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생명이 무엇인지 로봇 통해 탐구한다
  • 교토·도쿄 전혜원 기자
  • 호수 630
  • 승인 2019.10.1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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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닮은 로봇 ‘에리카’를 만든 이시구로 교수와, 생명을 먼저 만들면 지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 ‘인공생명’이라는 분야를 개척하는 이케가미 교수가 말하는 ‘로봇과 인간의 미래’.

2019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시사IN 조남진이시구로 히로시 교수가 의도와 욕구를 가진 안드로이드 로봇 에리카(왼쪽)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봇공학자 중 한 명이다. 동시에 세계 로봇공학자 가운데 가장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다. 인간형 로봇을 ‘안드로이드’라고 부른다. 그의 안드로이드는 극단적으로 인간적이다. 인간의 피부, 눈동자는 물론이고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돌리는 미세한 움직임까지 재현한다. 급기야 그는 자신을 닮은 안드로이드 ‘제미노이드-HI’를 설계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얼굴이 변하자 그 로봇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안드로이드의 얼굴에 맞추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감행했다. 그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시구로 히로시 오사카대 대학원 기초공학연구과 교수다.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그는 한 인터뷰에서 똑같은 셔츠와 바지가 스무 벌 있다고 말했다). 9월17일 교토에서 만났을 때도 같은 차림이었다. 산업용 로봇(공장자동화 설비)의 강국에서, 바퀴 달린 로봇이 아마존 상품을 배송하는 시대에, 왜 인간을 똑 닮은 로봇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짧았다. “인간의 뇌가 인간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공장이나 도로에서 특정 작업을 수행할 로봇이라면 굳이 인간을 닮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있는 일본에서는 앞으로 로봇이 더 많은 서비스를 인간에게 직접 제공해야 한다. 이렇듯 일상에서 인간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로봇이라면, ‘인간다운 로봇’인 편이 이상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인간의 뇌가 인간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려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시사IN 조남진이시구로 교수와 이케가미 교수가 함께 만든 로봇인 ‘기계인간 오르타’(위)는 앞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인지하고 따라 한다.

이시구로 “우리는 로봇과 함께 진화”

그는 인간이 무엇인지, 로봇을 통해 더 깊이 알고 싶다고 말한다. ‘로봇 연구’라기보다 ‘인간 연구’에 가깝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간이란 존재가 궁금했다고 한다. 좀 역설적이지만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기계화될 수 있는가’란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면서 ‘인간다움’이 뭔지 규명해가려 한다. 그 질문을 뒤집으면 ‘기계는 어느 정도까지 인간다울 수 있을까’가 된다. 이시구로 교수가 로봇에게 인간 같은 말과 행동을 넘어 의도와 욕구, 최종적으로는 의식을 부여하고 싶은 이유다. “앞으로는 로봇이 인간의 건강이나 안전을 지키고 싶다는 의도와 욕구하에서 스스로 판단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쓰는 사람이 하나하나 기능을 지시할 수는 없잖아요.”

그는 이미 의도와 욕구를 가진 로봇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젊은 여성을 닮은 로봇 ‘에리카’다. “의도와 욕구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과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구와,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생각되는지 알고 싶다는 사회적 욕구입니다. 그런 욕구에 기초해서 (에리카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에도 본능은 프로그래밍되어 있지요.” 프로그래밍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한다면, 에리카는 인간에 의해, 인간은 자연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니, 다르지 않으냐고 질문했다. “무엇이 다릅니까? 인간도 유전자에 (본능이) 쓰여 있잖아요. 누가 썼든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밍이에요.”

에리카와 대화를 나눠보았다. “에 또, 처음 뵙겠습니다, 맞지요?” 기자가 낯선 사람임을 알아봤다. 에리카는 눈 속 카메라로 사람 얼굴을 인식한다. “지금 마침 운세를 보고 있었는데요. 흥미 있나요?” 에리카가 물었다. “네, 조금 있어요.” “그래요? 그럼 운세 봐줄까요?” “네, 부탁합니다.” “그럼 별자리 뭐예요?” “천칭자리요.” “천칭자리군요. 그리고 성별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여성입니다.” “오늘 굉장히 운세 좋네요. 계속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산뜻하게 매듭지어지는 하루입니다(구글과 연동해 검색한 실제 운세라고 한다).”

