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그림

위험이 만성화되고 일상화된 사회에서 권력은 위험을 얼마나 피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권력은 재난으로부터의 거리다. 홍수가 나면 만성적으로 침수되는 곳에 사는 사람과 그 홍수를 텔레비전으로 보며 “걱정이야” 하고 읊조리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재난 시대에는 권력의 차이다. 물론 가끔 이런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닥치기 때문에 지금이 진정으로 재난의 시대이지만 말이다.

〈나, 조선소 노동자〉는 2017년 5월1일 노동절, 경남 거제에 있는 삼성중공업에서 벌어진 사고 생존자들의 증언집이다. 밀양에서부터 여러 사회적 투쟁과 재난의 증언을 기록해온 기록 노동자·활동가들을 비롯해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이 힘을 합쳐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고 기록했다. 이 사고로 노동자 6명이 죽고 25명이 다쳤다. 이들의 증언은 한국 사회에서 위험이 얼마나 외주화·신분화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사고가 난 날은 노동절이었다. 삼성중공업 정규직 사원에게는 휴일이었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장된 유급휴일이다. 이날 조선소에 출근한 사람은 1623명이며 이들 대다수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였다. 물량팀 혹은 돌관(突貫)이라고 부르는 ‘다단계 하도급’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일이 있을 때 ‘갑자기(突) 뚫고(貫) 들어와’ 짧은 기일 안에 공사 물량을 처리한다. 이들은 물량팀장을 중심으로 10명에서 30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이 노동자들에 대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는 곳이 없다. 평소에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사고가 나면 삼성중공업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며, 심지어 도급업체에서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들은 위험으로부터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책임으로부터도 안전해진다. 위험의 외주화는 책임의 외주화다.

그날 사고도 그랬다. 사고가 난 곳은 화장실이 있는 공간이다. 노동자들이 길고 긴 줄을 서서 용변을 보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잠시 쉬는 곳이다. 거기 있던 노동자들이 참변을 당했다. 이 틈을 삼성중공업 사장이 파고들었다. 진영민씨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사장은 사고가 난 시각이 14시57분이고 쉬는 시간도 아닌데 왜 일찍 담배 피우러 나왔느냐면서, 쉬는 시간에 맞춰 나왔으면 한 사람도 안 다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생존자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경험했다. 재난 이후 트라우마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이들이 산재 처리가 되느냐고 물으면 근로복지공단에서 돌아오는 답은 “1000명에 한 명인데 네가 증명해야 한다”이다. 김명진씨는 “우리(노동자)가 질문했는데 도로 우리(노동자)에게 되묻는 그런 개념”이라고 말한다. “어렵게 이야기해서 포기하게끔 한다”라고도 말한다.

대신 그들이 보호하는 것은 따로 있다. 진영민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재심사를 넣고 겨우 승인 통보를 받았다. 심사 이후 승인이 난 다음에도 통보가 오는 데 두 달이나 걸렸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이유가 ‘여러 가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검토하고 문구를 조정하느라’ 늦었다고 한다.

박살낸 자들은 달아나고, 박살난 삶만 괴로워한다

제도는 책임을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제도는 자기가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그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한다. 나아가 진영민씨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제도는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노동자)으로부터 책임져야 하는 사람(사용자)을 보호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한다. 도움을 호소하는 노동자에게는 “목소리는 되게 건강하게 들리시네요”라며 함부로 말하면서도 사회적 파장을 염려하느라 문구 하나까지 고려하는 정성을 들인다.

그럼 이들은 왜 이처럼 책임의 ‘바깥의 바깥’인 조선소에 흘러들어 왔을까? 이 기록 노동의 빛나는 점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참사의 날과 이후에 겪은 일, 그리고 이들이 조선소에 들어오게 된 참사 이전의 삶도 함께 다룬다. 그저 연대기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책임’의 문제로 권력과 생존자, 제도와 생존자를 날카롭게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그들이 조선소의 가장 안에 있으면서도 ‘바깥의 바깥’에 있는 이유는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마흔여섯의 이정은씨는 망한 집안 살림을 일으키겠다고 남편과 함께 조선소에 와서 용접공이 되었고 그 이후 도장을 했다. 거기서 그는 정말 열심히 사는 엄마들을 만났다. “신랑 죽고 애 둘 키우면서 잔업, 특근까지 몇백 시간씩 하며 10년 동안 산 사람도” 있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안에 있지만 바깥에 머문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번 돈으로 자신이 비로소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무엇보다 기뻐했다. 어린 시절 가난에 대한 기억이 사무치는 김명진씨는 조선소를 다니는 동안 아들에게 한 번씩
물어봤다고 한다. 우리 집이 가난한지 부자인지 말이다. 아들이 “잘사는 축에 드는 것 같다”라고 말할 때마다 그렇게 뿌듯하고 기뻤다고 한다.

그날 사고가 박살낸 것도 이 책임지는 삶이다. 김재영씨는 젊은 시절,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기와 결혼한 아내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아내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오빠는 되게 성실한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그를 계속 성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말에 온몸을 다해 응답하고 싶었다. 그랬던 그가 사고 이후,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가장 책임지고 싶었던 존재에게 폭력적으로 변했다.

김종배씨는 이혼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아내와 관계가 나빠져서가 아니다. “제일 겁나는 게 돈이고 가족”이라며 이혼하면 한부모 가족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아내와 자식에게 돌아갈 것 같았다. 김씨는 이것이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했다. 누군가를 책임지는 게 기쁨이었던 사람들이 그 기쁨을 잃어버렸다. 아니 그 기쁨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죄책감과 무기력이며 그들에 대한 폭력이다.

김석진씨는 대우에서 ‘본공(1차 하청 직원)’으로 일하던 ‘이모’들을 꼬드겨 삼성으로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한다. 거기 계속 있었으면 잘리지도 않았을 테고 상대적으로 덜 위험했을 텐데, 자기가 꾀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미안해한다. 그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이모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모들의 인생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을까 봐 두려워한다. 박살낸 자들은 도망가고, 같이 박살난 삶만 괴로워한다.

이렇게 사고의 생존자들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의 삶을 파괴하고, 자기가 책임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삶도 파괴한다. 술을 마시고 소리 지르고 흐느끼면서 말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강해지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누구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불안감(김명진)을 느끼면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계속 연락하는데도 만나지 않는다(김석진). 그렇게 책임을 진다는 것에 기뻐하던 이 사람들의 세계가 파괴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재난 이후의 재난이지 않은가? 결국 재난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책임이다. 괴로움은 책임지는 자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책임지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기를 쓴다.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울타리로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만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위험한 책임으로부터 도망가는 울타리다.

재난 시대의 권력은 재정의되어야 한다. 위험으로부터의 거리만이 아니라 책임으로부터의 거리가 권력이다. 이 시대에는 무책임해지는 것, 무책임해도 되는 것, 무책임해도 아무 위험이 생기지 않는 것이 권력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시스템을 만들어 유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책임으로부터의 도망, 이 비겁한 권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한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엄기호 (문화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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