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누구나 ‘타고난’ 사람에 대해 찬양을 늘어놓지만, 동시에 누구나 타고난 대로 못 살게 만드는 게 이 세상이다. 개중에 타고난 인간들이 모여 타고난 대로 부수고 휘젓는다는 예술계도 크게 다를 건 없다. 타고난 대로 쓰고, 그리고, 노래하는 이들은 어느새 무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정세운은 그렇게 무자비한 세계에서 자신의 빛과 색, 속도를 시작부터 유지하고 있는 무척 드문 인물이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2013년 SBS 〈K팝스타 시즌 3〉에 출연해 ‘엄마 잠깐만요’ ‘익스큐즈 미(Excuse Me)’ ‘21세기 카멜레온’ 같은 자작곡들을 앞세워 심사위원들과 대중의 눈길을 끈 것이 첫인사였다.

그런 그가 2017년 엠넷 〈프로듀스 101〉에 참가한다고 했을 때, 그래서 많은 이가 놀랐다. 정세운은 SM, YG, JYP 등 케이팝을 대표하는 기획사 라인업으로 아이돌을 꿈꾸는 참가자 비중이 유독 높았던 〈K팝스타〉에서 굳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매력을 적극 어필했던 사람이다. 이번에는 진짜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에 도전한다니, 4년 동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궁금했다. 다분히 음흉한 의도를 가진 궁금증은 본체의 등장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프로그램 시청자에게 자신을 처음 소개하는 인사 영상에서도, 경연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던 ‘불장난’ 커버 무대에서도 정세운은 여전히 기타와 함께였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말은 그의 앞에서 무의미해졌다.

이런 특유의 분위기와 속도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건 활동을 통해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2017년 8월 첫 솔로작 〈에버(EVER)〉를 시작으로 〈애프터(AFTER)〉 〈어나더(ANOTHER)〉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PLUS MINUS ZERO)〉 〈데이(Day)〉의 발매가 이어졌다. 대략 6개월 간격을 둔 꾸준하고 성실한 행보였다. 그루비룸에서 이단옆차기, 키겐, 줌바스 같은 케이팝 하면 떠오르는 이들과의 능숙한 어울림도 그럴싸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어쿠스틱 사운드와 어울리는 정세운만의 여유와 포근함을 살린 느린 템포의 곡들이었다. 이채언루트의 강이채와 함께한 ‘닿을 듯 말 듯’, 정세운의 목소리가 가진 달콤 씁쓸한 매력을 극대화한 ‘아이 투 아이(Eye 2 Eye)’, 진중하고 묵직한 감정을 담은 ‘나의 바다’까지. 구석구석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사람의 단단함이 담겼다.

그렇게 자신의 속도로 걷던 정세운은 다섯 번째 앨범 〈Day〉로 처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 순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앞으로도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제 음악을 해나가면서 좋은 음악 들려드릴 수 있게 계속 노력하겠다”라며 또박또박 남긴 1위 소감은 그가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그렸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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