에리카는 두 사람 이상과 대화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정보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 이야기의 주제를 스스로 정해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제 이름이 저한테 어울리나요?”라는 에리카의 질문에 “어울려요”라고 답하자 “정말이에요? 기뻐요”라고 기쁨을 표시할 때는 진짜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2045년일 거라고 예견했다. 이에 대한 이시구로 교수의 견해를 물었다. “이미 컴퓨터가 대체로 우위에 있지 않나요? 기억능력은 어느 쪽이 위인가요? 계산은요? 장기나 바둑은? 주식 트레이드는? (인간이 로봇에게) 이길 수 있는 게 있나요?” “인간적인 소통?” 이시구로 교수는 에리카를 가리키며 “꽤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 20년 있으면 보통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로봇이 될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이케가미 다카시 교수(위)는 인공지능 혹은 인공생명이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리라 본다.

이시구로 교수가 질문했다. “인간과 로봇 중 어느 쪽이 도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거의 인간이에요. 장래 로봇이 범죄를 일으킬 거라 생각합니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 로봇은 아무도 만들지 않아요. 예를 들어 자동판매기는 절대 틀리지 않고, 거스름돈을 속이지 않죠. 하지만 인간은 속이잖아요. 인간과 자동판매기 중에 어느 쪽을 신뢰할 수 있나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로봇을 쓰면 훨씬 효율 높게 일할 수 있어요. 생활이 풍족해져요. 물론 로봇을 사용하려면 공부해야죠. 옛날에는 읽기·쓰기만 배우면 바로 일했어요. 인생의 10%를 공부해서 90%를 일했죠. 지금은 전문학교나 대학에 가요. 인생의 50%를 공부에 써요. 앞으로 이 비율이 70%, 80%로 올라갈 거예요. 생산성이 올라간다면 문제없어요.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세금을 제대로 내면 돼요.” 그래도 노동을 해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지 않나? “그럼 학생은 인간답지 않나요? 일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인간이 아닌가요? 노동은 인간의 목적이 아니에요.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은 목적이 될 수 있지만, 일하지 않는 건 별로 문제없지 않나요?”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인간과 로봇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란 기술을 쓰는 동물입니다. 만약 인간으로부터 기술을 빼앗으면 원숭이가 되어버립니다. 스마트폰도 로봇과 비슷한 거잖아요? 우리는 로봇과 함께 진화하는 것입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인간은 이미 인공물을 부착하고 있다. 의수나 의족, 인공장기 등이 그렇다. 안경이나 보청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공물들이 ‘인간적이지 않다’는 의견은 듣기 힘들다. 이시구로 교수는 ‘살아 있는 육체란 인간의 조건에서 점점 제외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점점 더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를,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겉모습과 행동을 대체해간다면, 최후에 남는 ‘인간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이시구로 교수가 일단 ‘인간다운 로봇’을 만든 뒤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역으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해 ‘생명 비슷한 것’을 만들려는 연구자도 있다. 이케가미 다카시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인공생명(Artificial Life, ALife)’이라는 주제에 매달린다. 인공생명이란 컴퓨터나 화학 실험, 로봇 실험을 통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연구 분야다. 인공생명은 인공지능과 어떻게 다를까? 이케가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생명 없는 지능, 예를 들어 인공지능은 인간이 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공생명은 인간과 대등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존재하니까요. 지성 없는 생명은 있어도 생명 없는 지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율적인 의미에서 ‘스스로 살아 있다’는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생명현상 위에 지성이라는 것도 생기지 않을까. 그걸 연구하는 게 인공생명입니다.”

인공생명은 매우 흥미롭지만 대중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은 아이디어다. 인공지능에 비해 아직 낯설다. ‘생명의 원리가 들어간 안드로이드를 만들면 인공생명이라는 화두를 사회에 던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시구로 교수와 이케가미 교수가 함께 만든 로봇이 바로 ‘기계인간 오르타(Alter)’다. 얼굴과 손만 인간 모양이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기계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오르타는 인공생명일까? “‘이런 장면에서는 이렇게 움직여라’라고 일일이 프로그래밍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인공생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르타는 인공생명입니다”라고 이케가미 교수는 설명했다. 인간의 신경세포를 모방한 네트워크가 오르타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외부의 소리에 반응하는 장치도 리듬을 만든다. 그렇게 ‘스스로’ 움직임의 패턴을 만들어간다.

