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세게 먹은(낙종)’ 날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기자실을 나와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
“출국금지 됐죠?”
“출국금지? 허허허. 출국금지는 독자도 관심 없고 검사도 관심 없고 기자만 관심 있는 거 아닌가?”
맞는 말이었다. 출국금지는 수사의 한 단계일 뿐이다. 검찰 출입기자들은 출국금지 ‘단독’에 목을 맨다. 확인하면 1면에 싣는다. 그 여세를 몰아 수사 방향까지 해설기사를 쓴다. ‘조국 대란’ 초기 보도 역시 비슷한 패턴을 밟았다. 검찰 압수수색이 있던 다음 날, 〈동아일보〉는 ‘檢, 조국 부인-모친-동생-처남 출국금지’라고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적어도 그 시점에선 오보였다.
브리핑 제도가 확대되면서 정부기관 출입처가 개방되었다. 검찰과 법원을 담당하는 법조 출입처는 폐쇄적이다. 공소장이나 판결문 등 수사나 재판 정보 보안을 이유로 기자단 가입이 까다롭다. 검찰이 요구하고 기자단이 합의한 엠바고(특정 시점까지 보도 중지)를 깨면, 해당 기자 소속 언론사는 징계를 받는다. 법조팀은 한 언론사당 적게는 3~4명으로 구성된다. 법조팀장은 대법원에, 1진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진은 대검찰청, 이른바 말진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맡는다. 인원 여유가 있다면 서울중앙지검에 1~2명을 더 배치한다. 인원 배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법조 취재의 중심축은 검찰이다.
요즘 법조 기자들이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각 언론사에서 취재력이 검증된 기자들이다. 취재를 못하면 법조팀에 배치되지 못한다. 법조 기자에게 취재력은 검사들에게 ‘피의사실’을 빼내는 것이다. 출국금지-압수수색-소환조사-주요 혐의-기소 여부 등 수사 단계별로 ‘살라미 정보’를 취재해야 한다. 나중에 보면 재판 과정에서 오보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사건당 전체 팩트의 10%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드러난다. 90%는 법정 다툼 과정에서 공개된다. 〈시사IN〉이 원세훈·박근혜·이명박 재판을 지면 중계한 이유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취재는 90%가 검찰에 쏠려 있다.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을 확정해 피의사실 공표를 막을 방침이다. 검찰도 전문공보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피의사실 유포를 실질적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나 검찰의 제도 개혁만으로 피의사실 유포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본 법조 기자 클럽에서 시작된 기자단 시스템을 유지할지 말지 이제 언론도 판단해야 한다. 방송사 등 큰 언론사부터 법조 취재의 중심을 법원으로 옮긴다면 바꿀 수 있다. 검찰 수사 관행 개혁만큼이나 법조 취재 관행 개선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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