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지시한다 검찰을 개혁하라
  • 장일호·나경희 기자
  • 호수 630
  • 승인 2019.10.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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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촛불이 국면을 바꿨다. 시민의 ‘외부 충격’으로 검찰개혁을 공론화시켰다. 조국 장관 관련 사법 절차에 따라 검찰개혁의 폭과 강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신선영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9월28일 오후 5시30분,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 내린 사람들이 줄지어 계단을 올라갔다.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나오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30~40대 부부,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좁은 구간에 사람이 몰리자 “천천히! 천천히!” 구호를 외치며 “아이가 있으니 밀지 말라”는 말을 파도타기 하듯 뒤로 전달했다.

서초역 7번 출구 앞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맞은편 대검찰청 사이 도로는 이미 시민들로 가득했다. 광주·대전·부산·대구·포항·거제 등 전국 각지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상경한 시민들도 깃발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제7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오후 6시 무렵에는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경찰이 안전을 위해 서초역 7번 출구를 폐쇄한 뒤에도 인파는 계속 밀려들었다. 서초역 사거리부터 교대역까지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도로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인도나 화단, 버스 정류장까지 밀려나와 선 채로 구호를 외쳤다. “검찰개혁 이뤄내라!” “공수처를 설치하라!” “정치검찰 물러가라!” 대법원 앞에 자리 잡은 보수 단체 회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법치수호”를 외치면 촛불집회 쪽에서 “검찰개혁”으로 응수했다. 해가 지자 시민들은 LED 촛불과 야광봉, 휴대전화 플래시 불빛을 들며 구호를 이어갔다. 대검찰청 건물 몇몇 창문에도 불이 켜졌다. 창가로 다가온 두어 명이 밖을 내다보는 것을 발견한 시민들은 창문을 향해 ‘검찰개혁’ 피켓을 흔들어 보였다.

검찰개혁이 될 때까지 검찰청사 앞에서 매주 토요일 촛불을 밝힐 것을 다짐한 시민들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삼삼오오 모여 즉석 거리공연을 열거나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돌기도 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역사 안에서도 “검찰개혁” 구호가 이어졌다.

다시 한번 촛불이 국면을 바꿨다. 대의민주주의로는 충분히 고삐가 쥐여지지 않는 검찰권력을 향한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었다. 촛불이라는 ‘외부 충격’이 검찰개혁을 공론화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도 힘이 실렸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 후 귀국한 지 하루 만인 9월27일 고민정 대변인을 통해 검찰의 ‘성찰’을 요구했다. 이날 대통령의 메시지는 검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국 장관 자택 압수수색 당시 조 장관과 현장 검사 사이 전화통화 사실을 9월26일 주광덕 의원(자유한국당)이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폭로했다. 민주당은 검찰과 야당의 합작이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수사 압력이자 탄핵 사유라며 맞불을 놓았다. 검찰도 가세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9월27일 오전 간부회의에서 “본질은 수사 정보 유출이 아니라 수사 압력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9월27일 오후 1시30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대변인을 통해 메시지를 낸 것이다.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주기 바란다. 검찰개혁은 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 같은 법제도적 개혁뿐 아니라 검찰권 행사 방식이나 수사 관행 등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시사IN 신선영9월28일 검찰개혁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팻말을 들고 있다.

촛불집회 이틀 뒤인 9월30일 문 대통령은 좀 더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날 조국 장관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직접 지목해 ‘지시’라는 단어를 썼다.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 문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말을 다섯 차례 사용하며 9월28일 촛불집회를 지렛대 삼았다. 대통령의 발언에서 더 중요하고 세심하게 봐야 할 두 단어는 ‘민주적 통제’다. 문 대통령은 “특히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기관이다”라고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이 “함께 개혁의 주체이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관계라는 것도 강조했다. 동시에 검찰이 법무부의 외청으로서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기관임을 분명히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 구도를 해체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주적 통제’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주적 통제의 배경에는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이라는 특수한 지위로 여기는 검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깔려 있다. 흔히 판검사를 한데 묶어 쓰는 데서 보듯 ‘법률 전문가’인 판사와 검사는 종종 한 몸으로 오해된다. 검찰과 법원 청사가 나란히 선 모습도 검찰의 ‘소속’을 헷갈리게 한다. 검찰 준사법기관론은 검사가 행사하는 검찰권이 행정부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사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들어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논리 위에서 힘을 갖는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시도가 ‘압박’으로 비춰지는 것도, 검찰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준사법기관론을 배경으로 한다.

이 긴장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한 검찰개혁 ‘바이블’인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는 “검찰에게 정치적 중립만 보장해주면 나머지는 검찰이 알아서 개혁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현실에 맞지 않는 주장임을 참여정부의 경험으로 회고한다. 검찰이 준사법기관론 위에서 정당한 민주적 통제마저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이라고 정의하며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려 했다고도 지적한다. 검찰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표현 뒤에 숨어 있는 기득권(수사와 기소의 독점)이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무부의 ‘견제’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정치권이 검찰을 견제, 감시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제도적으로 유일한 기구다.”