오르타는 ‘Scary Beauty(무서운 아름다움)’라는 오페라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영상에서는 지휘라기보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나름의 지휘였다고 한다. “처음엔 전혀 지휘를 못했어요. 연주자들도 그냥 오르타를 보지 않고 연주했죠. 그런데 점점 오르타와 연주자가 친해졌어요. 같이 ‘셀카’도 찍고. 그렇게 연주자도 오르타의 지휘에 맞추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오르타에게 지휘를 ‘가르친’ 걸까? “50%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움직임이고, 나머지 50%는 오르타의 자율적인 움직임이에요. 자율적 움직임이 100%에 가까워지도록 시도하고 있어요.” 오르타는 50%만 인공생명이란 얘기일까? “글쎄요(웃음). 보통 생물도 의식해서 움직이는 부분이 있고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부분도 있잖아요.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부분이 의식을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의식을 떠받치는 무의식이란 것도 중요하니까, 지금은 두 부분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Google 갈무리2016년 3월10일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 모습.

이케가미 “인간이 만든 것도 진화의 산물”

인공생명에서 ‘의식’이라는 키워드까지 도달했다. 인간이 의식이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사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오르타에게 의식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공생명이 아니면 의식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은 빨리 계산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의식이란 그런 것보다는, 먹는다든가 배설한다든가 하는 원시적 행동과 좀 더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인공생명을 먼저 만든 뒤 지능을 만들 생각인지 물었다. “생명이라면 ‘먹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자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걸 위해 필요한 지혜가 생기면 오래 살고,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이 늘어나죠. 뛰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든가, 눈이 있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든가 하는 것처럼,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는 게 지성이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온 과정과는 전혀 다르죠.”

인공지능은 운전이든 의료수술이든 번역이든, 인간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기계로부터 굳이 인공생명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케가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새의 날아가는 기능을 배워서 비행기를 만들었죠. 빨리 달리는 말을 보고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수학이나 과학을 배우는 기능으로부터 인공지능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강아지와 고양이, 지렁이의 기능은 뭘까요? (인간의 기술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답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없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새에서 나는 기능을 뺀다고 0이 되는 건 아니죠. ‘새=비행기’는 아니니까. 새에서 비행기를 빼고 남은 부분, 꼭 필요한 기능은 아니지만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그런 부분이 있음으로 인해서 (존재는) 세계의 일원이 되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기능 외의 것도 가진 존재가 좀 더 좋은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이와 강아지와 지렁이는 원래 지구에 있다. 인간이 그런 걸 만들어내는 건 뭔가 선을 넘는 행위가 아닐까?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니까, 인간이 만드는 것도 진화의 산물이지 않을까요?”가 그의 답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그는 별로 하지 않는 듯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자율적이지 않으니까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 없어요. 무기랑 같죠. 오히려 인공생명의 경우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니까, 생태계 안에 들어오면, 어쩌면 인간을 잡아먹을 수도 있겠네요(웃음).” 인공지능 시대에는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어 빈부격차가 확대될 거라는 전망에는 반대 의견을 냈다. “하나의 특화된 부분을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되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회사에 가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집니다. 지금까지의 가치관, 어떤 게 좋다고 하는 인생의 이상향을 바꾸는 게 인공지능 혹은 인공생명의 세계입니다.”

그는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의사면 대단하게 보고, 청소부나 간병인은 낮은 지위라고 보며 ‘위아래’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가치관입니다. 기술이 아니에요. 간병인의 임금을 올리고 사회가 응원하면 그분들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만약 대체할 수 있는 노동을 다 인공지능이 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을 통해 우리가 생각도 못한 물리나 자연법칙을 알게 될지도 모르고, 병을 고칠지도 모릅니다. 그럼 더 재미있고 신나는, 그리고 좀 더 평등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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