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어떤 기사를 읽으면, 조만간 유튜브에 ‘로봇 가정부’ 광고가 뜰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택배 물품을 받으려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인간 노동자가 아니라 휴머노이드(인조인간 로봇)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기사를 보면, 로봇은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고 한다. 지금의 글로벌 로봇 산업이 실제로 닿아 있는 지점은 어디쯤일까? 의문을 가장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로봇 산업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시사IN〉이 그런 사람을 찾아가 만났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생체 모방 로봇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상배 교수다. 누구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 번쯤은 접했을 4족 보행 로봇 ‘치타(Cheetah)’의 개발로 유명한 공학자다.

치타 로봇은 2019년 10월 현재 3세대 로봇(치타 3)까지 나와 있다. 큰 진돗개만 한 크기의 치타 3은 빠르게 달리며 방향도 알아서 바꾼다. 계단도 오를 수 있다. 달리다 만난 장애물을 거침없이 뛰어넘는다. 치타 시리즈의 최근 버전인 깜찍한 크기의 미니 치타는 앞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뒤로 텀블링(공중제비)까지 한다. 몸집이 제법 커서 조금 무서워 보이는 치타 3과 비교하면 귀엽다.

로봇 달리기와 장애물 뛰어넘기, 텀블링 등에는 최첨단 기술이 들어가 있다. 달리는 도중에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면, 먼저 장애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로봇은 자신과 장애물까지의 거리에 기반해서 적절한 도약 지점을 계산해낸다. 그곳까지 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며 달린다. 도약 지점에 도달하면 적절한 궤도를 연산한 뒤 이에 걸맞은 힘을 출력해서 뛰어넘기를 실행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MIT의 생체 모방 로봇연구소가 치타 시리즈에 투자한 돈은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로봇을 왜 개발하는가

이쯤에서 질문해야 한다. 로봇이 달리고 뛰어넘으며 텀블링을 하도록 만드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더욱이 인간처럼 두 다리를 가진 휴머노이드(2족 로봇)가 아니라 네 다리의 로봇(4족 로봇)이 말이다. 김상배 교수는 “로봇을 왜 개발하고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더 편하게 만드는 로봇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일을 로봇에게 시킬지 생각해봤다. 일단 산업 현장에서 사람에게 너무 단순하거나 지겨운 일은 이미 로봇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 가운데서 ‘로봇이 아직 할 수 없는 일’을 찾았다. 그것은 하수도나 원자력발전소처럼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장소에서의 작업, 재해·재난 현장 투입 등이었다. 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람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에 로봇을 사용하자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컨스티튜션(헌법)이다.”

ⓒAP Photo2014년 9월 김상배 교수가 MIT에서 로봇 치타를 조종하고 있다.

로봇이 이런 장소에서 활동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가? 무엇보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고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김상배 교수가 치타 로봇 개발에 돌입한 2010년 무렵 대다수 로봇들은 이동 능력을 갖지 못했다. 잘 달리는 로봇도 있긴 했으나 너무 시끄럽고 비효율적이었다.

산업용 로봇은 이동할 필요가 없다. 한자리에 서서 정해진 작업을 반복하면 그만이다. 로봇이 이동해야 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2019년 현재, 대다수 로봇은 2~4개의 바퀴나 볼을 달고 굴러간다. 바퀴(볼)는 가장 편하고 단순한 이동 수단이다. 평지에서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치명적 단점이 있다. 높거나 낮은 곳으로 가기 힘들다. 계단에서는 더 어렵다. 그렇다면 다리를 가진 로봇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형태인 2족 로봇에 경탄한다. 하지만 2족 로봇은 균형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심지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김상배 교수가 선택한 것은 4족 로봇이었다. ‘네 다리의 거침없는 이동성’에 매료당했다. 그는 지난해 〈MIT 뉴스〉와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휴머노이드는 유감스럽게도 잘 이동하지 못한다. 지상에 살고 있는 동물 중 대다수는 네발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동 능력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하다. 치타 같은 동물의 달리는 모습은 아름답고 멋지다. 다양한 지형을 돌아다니고 재난 구조 등의 임무에 투입되는 로봇에겐 네발이 최적이라고 본다.”