9월30일 대통령 지시에도 검찰은 ‘찬찬히’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곧바로 비판이 일자 검찰은 10월1일 검찰개혁안 세 가지를 제시했다. 전국 18개 지방검찰청 중 7곳에 설치된 특수부를 3곳만 남겨놓고 폐지하고, 국정원이나 감사원 등 37개 기관에 파견된 검사 57명을 복귀시켜 형사부와 공판부에 배치하겠다고 했다. 검사장 전용 차량을 없애는 안도 발표했다.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특수부 폐지안이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취임 이후 전국 지검·지청에 속해 있던 43개 특수부를 7개까지 줄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다시 3곳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추진했던 대검 중수부 폐지와 비교해보면 개혁 속도는 빠르다. 참여정부는 특수부 수사의 중추였던 검찰총장 산하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대검 중수부는 2013년 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2011)에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그 이유로 꼽았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검찰이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줬다. 이 수사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됐다. 그 바람에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게 되면 마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보복 같은 인상을 줄 소지가 컸다. 그 시기를 놓치니 다음 계기를 잡지 못했다.”

ⓒ연합뉴스9월30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앞줄 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특수부 축소로 대표되는 ‘윤석열표 개혁안’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한 현직 검사는 “특수부 폐지는 특수 사건 총량을 줄이지 않고 수사 인지권이 그대로 있는 한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이다. 인권 보호니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대목은 ‘녹음기’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 저런 식으로 발표만 해놓고 안 한 게 수두룩하다”라고 말했다.

9월30일 출범한 법무부 산하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김남준 위원장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특수부 폐지안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사실 대부분 특별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한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방 특수부 검사들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올려 숫자를 늘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현재 서울중앙지검에는 특수1부(8명), 특수2부(7명), 특수3부(7명), 특수4부(17명)가 있다. 이 외에도 조세범죄조사부(5명), 방위사업수사부(6명)도 사실상 인지수사를 담당한다.

문제는 특수부 수사가 검찰 지휘부의 ‘내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 있다. 수사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형사부와 달리 수사 검사의 자율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한 현직 검사는 특수부 수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수부는 예민한 사건을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대검까지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정치인이나 재계 인사는 소환조사 날짜까지 위에서 정해준다. 신문조서 질문 사항도 미리 작성해 위에 보고한다. 피의자 신문조서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특수부에 가면 내가 지휘부의 부속품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특수부에 있으면 내가 수사권을 가진 검사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자체 개혁안

그동안 검찰의 자체 개혁안은 검찰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꺼내 드는 카드였다. 2010년 스폰서 검사,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 사건 등이 발생할 때마다 당시 검찰총장은 여론에 떠밀려 특별검사를 임명하거나 특별감찰팀을 구성하는 식으로 ‘셀프 개혁안’을 내놓으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정점은 2016년이었다. 11년간 친구와 기업으로부터 ‘보험성’ 뇌물을 받아온 진경준 검사장이 현직으로서는 최초로 구속되자 더 이상 검찰의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개혁하겠다며 꾸려진 대검 검찰개혁추진단은 법조비리 단속 전담반 설립, 특임검사식 감찰 시스템 도입 등 ‘법조비리 근절 및 내부 청렴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도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한 평검사는 “감찰을 강화한다고 해놓고 한 게 거의 없다. 힘 있는 간부들은 실제로 감찰을 받지 않고 힘없는 검사들만 강화된 감찰에 당했다”라고 지적했다.

ⓒ시사IN 이명익10월3일 검찰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소환한 가운데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그런 문제의식 위에서 제도화 과정을 밟았다. 두 안이 패스스트랙에 지정되어 입법부에 넘어가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는 인사와 감찰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 방향을 잡고 있다. 대검 감찰부장 인사가 대표적이다. 2개월째 공석인 감찰부장은 검사에 대한 직무 감찰을 하는 직책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선배 기수였던 정병하 감찰부장이 “신임 총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라며 사퇴했다. 7월22일 대검 감찰부장 공개모집 공고가 나갔고 3배수까지 추려진 후보자 모두 검찰 출신으로 알려졌다. 역시나 검찰 식구가 감찰부장에 임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 장관 취임 후 원점에서 재검토됐다. 조 장관은 9월25일 <시사IN> 인터뷰에서 감찰부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검찰 ‘외부 인사’ 영입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지금까지 검찰 내부의 감찰부장은 전직 검사가 해왔다. 통상적 감찰 행정 원리로 봐서는 좀 이상하다. 지금 감찰부장이 공석으로 검증 과정인데, 특정 사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감찰 원리상 소속 출신이 아닌 게 감찰 공정성을 보장한다는 개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촛불이 살려낸 검찰개혁 바람에 검찰은 몸을 낮춘 형국이다. 한편으론 조국 장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이 강제수사를 개시한 지 37일 만인 10월3일 조 장관의 아내 정경심 교수를 처음으로 비공개 소환조사했다. 대검은 정 교수 수사와 검찰개혁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속영장 발부 여부, 법정에서 유무죄 등 ‘사법 절차’에 따라 검찰개혁의 폭과 강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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