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표창장이 부끄러움에 스치운다
  •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 호수 631
  • 승인 2019.10.25 11: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해성 그림

여느 기관장이 그렇듯 대학 총장에게도 학내 각종 현안에 대한 보고 서류와 크고 작은 정보가 온종일 쉴 새 없이 전달된다. 그중에서도 부서장이 “그 건은 총장님 결재까지 올리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재 클릭을 통해 총장이 한번 더 인지하게끔 해야 하는, 책임성이 큰 중요 사안이라는 뜻이다.

“표창장을 준 일도, 결재한 적도 없다”라는 한 대학 총장의 말은 그래서 틀림없이 사실일 것이다. 외부의 유명 인사에게 주기로 한 상이거나 그 상을 처음 만들기로 결정하는 내부 결재가 아니라면, 총장 명의의 상장이나 표창장을 준비하는 업무에 총장 본인이 직접 관여하거나 일일이 결재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표창장이나 상장 업무가 평소 대학 행정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를 고려하면, 대학본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총장 명의 표창장이나 상장이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제가 된 표창장의 진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학의 행정 업무와 관행, 총장상의 무게감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 일단 수여하기로 결정된 상이라면 내부 전산망을 통해 상장과 직인을 신청하는 문서를 담당 부서에 보내는 식으로 실무자 선에서 모든 업무가 처리된다. 상장을 들고 총무과를 방문해 담당자가 찍어주는 직인을 받아오거나, 상장 수가 많으면 직인을 건네받아 직접 찍으면 된다. 최근 논란을 계기로 알아보니 상장 목록과 일련번호, 수여 내역 등 상장 관련 정보가 시스템이 아니라 엑셀 파일로 관리되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직인이 제대로 정비된 지도 몇 년 되지 않았다. 경각심이 낮고 모두가 무심했던 시절, 업무 편의를 핑계로 복수로 제작한 도장을 몇몇 부서에 나눠 보관해 사용하던 것을 일괄 정리했다고 한다.

부실하고 아날로그적인 상장 관리 업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총장 명의의 상장은 남발되기 쉽다. 지방에 소재한 비인기 대학일수록 그럴 만한 이유가 많다. 지방일수록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총장 명의 상장을 여기저기 뿌리고 싶어 한다. 소재지와 인근 지역에서 상당 부분 학생을 모집해야 하는 현실에서 상장은 대학을 홍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조국 장관 논란 뒤 대학의 민낯

특히 초·중·고교 학생들에게는 대상자 선정이나 수여 명분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줄 수 있다. 큰돈 들이지 않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사회공헌 실적을 챙기는 방법이다. 지역사회도 반긴다. 서울·수도권과 달리 지방에는 지자체와 대학 외에 상을 수여할 수 있는 기관·단체가 적기 때문이다. 지방대나 비인기 대학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 보이는 대학의 권위가 소비되는 방식, 총장상의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검찰 수사와 논란의 한 축은 ‘대학’과 연결돼 있다. 이번에도 대학의 속살이 여실히 드러났다. 교육 불평등과 기회의 격차를 방관해온 대학 당국, 복잡하지만 허술한 대입 전형, 연줄과 특권에 무감각한 교수 사회, 학교 내부의 비합리적인 관행 및 공동체의 묵인, 교수들의 엇갈린 시국선언과 촛불을 집어든 명문대 학생들, 그리고 ‘교육자적 양심’으로 25년간 대학을 이끌다 갑자기 허위 학력 의혹에 휩싸인 대학 총장까지. 승자가 누구든 이번 전쟁의 끝에 남을 또 다른 패배자는 부끄러운 민낯을 다시 한번 드러낸 대학 사회가 아닐까.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