그가 4족 로봇 개발에 들어간 2010년 무렵, 로봇 업계의 최강자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이미 개를 모방해 만든 4족 로봇 ‘빅도그(Big Dog)’를 과시하고 있었다. 빅도그는 유압(기름의 압력)으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유압식 구동장치에서는, 밀폐된 원통형 실린더에 펌프로 기름을 밀어넣거나 뺀다. 실린더에 수직으로 박힌 막대가 위아래(혹은 좌우)로 움직인다. 이 움직임을 여러 장치를 통해 기계의 동작으로 변환시킨다. 불도저처럼 땅과 건물에 강한 힘을 가해야 하는 중장비는 유압식 구동장치를 주로 사용한다. 외부 대상(예컨대 땅)에 큰 힘을 가할 수 있는 데다 ‘충격 흡수’ 기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중장비 기계의 팔이 땅에 내리꽂힐 때 땅은 충격을 받는다. 동시에 기계의 팔도 땅으로부터 충격을 받는다. 작용과 반작용이다. 누군가를 때리면 상대편도 아프겠지만 가격자의 손 역시 아픈 것과 같다. 불도저의 팔이 부러지지는 않는다. 유압식 구동장치 덕분에 ‘땅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김상배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걷거나 달리는 것은 땅에 충격을 가하는 동시에 땅으로부터 충격을 받는 행위지만 “발, 발가락, 다리근육 등이 그 충격을 흡수해버린다.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걸을 수 없다. 땅을 딛는 순간 발이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빅도그가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것은 충격을 잘 흡수하는 유압식 구동장치 덕분이었다. 대다수의 로봇이 빅도그를 따라 유압식으로 설계되었다.

그런 와중에 ‘전기모터 구동장치’라는 발상으로 로봇계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김상배 교수다. 그는 빅도그가 성공적인 로봇이지만 유압식 구동장치를 달고 있기 때문에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동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대안인 전기모터는 조용하고 효율적이지만 큰 힘을 내진 못해서 당시 로봇 업계에서는 낙제점을 받고 있었다.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로봇이 빠르게 달리거나 뭔가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기대 자체가 없었다. 그의 술회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이 뛰어다니니까 중국에서 베끼고 러시아에서 베끼고 한국에서도 유압식 로봇을 만들려다 실패했다. 유압식으로 만들어야 하고 전기모터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 기본 상식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2013년과 2014년에 새로운 방식의 전기모터 구동장치로 치타 1과 치타 2를 내놓았다.”

전기모터 구동장치에 대한 김상배 교수의 자신감은 굉장하다. “유압식과 전기모터의 장점을 모았다. 큰 힘을 내면서도 충격 흡수가 가능하다. 힘의 조절도 잘 된다. 빠르고 싸다. ‘같은 배터리(와 무게)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란 의미의 효율성으로 따지면, 우리 로봇이 세계 최고다.” 그의 자신감은 ‘치타 로봇 이후’의 현실에서 입증된다. 글로벌 로봇 업계의 구동장치가 유압식에서 전기모터로 전환되어 나갔다. “지금 유압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밖에 없다. 이 회사의 다른 로봇들은 모두 (전기모터 방식으로) 바꿨다. 중국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치타 1과 치타 2를 보고 ‘어! 전기모터로 되네’라며 놀랐던 것이다. 이렇게 상식이 바뀌었다.”

그는 치타 2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치타 3의 실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재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치타 3은 0.5초 이후를 예측하는 기능까지 갖고 있다. “치타 3은 ‘내가 지금 이 정도의 힘을 가하면 0.5초 뒤에 어떤 상태에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최적화해 0.5초 뒤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을 수 있도록 힘을 가하자’라고 계산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나온) 미니 치타 로봇에는 미래를 중시하는 예측 알고리즘과 ‘지금을 중시하는 알고리즘’이 섞여 있다. 내년에 먹을 것만 생각하면 지금이 망가질 수 있다. 지금 순간만 생각하다 보면 0.5초 뒤의 미래에는 땅에 뒹굴 수도 있다. 현재와 미래를 잘 타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알고리즘 두 개를 미니 치타에게 내장시켜본 것이다.”

예측 알고리즘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 있다. 재해 현장으로 투입된 로봇은 장애물을 오르거나 뛰어넘으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는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로봇은 스위치를 누르고 버튼을 올리며 밸브를 여닫을 줄도 알아야 한다. 센서와 카메라는 물론 지원 물품까지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어야 한다. 내부의 물품들이나 파손된 설비 등을 밖으로 갖고 나와야 한다. 문을 열거나 부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4족 로봇이라면 두 개나 세 개의 다리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남은 다리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너무나 쉬운 이런 동작이 로봇에게는 어렵다. 김상배 교수는 ‘문을 여는 동작’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겠다며 벌떡 일어서서 문으로 다가가더니 연기를 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한 바 있다. “문을 여는 동작을 봐라. 좀 무거운 문인 경우, (자신도 못 느끼는 사이에) 몸을 앞으로 던졌다가 다시 뒤로 젖히게 된다. 몸의 모멘텀(운동량, 가속도)을 옮기는 것이다. 사람은 보통 문 앞에 꼼짝 않고 서서 문을 열지는 않는다. (이런 인간의 동작을 유심히 고려하지 않고) 로봇을 만들면 문짝 하나 못 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부닥친 난점, ‘피지컬 인텔리전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그 지점에서 난점에 부닥쳤다고, 김상배 교수는 말했다. 인간의 동작 가운데 대다수가 스스로 인식해서 하는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즉, 인간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존재다. 그는 사람이 ‘실행하면서도 모르는 동작’과 관련된 지능을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육체 지능)’라고 부른다.

