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Sunshine〉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면 제목을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할까? 비밀스러운 햇빛? 숨은 빛? 으슥한 빛? 사실 이것은 한국 영화 〈밀양〉의 영어 제목이다.
〈번역의 탄생〉에서 저자 이희재씨는 이 사례를 영어 형용사를 번역하는 한 방법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secret sunshine’에서 ‘밀양’을 떠올리지 못한 독자 가운데에는, “‘밀양’은 ‘secret sunshine’과 다른 의미를 담는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례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전히 풀이하는 어려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번역가인 저자는 현장에서 접한 사례를 풍부하게 소개한다. 수동태나 대명사, 사동문 등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부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을 옮기는 과정이 기초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고유명사나 속담을 처리하는 법이다. 가령 ‘journey to Canossa’를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쓸지, ‘삼전도의 수치’라고 적을지, ‘무릎이라도 꿇을 각오’라고 풀이할지 따위다. 선택의 순간, 책 전반에서 강조하는 덕목은 ‘균형감각’이다. 원어를 직역할지 번역어로 의역할지, 순우리말과 외래어 어휘 중 어떤 것을 고를지 상황에 맞게 택해야 한다.
이희재씨는 원어와 한국어 사이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미 외국어에 많이 물든 한국어에 외국어 문체의 흔적을 더 남기는 것”보다는 “잃어버린 한국어”를 찾는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가 찾는 ‘잃어버린 한국어’가 토박이말만 뜻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왜색을 없애고 토박이말만 쓴다는 것보다는 정확한 의사소통을 기준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목은 가볍지 않지만 독자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번역 지론에 따라 퍽 쉽게 쓰였기 때문이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더라도 ‘말’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든 펼쳐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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