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게임 회사에 다녔다. 온종일 검과 마법의 세계만을 그리다가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틈틈이 혼자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1999)를 내놓으며 그는 말했다. “(검과 마법의 세계 말고) 아파트 계단이나 편의점 간판처럼 내가 현실에서 보는 것들이 나오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내 일상을 스스로 긍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허핑턴포스트 재팬〉, 2017년 1월2일)

두 번째 단편 〈별의 목소리〉 (2002)에는 그가 긍정하고 싶은 일상이 아예 대사로 나열되어 있다.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예를 들면 말야. 여름을 동반한 시원한 비, 가을바람 내음,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봄 흙의 부드러움, 한밤중 편의점의 평온한 분위기, 방과 후 서늘한 공기, 칠판지우개 냄새, 한밤에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소나기 내리는 아스팔트 냄새 같은 것들.”

내가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일상을 그는 ‘그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흔해빠진 거리 풍경이 그의 작품으로 인해 내게도 새삼스러워지는 느낌이 좋았다. 빛과 구름과 대도시를 집요한 세밀화로 그려내는 화풍도 마음에 쏙 들었다. 〈초속 5센티미터〉(2007)와 〈언어의 정원〉(2013)을 지나 〈너의 이름은.〉(2016)에서 완성된 ‘신카이 월드’가 신작 〈날씨의 아이〉로 이어진다. 다시 한번 판타지. 주인공은 역시 10대 소년 소녀.

가출 소년 호다카가 운 좋게 잡지사에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일명 ‘맑음 소녀’ 이야기를 듣는다. 잔뜩
흐리고 비 오는 날을 단숨에 ‘쨍하고
해 뜰 날’로 바꾸어버리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 히나.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 친구가 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서서히 위험에 빠지는 히나.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는 호다카. 그러나 세상은 그리고 날씨는, 좀처럼 그들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급격한 기후변화 두려워하며 만든 영화

흔한 일상 풍경을 마치 처음 보는 천상의 풍경인 양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화풍은 〈날씨의 아이〉에서도 여전하다. 그런데 그림에 담긴 정서가 여전하지 않다. 신카이 마코토에게 비는 이제 낭만이 아니다. 재난이다. “〈언어의 정원〉을 만들 때만 해도 장마가 ‘계절의 정서’를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재해의 징후’가 되어버렸다”라고 감독은 말했다. “자연스럽게 비의 쓰임새가 달라졌다”라고 덧붙였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뒤 〈너의 이름은.〉을 제작한 그가 지구의 급격한 기후변화를 두려워하며 〈날씨의 아이〉를 만들었다. 이 거대한 재난의 시대에 어른들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작지만 단단한 아이들을 내세워 다시 한번 묻고 있다. 어른들만 믿고 있을 수 없어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선 히나와 호다카는, 그래서 안쓰럽다. 그래서 대견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지 않은’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를 또 한 번 열심히 편들게 된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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