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의 삶’ 사는 이들을 위하여
  • 임지영 기자
  • 호수 629
  • 승인 2019.10.07 14: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성희

활동가도 아니고, 연대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공연기획자 정소은씨(47)는 ‘팬질’ 혹은 ‘덕질’이라는 적당한 단어를 만났다. 지난해 파인텍 노동자들을 만나기 전,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투쟁하는 사람들은 불쌍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왔는데 ‘죽는소리’ 하며 비겁하게 사는 직장 상사들의 모습과는 상반됐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당시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75m 높이 굴뚝에서 노동자 두 명이 고공 농성 중이었다. 이들에 대한 덕질이 시작되었다.

독서모임을 같이하는 김다은 CBS PD와 함께 굴뚝 위 노동자에게 손편지를 올려 보내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프로젝트를 했다. 농성 현장에서 이양구·이연주 극작가를 만나 차를 마셨다. 교섭이 끝나면 굴뚝 농성을 기억할 수 있는 연극을 해보면 좋겠다며 그에게 기획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평소 다루는 주제와 화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연극인들이었다. 올해 1월 426일의 고공 농성 끝에 노사 협상이 타결되었다. 계획대로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이연주 대본, 이양구 연출, 정소은 기획의 <이게 마지막이야>가 9월27일부터 10월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상연된다.

고공 농성을 마친 해고 노동자의 부인이 주인공이다. 교섭을 타결하고 내려왔는데 남편은 방에 칩거하며 소통을 안 한다. 다큐멘터리 극이 아니고 정극이다. 노동을 모티프로 개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공 농성 중인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취약한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출연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를 해볼까 하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가 일찌감치 현실을 인식하고 광고회사에 들어가 일하다 우연히 공연 쪽으로 인연이 닿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과 축제를 담당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남산예술산책>, 최근에는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의 기획을 담당했다. 자연과 장애, 노동 등 그때그때의 관심사에 따라 얼떨결에 일을 맡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감응의 이유가 확실하다.

‘거리의 철학자’ 같은 면모를 지닌 차광호 파인텍 지회장이 언젠가 <1박2일>에 출연했던 강호동을 보며 말했다. ‘복불복’ 게임을 할 때 ‘나만 안 걸리면 된다’고 말하는 게 싫다고. 장난처럼 말하는데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그렇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었다. 정씨는 그들이 남들 몫까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굴뚝 위 노동자를 향한 기자들의 누추한 질문과 관련 기사의 댓글을 읽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일상이 달라졌다. 농성 천막이 곳곳에 많은데도 평소에는 ‘팝업창’ 끄듯 다녔다. 요즘은 유심히 읽는다. 예전에는 완벽하게 남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지금 여기에서 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