“친구와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치자. 위아래 턱으로 음식을 씹는다. 음식 조각이 입안 여기저기로 튄다. 혀는 큰 덩어리를 앞으로 밀어내고 작은 덩어리는 뒤로 넘긴다. 덕분에 입안에 그라인더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음식물이 작게 갈려서 위로 내려간다. 이러는 와중에도 우리는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떠드는 일도 혀가 한다. 혀가 다섯 개의 발을 가진 것도 아닌데 이런저런 일을 모두 한다. 이런 혀의 움직임 중 우리는 어느 정도를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는 몸이 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을 인식하지 못한다. 대뇌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관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DPA사람이 혀로 음식물 조각을 옮기고 대화까지 하는 동작을 로봇에게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혀로 음식물 조각을 옮기고 이야기까지 하는 것처럼 사람이 인식하지 않고 자동으로 시행하는 동작(피지컬 인텔리전스가 관장한다)은 너무나 많다. 사람에겐 매우 쉽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는 모른다.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예컨대 아이에게 계단 오르기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두 살배기 아이에게 처음으로 계단 오르기를 가르칠 때 어떻게 하나. ‘다리를 직각으로 올리고, 발이 바닥에 닿으면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있나? 인간들 사이에서 언어는 어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발생한 프로토콜이다. 아이에겐 언어로 가르칠 필요 없이 그냥 손잡고 계단을 같이 올라가면서 ‘조심해’라고 말하면 된다.” 김상배 교수 자신의 경험담인 듯했다.

언어로 표현하거나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면 로봇에게 프로그래밍할 수도 없다. 어떻게 보면 피지컬 인텔리전스는 로봇 산업의 지속적 발전에 치명적 한계를 가할 수 있는 제약 조건이다. 그런데도 “로봇 연구자들은, 인간이 인식 가능한 영역 내의 지능만 연구한다. 심지어 이런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는 연구자도 전 세계에 열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김상배 교수는 로봇의 발전 단계에 대한 과대평가 역시 기본적으로 이 같은 인식론적 오류 때문이라고 본다. “사람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로봇이 텀블링하는 것을 보면서 ‘우와~ 로봇, 진짜 이제 발전 끝났구나(발전이 완료되었구나)!’라고 감탄한다. 그가 아는 인간 친구들은 텀블링할 줄 알면 운동신경이 좋고 달리기나 축구도 잘하니까, 로봇도 그럴 거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그 로봇은 텀블링만 할 줄 안다. 달리기나 축구는 하지 못한다. (그 유명한) 소피아 로봇 역시 내부에 녹음기 넣어놓고 쇼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이제 인조인간이 나오는구나’라고 착각하고 만다. 내 아내는 디즈니랜드에 가면 소피아보다 훨씬 대단한 로봇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는 피지컬 인텔리전스라는 화두를 끝까지 물고 뒹굴 생각이다.

피지컬 인텔리전스를 로봇에 온전히 적용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릴 것이다. 김상배 교수는 지난해 〈MIT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치타 3이 2~3년 내에 방사능이 있는 발전소에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5~10년 내에는 더 많은 물리적 작업, 예컨대 발전소 해체(설비를 해체하고 밖으로 들고 나오는)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5~20년 내로는 화재 현장에 들어가 생명을 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었다 하더라도 로봇의 실용화에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기본적 이유가 있다. 현장에 투입된 로봇은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공청소기 로봇은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한 시간에 실수를 100번쯤 범한다. 이 때문에 사람이라면 30분 만에 해치우는 일을 서너 시간 동안 하기도 한다. 잔디 로봇도 그렇다. 깎은 곳을 한 번 더 깎아도 괜찮다. 일하다가 멈춘다 해도 큰일이 아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큰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용 로봇이 실수를 범하면 몇백만 달러의 손해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 로봇의 동작은 거의 100%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수가 용납되는 기계부터 실용화되는 것이다.”

ⓒAP Photo2017년 9월 핸슨로보틱스의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회사 설립자 핸슨에게 사과를 먹이고 있다.

인간과 밀착해서 활동하는 로봇의 실용화가 늦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욱이 로봇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수준 역시 통념보다 한참 낮았다. 김상배 교수에게 배달 로봇의 상상도(2족 로봇이 아파트 가구 현관에서 손으로 택배 물품을 쥐고 집주인에게 전달)를 보여주며 질문했다. “로봇이 물품을 이 정도 수준으로 잡고 들 수 있는가?” 그의 답변은 이랬다. “못한다. 로봇의 단순한 이동에 비해 물품을 쥐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지금 그것을 준비하고 있나?’) 준비한다기보다 그것에 필요한 요소들을 연구하고 있다.”

