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원조 비주얼 멤버’라 하면 핑클의 성유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비주얼 멤버’는 아이돌 그룹에서 외모가 가장 돋보이는 멤버를 칭하는 신조어로, 그룹 내 멤버의 역할이 패턴화되어 정착한 2000년대에 만들어졌다. 성유리는 이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도 비주얼 그 자체였다. 그의 청순가련한 모습은 신인 그룹 시절 핑클을 대표하며 ‘가요계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게끔 했다. 가창력이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우수에 찬 커다란 눈망울은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서사를 전달하는 힘이 있었다.

성유리의 다른 재능은 그 탁월한 외모에 가려져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낮고 차분한 말소리를 가졌다. SBS 〈힐링캠프〉 진행자 시절, 그는 다정하면서도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로 프로그램에 무게를 더해주었다. ‘여리여리한’ 이미지에 간과되곤 했지만 핑클 네 명 중 가장 낮은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바로 그였다. 지금이야 연기 활동을 통해 그의 그런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해도, 가수 생활을 할 때는 이것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핑클 시절 그는 속삭이듯 부르는 여린 소리의 보컬이었다. 핑클이 부른 걸그룹 스타일의 노래는 성유리 본인이 편한 알토(alto) 음역대보다 훨씬 높았다. 가창력 이외의 매력이 주가 되는 아이돌 스타가 막 소개되던 시점에, 그는 자주 ‘아이돌은 실력이 부족하다’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비판에 주눅이 들면, 목에 힘이 들어가 가뜩이나 성량이 작은 그의 목소리가 억눌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지난달 11회로 종영한 JTBC 〈캠핑클럽〉에서 그는 오랜만에 핑클 멤버들과 재회해 팬들과 만나는 무대를 꾸몄다. 공연 준비를 하며 그 시절의 히트곡을 재녹음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녹음 부스에 들어간 그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 이효리는 “예전의 샤한 느낌이 없어졌다”라며 놀라워했다. 말하자면 속삭이는 창법이 아닌 편하게 소리를 내는 창법으로 바꾼 것. 10대 시절 자기 음역대 밖의 노래를 어렵게 부르던 그가 마침내 힘을 빼고 편안하게 자기 원래 목소리를 내는 30대가 된 모습은, 단순히 보컬의 실력을 떠나 성유리라는 개인의 성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핑클은 S.E.S의 성공에 반응해 ‘팔로어 포지션’으로 기획된 팀이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멤버들의 타고난 재능과 끼에 힘입어 최고 인기 그룹이 되었다. 성유리도 그 안에서 분명히 자기 역할을 했다. 그는 비주얼 중심의 가수라는 점에서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연예인이 받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야 했다. 10대 청소년으로서는 꽤 혹독했을 것이다. ‘너무 예쁘다’는 말은 어느 순간 그에게는 칭찬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나친 숭배는 그 사람의 캐릭터를 단정하고 가능성을 거세하니 말이다.

〈캠핑클럽〉에서 고백했듯, 그는 오랜 시간 ‘욕먹는 것이 무서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긴장 상태를 보냈다. 성유리가 겪은 어려움은 20년 세월 동안 아이돌이 받아온 편견의 원형과도 같다. 좋은 가수의 기준을 가창력에 두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엄격한 재단은 자칫 우리로 하여금 다각도에서 볼 기회를 놓치게 한다. 우리가 차마 모르고 지나친 성유리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처럼.

기자명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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