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수납원들이 계속 싸우는 이유
  • 김천·전혜원 기자
  • 호수 633
  • 승인 2019.11.0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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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수납원 1500여 명은 자회사행을 거부했다가 해고되었다. 이들 중 250여 명이 한국도로공사 본사 안팎에서 4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오랜 세월 당해온 차별’을 끊어내려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시사IN 조남진10월16일 한국도로공사 본사 로비에서 농성 중인 요금 수납원들이 차가운 바닥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수납원 불법 파견 책임을 물으며 ‘직접고용’을 주문했다. 도로공사는 항소하고, 상고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며 수납업무 자체를 통째로 자회사에 넘겼다. 도로공사 정규직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수납원들 다수가 소속된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조의 상급 조직 역시 한국노총이다. 정규직 노조는 수납원 노조를 돕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정년 1년 연장’ ‘임금 30% 인상’ 같은 당근을 제시하며 수납원들에게 자회사 입사를 독려했다. 6500여 명 중 5000여 명이 자회사행을 선택했다. 소송을 포기하고 자회사로 옮긴 한 수납원은 “정직원이 되면 좋긴 하겠지만, 수납업무 자체가 자회사로 넘어가지 않나. 그렇다면 하던 일을 하는 게 낫다고 봤다”라고 말했다. 끝까지 자회사 입사에 동의하지 않은 1500여 명은 외주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방식으로 해고되었다.

8월29일 대법원은 수납원이 도로공사 직원이라고 최종 확인했다. 도로공사는 1심 소송 중인 900여 명은 1심 판결이 나와야 직접고용한다는 방침이다. 10월24일 현재 주로 1심 소송 중인 수납원 약 200명이 경북 김천의 도로공사 본사 안에서, 50명은 본사 앞에서 9월9일부터 40일 넘게 농성하고 있다.

농성 39일째인 10월17일 김천 본사 내부를 찾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해고 수납원들이 대리석 바닥에 매트를 깐 채 생활하고 있었다. 밤이면 찬 기운이 발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식사는 하루 두 끼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김정희씨는 경주톨게이트 수납원 28명 중 자회사에 가지 않은 유일한 직원이다. 조합원 중에 이런 이들을 ‘1인 지회’라고 부른다. 허리가 아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김씨는 “길바닥에서도 잤는데 여기는 호텔이다”라고 웃었다.

동료 5000명이 선택한 자회사행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것은 고용불안이다. 앞으로 수납업무가 사라진다면, 자회사 자체가 날아가버릴 수 있다. 도로공사가 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한다면, 설사 수납이 필요 없는 일로 전락해도 다른 업무로 배치 전환을 고려할 것이라고 이들은 기대한다. 도로공사는 수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자회사를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기타 공공기관 지정’을 기다리는 자회사들이 40곳 넘게 줄 서 있다. 도로공사의 자회사가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정되어도 나중에 해제될 수도 있다.

ⓒ시사IN 조남진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하고 있는 요금 수납원 노조원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한다.

이 같은 수납원들의 불신은,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청와대 수석 발언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결국 수납원 없애려고 자회사 만들었다고 인정하는 것 아닌가. (자회사에 안 가기로 한)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동해톨게이트 수납원 진도연씨의 말이다.

요금 수납원 80%가 여성, 장애인도 상당수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것이 고용안정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당해온 차별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다. “우리를 사람처럼 대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관리자들이 갑자기 자회사 입사 사인 받으러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여기 상석에 앉으십시오’라며 갑자기 높은 사람이 된 것처럼 대우하더라. 뭔가 있다 싶었다”라고 안성톨게이트 수납원으로 8년 일한 김옥경씨는 말했다. “도로공사 관리자와의 1대 1 면담을 거부했더니, 다음 날 외주업체 사무장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볼 수 없는 높으신 양반들한테 행동거지가 왜 그러냐’고 하더라. 아,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 건 도로공사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구나, 이런 생각이 쌓였다. 우리가 그동안 무시당한 게 많다.”

수납원은 취약 노동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수납원의 약 80%가 여성이다. 한 수납원은 외주업체 사장에게 ‘크리스마스이브 날 차 마시자’는 말을 들었다. 옮겨간 다른 영업소의 외주업체 사장은 모텔에 가자고 했다. 능청스럽게 받아치며 밀어내야 했다. 정도만 다를 뿐 여성 수납원들이 도로공사와 외주업체의 관리자, 고객에게 성희롱 등 성폭력을 당한 사례는 흔했다. 다른 수납원은 과적 차량을 단속하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성적인 욕설을 들은 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수납원들에 따르면, 남성 노동자들은 수납 업무를 하다가 도로공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우가 있다. 같은 일을 하던 여자들은 외주업체에 남았다. 도로공사 전체 직원 가운데 여자는 10% 수준이다.

수납원의 약 25%는 장애인이다. 새터민(탈북인)도 상당수다. 외주업체들이 정부에서 나오는 장애인과 새터민 고용보조금을 ‘수익’으로 처리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3층 건물에서 일하다 떨어진 이후 지체장애를 얻게 된 동전주톨게이트 수납원 김경준씨는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농성하며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장애인 고용수당 기간이 다 되면 다른 영업소에 ‘팔려가는’ 계약직 생활을 버텨왔다.

도로공사가 수납 업무를 자회사로 넘긴 만큼, 법원 판결로 직접고용되는 ‘전직 수납원’들은 고속도로 졸음쉼터, 휴게소, 버스정류장 등을 청소하는 업무를 부과받게 된다. ‘직접고용되면 청소업무를 맡아도 괜찮나’ 하고 묻자, 다리가 불편한 김씨는 “먹고살려면 해야죠”라고 답했다.

어디에 어떻게 입사했느냐가 신분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을 견디며 감정노동을 해온 수납원들은 이제 ‘인간 대접’을 받길 원한다. 에어컨도 난방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톨게이트 부스 안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던 수납원들은 최신식 도로공사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 출근길 선전전에서 수납원들이 장송곡을 틀어놓으면, 도로공사는 웅장한 도로공사 사가를 더 큰 음량으로 튼다. 한 정규직 직원에게 “시험 보고 오라”는 속삭임을 들은 수납원도 있다.

도로공사 건물 외벽에는 한때 정규직 노조 마크가 찍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너무 힘들어요! 동료가 될 우리! 농성은 이제 그만!’ 지금은 플래카드가 사라진 자리에, 깊은 감정의 골이 경북 김천의 드높은 빌딩을 감싸고 있다.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 0.5평짜리 톨게이트 부스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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