김상배 교수는 재해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을 빨리 만들고 싶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피지컬 인텔리전스는 아직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 로봇은 상식(문을 열려면 몸을 일단 문 앞으로 던져야 한다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상식)을 갖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직관력을 로봇의 컨트롤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체 모방 로봇연구소는 ‘헤르메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사람이 센서가 달린 슈트를 입고 움직이면 로봇이 그 동작을 순식간에 인식해서 따라 한다. 힘의 크기까지도 똑같다. 동시에 로봇이 움직이다가 어딘가 부딪치거나 균형을 잃으면 그 상태가 슈트를 착용한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에 따라 사람이 균형을 잡으면 로봇도 균형을 잡는다.

“로봇이 재해 현장에 들어가 문을 열 때 사람이 그 로봇의 균형을 느끼면서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사람이 로봇의 세세한 동작 하나하나를 모두 컨트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높은 수준의 판단만 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피지컬 인텔리전스와 상식을 로봇에게 부여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본다.”

이런 융통성은 ‘생체 모방 로봇’이라는 그의 전공 분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흔히 ‘생체 모방’은, 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구조를 그대로 베껴 로봇에게 넣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생체 모방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학자도 많은 모양이다. 김상배 교수는 로봇이 생체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생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생체의 근육은 작지만 엄청난 힘을 낼 수 있고 충격 흡수 역시 매우 능숙하다. 다만 그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잘 쓰기도 힘들다. 야구 선수가 빠른 스피드로 공을 던지려면 신체의 근육 640여 개 중에 절반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근육을 한꺼번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허리 근육, 그다음에 발 근육, 어깨 근육 식으로 ‘체인 리턴’을 잘 해야 한다.” 로봇의 근육인 전기모터는 그렇지 않다. 힘을 내는 메커니즘이 단순하다. 이론적으로는 로봇에게 인간의 근육을 대체할 640개의 모터를 달아주면 될 것이다. 무게가 대폭 늘어나고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며 비용도 무한대로 증가한다. 그러므로 “어차피 (전기모터는 근육을) 못 따라간다.” 더욱이 “따라갈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목적에 맞게 로봇을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

“인체가 지금처럼 진화한 이유가 있다. 생존이다. 이와 주먹으로 싸우는 것보다 도구를 만드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고 그 과정에서 지능이 발전했다. 치타 역시 빨리 뛸 목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로봇을 설계할 때는 그 목적을 앞세워야 한다. 예컨대 치타 로봇은 아프리카에 가서 잘 살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생체를 참조할 뿐이지 베낄 필요는 없다. 치타 로봇 역시 처음엔 머리도 달고 허리도 달았지만, 지금은 동물과 외형적으로 많이 다르다. 실용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최적화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치타 로봇은 우리의 목적과 설비(모터), 컴퓨터 지능의 한계 등에 걸맞은 디자인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AP Photo2015년 6월 로봇공학 챌린지 대회에서 카이스트의 휴보 로봇이 밸브를 돌리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과 미국의 첨단기술 연구 환경을 비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국 기업과 접촉하다가 놀란 적이 있다. 재해 현장에 투입하는 로봇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방수 되느냐’고 묻더라. 어떤 기업은 연구 과제를 제시하면서 ‘3년 안에 상용화해서 팔자’는데, 놀랍게도 그 부문에 대한 시장조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이미 상품이 나온 단계에서 신속하게 동종 상품을 제작해서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히트 친 상품을 따라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시장을 조사해서 상품을 개발하는 경험이 부족한 것 같다. 패스트 팔로어는 어떻게 만들면 고객이 좋아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결국 신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희귀하게 된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를 내게 하고 그 아이디어의 제품화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한 학기를 보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나쁜 아이디어가 없다. 아이디어라면 똑같이 존중해준다. 물론 부작용도 많다. 황당무계한 아이디어인데도 비판을 받지 않기 때문에 회사가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든지…. 그러나 연구하는 집단에서는 어떤 생각도 마음대로 표현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런 자유가 없다. 틀에 잡혀 있다. 비슷한 지능의 학생이 들어와서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한국에서 많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과학, 연구발전, 창의력 쪽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로봇과 인공지능이란 산업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자기 나라에 맞는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해나가야 한다. 한국의 학생과 교수의 수준은 충분히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다른 나라를 따라가기보다, 어떤 기술을 특성화해서 세계 최고가 될 것인지 집중과 선택을 잘해서 한국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면 좋겠다.”

기자명 보스턴·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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