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법안 트랙 이탈 없을까
  • 천관율 기자
  • 호수 633
  • 승인 2019.11.0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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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패스트트랙에 오른 3대 안건에 대해 여야 합의안을 도출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법 협상에서 자유한국당을 합의로 끌어들여야 한다. 여당의 해법과 야당의 셈법을 분석했다.
ⓒ연합뉴스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오신환,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은 사실상 필연으로 입구와 출구, 두 차례 대충돌을 만들어낸다. 입구의 충돌은 4월에 있었다. 올해 4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패스트트랙 4당 공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4당은 선거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3대 안건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다. 4당이 패스트트랙 상정을 시도하자 자유한국당이 육탄 저지에 나서면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출구의 충돌은 안건들이 본회의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발생한다. 빠르면 10월 내, 늦어도 11월부터다. 3대 안건의 본회의 부의가 임박했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안건인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시점부터 논란거리다. 10월29일부터 본회의로 넘길 수 있다는 게 문희상 국회의장과 민주당의 해석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12월3일부터 가능하다고 본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기간 90일을 포함하느냐를 놓고 법 해석이 갈렸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안건인 선거제도는 11월27일부터 본회의로 넘길 수 있다.

4월의 4당 공조에는 한 가지 중요한 단서가 있다. 선거법을 검찰개혁법보다 먼저 처리한다. 이것은 4당 공조를 가능하게 한 핵심 고리다. 선거법 개정안은 민주당에 불리하다. 4당 합의안을 보면, 지역구 숫자가 225석으로 28석이나 줄어든다(현행 253석). 지역구 의원이 많은 거대 정당에 불리하다. 비례대표 의석은 75석으로 늘어나는데, 이 의석은 ‘절반 연동형’으로 각 정당에 배분된다. 정당득표율 10%를 얻은 정당은, 국회 의석 300석의 10%인 30석, 거기서 다시 절반인 15석을 최소한 보장받게 된다. 이 ‘보장’에 쓸 자원이 바로 비례대표 75석이다. 이 역시 거대 정당에 불리하다.

야 3당은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에 끝까지 찬성하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 민주당이 당론 찬성을 유지한다 해도, 지역구가 사라질 의원 개인이 당론을 거슬러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4당은 민주당의 핵심 국정 과제인 검찰개혁법안과 선거법을 묶어, 선거법이 가결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 검찰개혁법을 표결하도록 구조를 짰다. 본회의에서 선거법이 엎어지면, 국정 핵심 과제인 검찰개혁법도 날아간다. 이로써 민주당 의원들의 부담을 끌어올린다.

ⓒ시사IN 이명익4월25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맨 뒤) 가 국회 의안과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제출을 막고 있다.

출구의 2차전은 이 원칙을 민주당이 흔들면서 막을 올렸다. 민주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의 후속 조치로 공수처법 우선 처리 방침을 세웠다. ‘조국 대란’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큰 상처를 입고 입지가 좁아졌다. 서초동 촛불집회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검찰개혁을 중요하고 긴급한 이슈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공세적 국면 전환이 절실했던 여당은 이 핵심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했다. 검찰개혁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고, 특히 상징성이 큰 공수처 우선 처리 카드가 나왔다. 야 3당은 선거법 우선 처리가 4월 공조의 원칙이라며 선을 그었다.

자유한국당의 최우선 관심사는 선거법이다. 공수처 저지보다 선거법 개정 저지가 먼저다. 4당 공조 선거법 개정안을 엎어버리거나 크게 후퇴시킬 수 있다면, 검찰개혁법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기류였다.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의 지역구 의석 축소에 특히 민감하다. 당의 핵심 텃밭인 영남권에서 의석이 상당히 줄어든다. 인구를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계산해보면, 영남권 의석수는 65석에서 58석으로 7석이 사라진다(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 분석자료). 한 석만 흔들려도 파열음이 나는 국회에서 이 정도면 천지개벽이다.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세 가지 경로

민주당은 협상과 협상을 엮어 다차방정식을 풀어보려 시도한다. 원리상 가능한 경로는 셋이다. 첫째, 자유한국당과의 ‘빅딜’이다. 선거법을 대폭 후퇴시키거나 사실상 무산시키며 검찰개혁법에서 크게 양보를 받는 길이다. 하지만 이 길은 사실상 선택하기 어렵다. 정권교체 이후 전방위 적폐청산론으로 압박하던 정당과 갑자기 빅딜을 하면서 패스트트랙 공조를 파기하는 그림을 유권자에게 납득시키기 쉽지 않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는 일부러라도 자유한국당과 각을 세워야 한다. 경제는 원래 여당이 수비하는 이슈고, 남북 관계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우리가 공세로 나설 어젠다가 자유한국당 심판론 정도밖에 안 남았다”라고 말했다.

