 

 

 

 

 

 

 

 

 

 

서귀포를 아시나요
서명숙 지음, 마음의숲 펴냄

“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칠백 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제주도 서귀포는 한때 ‘신혼여행의 성지’이자 ‘대한민국 관광 1번지’였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촌구석이자 귀양지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산티아고 길에서 고향을 다시 만났다. 올레길을 내고 ‘놀멍 쉬멍 걸으멍’ 풍경을, 사람을, 그리고 역사를 새롭게 보았다. ‘숨으로 인생을 헤쳐온’ 해녀들을, 300여 명이 수장된 남영호 사건을, 4·3 사건 희생자를,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었던 제주 삼촌들을 마주했다.
제주올레 이사장인 저자와 길 위에서 만난 전직 국어 교사 박지현 화가의 그림이 함께 실렸다. “여러분이 사는 곳을 날마다 걸어보라”는 저자의 말대로 책을 읽고 난 뒤 운동화 끈을 묶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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