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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것 같았다. 의식은 또렷했다. 숨을 쉬지 못했다. 정확히는 안 쉬어졌다. 10초, 1분, 1분30초. 물속이 아니었다. 소파 위였다. 무섭고 두려웠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때였다. 창가로 가서 바깥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숨통이 겨우 트였다. 10분 뒤 다시 호흡곤란이 왔다. 전화로 심리 상담을 예약했다. 심리상담사는 회사 일뿐 아니라 여러 문제를 찾아냈다. 당장 할 수 있는 ‘처방’부터 실천했다. 퇴근하면 회사 일부터 잊으려고 애썼다. 3년 전 경험이지만 지금도 공포가 생생하다.

최진리(설리)의 부고를 접하고 두려움이 다시 떠올랐다. 한 사람의 죽음에는 여러 이유가 얽혀 있다. 속단해선 안 된다. ‘주간 아이돌&캐리돌’의 필자인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는 “연예인의 죽음을 두고 악성댓글 탓이라고만 하는 것은 악성댓글이란 편한 악마를 설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른바 악플 탓으로만 돌리면 언론이나 매니지먼트사는 면책된다. 이들은 더 큰 원인 제공자다. 문제는 이 구조를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처방부터 실천하자. 그 첫 번째는 역시 댓글이다. 뉴스 댓글은 애초 순기능이 있었다. 온라인 공론장에서 시민 참여를 확대했다. 여론 분포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했다. 뉴스 이용자의 의사결정을 도왔고 기자들에게 피드백을 주었다(김선호·오세욱, 〈뉴스 댓글 운영 현황과 개선방안〉, 2018). 이런 순기능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난은 혐오의 배출구이다. 포털은 여러 규칙을 만들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처럼 이야기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2년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방안이 없는 건 아니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난 자체를 없애고  해당 언론사를 방문해 댓글을 달게 하는 식이다. 이른바 ‘아웃링크식’ 댓글 달기 방법이다. 분산이다. 책임은 언론사가 지면 된다. 혐오 댓글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NPR, CNN, 로이터 등 해외 언론사는 기사에 댓글난을 아예 없앴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기사에만 제한적으로 댓글을 허용한다.

정치권에서 ‘설리법’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굳이 법안까지 만들 필요가 없다. 포털이 결정하면 금세 할 수 있다. 이제는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댓글난을 없애자. 다시 말하지만 그의 죽음은 댓글 탓만은 아니다. 어뷰징에 가까운 기사를 쏟아낸 언론, 혐오의 배설을 쏟아낸 대중, 케이팝이라는 상품 만들기에만 열중했던 매니지먼트사에 무한 책임이 있다.

“그가 보여준 당당한 개인의 삶(〈시사IN〉 제619호 ‘관종이 아닌 스타 설리’)”이 하늘나라에서도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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