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다섯 살 의붓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이진용씨가 살던 집. 소주병과 유모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계단 쪽 창문 앞에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진 페트병이 놓여 있었다. 절반이 담뱃재로 차 있었다. 현관문 앞에는 빈 소주병 수십 개가 든 분리수거용 가방과 빨간색 유모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총 여섯 가구가 거주하는 다세대 주택에서 유일하게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다. “여기는 대부분 노인들만 살아서 조용해. 애들이 울기라도 했으면 건물이 쩌렁쩌렁 울렸을 텐데….” 이웃인 이 아무개씨(74)는 종종 소음을 들었다.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말과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오가며 그 집 식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항상 한 명만 데리고 다녀서 아기가 하나인 줄만 알았지. 나머지 두 명은 본 적이 없어.”

조용했던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주택가가 시끄러워진 건 9월26일 밤이었다. 밤 10시10분께 주안119안전센터로 신고가 들어왔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 아내 김은주씨(24·가명)의 휴대전화로 신고를 한 건 남편 이진용씨(26·가명)였다. 119 구급대원은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연락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119안전센터의 한 관계자는 “방 안에 도착하니 누워 있는 아이의 팔다리에 멍이 많이 있었다. 아이 아빠에게 언제 생긴 상처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대답했다”라고 말했다. ㄱ군(5)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이미 맥박과 호흡이 없는 상태였다. 엄마 김씨와 ㄱ군의 남동생 두 명도 방 두 칸짜리 집에 함께 있었다. 아이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보육원에서 가정으로 돌아온 지 26일 만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의붓아버지 이씨는 9월25일부터 25시간 동안 ㄱ군의 손발을 케이블 타이로 묶고 각목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엄마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도 폭행을 당했고 다른 아이들까지 죽이겠다고 협박해 말릴 수 없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방경찰청은 9월29일 의붓아버지 이씨를 살인죄 혐의로 구속했다. 김은주씨에 대해서도 남편의 범행을 방조했는지 수사 중이다.

이웃인 이씨는 사건 며칠 전 크게 고함을 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천장에서 쿵 하고 둔탁한 소리도 났다. “때리는 소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지.” 뉴스를 보고서야 ㄱ군과 동생 ㄴ군(4)이 한 달 동안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아이는 김은주씨의 친아들이자 이씨의 의붓아들이다. 두 아들을 홀로 키우던 김씨는 2016년 이씨를 만나 이듬해 혼인신고를 했다. 2017년 셋째 ㄷ군(2)을 낳았다.

2년 전부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이씨의 학대로 집을 떠나 보육기관에서 지냈다. 2017년 3월 이씨가 두 아이를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폭행했다. 당시 세 살, 두 살이던 두 아이는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보육시설에 입소했다. 입소 당시 두 아이에게는 지속적으로 폭행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이씨는 2017년 10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유기·방임 혐의로 기소됐고 2018년 3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동종 전과가 없고 피해 아동들의 엄마가 선처를 호소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연합뉴스이진용씨가 9월29일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아이들 귀가 후 사후 관리 거부

이씨의 폭력성은 동네에서도 유명했다. 집 근처의 한 식당 주인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에 오면 돌려보내려고 했다.” 그에 따르면, 3개월 전쯤 저녁 식사를 하러 이씨와 김씨, ㄷ군이 함께 식당을 찾았다. ㄷ군이 식당 주인에게 손을 흔들자 이씨가 “왜 모르는 사람에게 가려고 하느냐”라며 아이를 윽박질렀다.

아이들이 보육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이씨는 종종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보육원을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난동을 피웠다. 2018년 1월에는 임시보호명령이, 2018년 7월부터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이 법원으로부터 내려졌다. 아이들에 대한 이씨의 접근 및 통신이 금지되었다. 접근 시도를 저지하는 보육원 관계자들에게 이씨는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 7월 피해아동보호명령이 끝나자 엄마 김씨는 구청 측에 두 아이의 퇴소 의사를 밝혔다. 아동학대처벌법 제51조에 따르면 피해아동보호명령은 1년을 초과할 수 없지만 피해 아동의 보호를 위해 연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최대 4년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보육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기간 연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올해 4월부터 김씨의 강력한 요청으로 복귀에 필요한 부모 상담과 교육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부부는 심리 상담 12회, 부모 교육 7회를 이수했고 가정방문 조사에도 응했다.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교육을 이수했다는 사실을 의견서 형태로 지자체에 보고했지만 퇴소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구청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시설 퇴소 결정을 내린 미추홀구 아동지원과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보육원 측으로부터 아이들 퇴소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서를 받아 허가했다. 의견서 중 의붓아버지 이씨에 대해 ‘다혈질 성향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아동이 이씨를 피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것을 보았을 때 관계가 좋아 보인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라고 말했다. 시설 입·퇴소 관리는 시청과 구청의 관할이지만, 직접 학대 부모와 아이를 대면하는 건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보호시설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8월30일 두 아이가 집으로 돌아갔다. 이씨의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다.

이씨 부부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주 1회 부모 교육 및 가정방문 등 사후 관리를 받기로 약속했다. 퇴소 이후 부모의 태도가 바뀌었다. 지방이라 참석하기 어렵다고 말하거나 연락두절 상태가 지속됐다. 그사이 이씨가 아동수당, 보육수당 등 지원 체계를 알아보려 주민센터에 방문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천아동전문기관 관계자는 “사후 관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부모가 아이 복귀 이후에 이중성을 보여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조치라 기관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아동 인권과 관련된 사건을 주로 맡아온 한 변호사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판단하는 것이 현장과 맞닿아 있는 기관들의 책임이다.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아동학대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이었음에도 원가정에 돌려보낸 건 아쉬운 지점이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아동학대 및 아동재학대 현황’에 따르면 아동재학대의 경우 2014년 1027건에서 2018년 2544건으로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94% (8049건)의 재학대 사건이 부모에 의해 발생했다. 재학대 장소의 92.7%(7933건)는 피해 아동의 가정 내였다.

ㄱ군과 ㄴ군이 돌아와 머물던 한 달여 동안 다세대 주택에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웃들은 둘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아프면 울기라도 하지,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던 건지. 보육원에서 잘 크고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데리고 와서….” 이웃에 사는 이 아무개씨가 창문이 반쯤 열린 3층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9월26일, 그곳 방 안에서 한 생명이 꺼졌다. 2년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지 26일째였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