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레인은 늘 웃고 있다. 슬퍼도 웃고 아파도 웃는다. 어릴 적,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웃는 낯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양쪽 입꼬리를 칼로 찢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미소를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가 1869년 발표한 이 소설에는 17세기 영국에 실재했다는 어린이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생김새가 기이한 아이들을 몸종으로 거느리는 게 유행했는데, 멀쩡한 아이들까지 귀족에게 팔아넘기려고 콤프라치코스가 저지른 수많은 만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칼로 만들어낸 미소였다.

“그윈플레인은 웃으며 사람들을 웃겼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었지, 그의 생각은 웃지 않았다. 우연, 혹은 기이하고 특별한 기술이, 그에게 만들어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소설 〈웃는 남자〉 중에서).”

소설은 1928년 무성영화 〈웃는 남자〉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그래픽노블 〈배트맨〉의 작가가 조커의 기괴한 형상을 생각해냈다고 전해진다. 결국 조커라는 캐릭터는, 17세기의 뒷골목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에서 뻗어나간 가지 끝 열매다. ‘웃을 일이 없는데도 웃어야만 하는 가난하고 외롭고 힘없는 어린아이’가 그 뿌리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조커〉는 아직 조커가 되지 못한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웃을 일이 없는데도 웃어야만 하는’ 피에로 일로 근근이 먹고사는 남자. 마음의 성장이 멈춰버린 탓에 여전히 ‘가난하고 외롭고 힘없는 어린아이’로 살고 있는 아서. 세상이 자기에게만 가혹하다는 생각 끝에 이젠 자신도 세상을 향해 가혹해지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스스로 ‘조커(joker:농담하는 사람)’라 이름 붙이고 거리로 나선다. 겁에 질린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 두고 웃는다.

호아킨 피닉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예약?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웃었지, 그의 생각은 웃지 않았다. 우연, 혹은 기이하고 특별한 기술이, 그에게 만들어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 소설 〈웃는 남자〉가 포착해낸 지난 세기 ‘외로운 소년’의 미소가 마침내 우리 시대 ‘외로운 늑대’의 얼굴 위에도 새겨지는 클라이맥스. 늘 영웅의 맞은편에 서 있던 조커가 이번엔 홀로 영웅 자리에 우뚝 선다. 고담 시티를 피로 물들이는 악행의 모노드라마는 소름 끼치게 섬뜩하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기도 하다.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온전히 자신만의 조커를 창조했다. ‘이해할 수 없는 악당’으로만 존재해 온 캐릭터를 처음으로 이해하고 싶게 만든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조커가 무서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계속 그가 그리워졌다. 그러니까 정말 멋진 연기. 그러니까 또한 정말 위험한 연기. 아무래도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호아킨 피닉스 차지가 될 것 같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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