둘째, 패스트트랙 4당 공조를 복원하면서 자유한국당을 강하게 압박하는 경로다. 일단 본회의에 안건이 올라가면 필요한 표는 149표다(현 정원 297명). 패스트트랙은 입구에서는 각 위원회 정원의 5분의 3 이상을 요구하지만, 출구인 본회의에서는 단순 과반수로 가결된다. 4당 공조의 한 축인 바른미래당에서 패스트트랙 반대파(유승민 의원이 주도한다)가 이탈한다 해도, 본회의 의결 정족수는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우선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 이상, 단기적으로는 이 경로가 유력하다.

난관은 있다.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특수한 법이다. 선거법 강행 처리는 4당 공조가 온전히 복원된다 해도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자유한국당은 줄기차게 “선거법 합의 처리 약속”을 민주당에 요구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원리상 선거법 본회의 상정을 막을 방법이 없고, 4당 공조가 작동하면 본회의 표결로 통과시킬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요구는 이 절차상 유리한 고지를 민주당이 포기하라는 의미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순간 패스트트랙 4당 공조는 크게 퇴색한다. 선거법은 합의 처리가 원칙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 자체는 명분과 전례로 뒷받침된다.

ⓒ시사IN 이명익10월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손피켓과 촛불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4월의 입구에서는 패스트트랙 상정 후에도 협상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본회의 의결은 그런 명분도 없다. 제1 야당을 배제하고 선거법을 강행 처리하는 데는 민주당 의원들 다수가 부담을 느낀다. 이해찬 대표의 의중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려졌다. 더욱이 정부와 여당의 지지 기반이 4월보다 좁아진 상태다. 이제는 강행 처리의 역풍을 걱정해야 할 수준까지 밀려 있다. 4당 공조로 자유한국당을 압박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원리상 가능한 민주당의 세 번째 경로는, 협상 테이블을 둘 다 유지하면서 각각을 반대쪽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4당 공조 테이블에는 자유한국당 합류 없는 강행 처리는 파국이라 압박하고, 자유한국당과의 테이블에서는 4당 공조로 압박한다. 원내·원외 여러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이 보는 최상의 그림은 이렇다. 검찰개혁법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양보를 끌어내면서, 패스트트랙 4당 협상에서는 선거법 합의의 급진성을 약간 후퇴시켜 자유한국당을 끌어들인다. 목표는 패스트트랙 3대 안건에 대해 원내 5당이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면 실질적인 협상의 키는 선거법이 된다. 선거법 협상에서 4당 공조를 깨트리지 않으면서 자유한국당을 합의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전체 판을 좌우하는 과제로 떠오른다. 선거법 개정안은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결국 핵심은 둘이다. 첫째, 의석 배분 방식의 변화다. 절반 연동형 비례제가 그것이다. 이것은 권력의 배분 방식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로, 실질적으로 개헌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낸다. 둘째, 첫 번째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크게 바뀌었다. 현행 ‘253(지역구) 대 47(비례)’ 비율이 ‘225(지역구) 대 75(비례)’ 비율로 바뀐다. 연동형을 구현하려면 비례대표 의석수가 늘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정원을 늘리는 대안이 여론의 반대 때문에 사실상 봉쇄되었으므로, 유일한 길은 지역구를 줄여 비례 의석을 늘리는 것이었다.

자유한국당 협상력, 겉보기보다 강해

선거법 협상이란 이 두 핵심 변화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다. 먼저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식은, 절반 연동형 원칙을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석수는 240석 안팎으로 늘려 충격을 완화하는 안이다. 이러면 지역구 의석은 13석만 줄어든다. 지역구 의석 28석이 줄어드는 개정안 원안의 대파란보다는 한층 완화된다. 이 방향은 4당 공조 테이블에서도 협상 여지가 있다. 정의당은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절반 연동형이라는 핵심 깃발을 지키기 위해 의석 비율 재조정 협상은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보는 기류다. 비례 의석이 60석만 되어도 절반 연동형을 구현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계산도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평화당과 대안정치연대(민주평화당 탈당 의원 모임)는 호남 지역구 숫자가 특히 중요해서 지역구 대폭 감축에 비판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절반 연동형 원칙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에서 물러선 적이 없다. 지역구 의석 숫자를 유지하는 정도의 조정으로는 만족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현 정국 구조상, 자유한국당이 이 입장을 고수하면 협상의 합의점을 찾아내기가 무척 까다롭다. 겉보기에는 패스트트랙 절차 때문에 자유한국당만 마음이 급할 것 같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민주당도 마음 놓고 힘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의 협상력이 겉보기보다는 강한 국면이다. 당분간은 서로 상대를 압박하는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선거법 본회의 부의 시점을 앞두고 상황이 절정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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