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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모레노(66) 에콰도르 대통령이 백기를 들었다. 10월13일, 그가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결정한 ‘유류 보조금 폐지’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10월3일 시작되어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던 대규모 시위도 마무리되었다.

당초 모레노 대통령이 유류 보조금 폐지를 입안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은 42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 때문이었다. IMF는 달러를 빌려줄 때 해당 국가의 제도 변경을 요구한다. 정부 지출을 줄여 그 돈으로 빚을 갚으라는 식이다. 에콰도르의 유류 보조금 규모는 연간 13억 달러(약 1조5340억원) 정도다. 보조금 폐지로 유류 가격이 2배 가까이 폭등했다. 모레노 정부에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면서 원주민 단체와 운송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정부 청사와 언론사 등을 ‘물리적’으로 공격했다. 모레노 정부가 수도인 키토에서 해안도시 과야킬로 정부 기능을 옮겨야 했을 정도다. 당초 시위대에 강경 대응을 명령한 모레노 대통령은 7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다치고 2100여 명이 체포되는 등 혼란이 격화되면서 한발 물러났다.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IMF가 제시한 구제금융 조건을 결과적으로 위배했다. 더욱이 이번 시위는 단지 유류 보조금 폐지로 인한 것이 아니다. 모레노 대통령의 우경화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레닌 모레노는 중도 좌파 정당인 ‘파이스 연합(PAIS Alliance)’ 후보로 2017년 에콰도르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는 2007~2013년, 라파엘 코레아 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냈다. 2017년 대선 승리 역시 코레아 전 대통령의 후보 지명과 전폭적 지지로 가능했다. 코레아 대통령은 집권 시절 IMF 구제금융 조건을 거부하며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바 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모레노는 코레아 정부 정책을 뒤집어버린다. 모레노 대통령은 IMF에 친화적이었다. 공공지출을 묶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민영화를 추진했다. 공공시설을 인수한 민간 기업은 7년에 걸쳐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투자 촉진이라는 명분 아래 부유층과 은행의 세율을 크게 낮추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노동법안들은 철폐했다. 한때 정치적 동반자였던 코레아 전 대통령과의 반목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레노 대통령은 초헌법적 기관을 설립해서 친코레아 성향의 관료를 축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코레아 전 대통령의 재출마를 막기 위해 관련 제도를 바꾸는 조치도 잊지 않았다.

지난 6월에는 미군에게 세계문화유산인 갈라파고스섬을 이용하도록 허용하면서 환경주의자와 원주민들의 대대적 시위를 촉발시켰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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