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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기러 온 이들의 궁금증은 대개 세 가지로 압축된다. 이길 수 있을까, 돈은 얼마나 들까, 판결이 날 때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마지막 질문이 가장 답하기 어렵다. 1·2심은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3심(대법원 상고심)으로 가면 예상은 무용지물이 된다. 대법관은 14명뿐인데 상고 사건은 수만 건 쌓여 있고, 선고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다(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에만 참여한다.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대법관은 재판 업무에서 빠진다). 정치적 부담이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판결이 미뤄질 가능성도 크다.

오래 기다린 만큼 충실한 판결이 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속절없이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심리불속행 기각판결(본안 심리 없이 바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구체적인 기각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시민들은 이런 게 무슨 대법원 재판이냐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상고 사건을 맡겠느냐고 하소연한다. 대법관은 대법관대로 1인당 연간 3000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린다. 모두가 불만족스럽다.

다양한 상고제도 개혁 방안 이미 나와 있어

문제의 시초는 상고 사건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가 더 크다. 1·2심에서는 무엇이 사실인가(사실관계), 이 사실을 법규에 비추어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 것인가(법률관계)를 모두 다툰다. ‘사실심’이라고 한다. 상고심은 오직 원심 판결에 법규 위반의 잘못이 있는지 여부만 다투는 ‘법률심’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원심에서 인정된 사실이 실제와 다르다거나 원심에서 선고된 형벌이 너무 지나치다는 이유로 상고를 해봐야 기각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은 의외로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상고심도 하급심과 똑같이, 다만 대법관들이 더 엄정하게 심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 상고 이유가 있든 없든 상고를 하는 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래서 소송 당사자는 막연히 ‘한 번 더’ 기회를 잡고 싶어 한다. 변호사들도 굳이 수임할 사건의 수가 늘어날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십수 년간 이뤄진 상고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도 이 많은 상고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에 집중돼 있다. 상고법원 설치, 대법원 상고허가제 도입, 고등법원 상고심사제 도입, 대법관 증원 등 해외 다른 나라의 사례와 국내 경험을 반영한 다양한 개혁 방안이 이미 나와 있다. 법원과 변호사 업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로 개혁 논의는 파탄 지경이 되었다. 뒤를 이은 김명수 대법원장은 상고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일갈했지만, 취임 2년을 맞은 현재 진전된 것이 전혀 없다.

상고제도의 개혁은 법원만 주도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급심 법원과 달리, 대법원에는 개인의 권리 구제라는 기능 외에 다른 기능이 요구된다. 바로 법령 해석과 법 적용을 통일하는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이다. 대법원이 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충실하게 수행할 것을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느 기능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 먼저 우리 사회에서 합의하고 이에 따른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3심제도가 똑같은 재판을 세 번 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 애초에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세 차례의 재판이 아니라 충실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이다. 이를 위해서는 1·2심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져야 한다. 판사에게만 더 잘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법관 증원 등 충실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모든 사회문제를 법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법 과잉의 문제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장치와 소송 외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마련하면 국민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개혁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상고제도 개혁을 포함한 법원개혁 논의도 함께 뜨거워지기 바란다.

기자명 노주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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