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조국 법무부 장관 이슈로 떠들썩했던 근래 계급 이슈는 다른 많은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자극했다. 우리 부모는 둘 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나는 농어촌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대학 시절 내내 너무 외로웠다. 동기 부모 중 대다수는 전문직·관리직이거나 최소한 ‘배운 사람’이었다.

대학에 들어와 지식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나는 시장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곳에는 음모와 배신이 넘치고 온갖 인생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토록 거친 공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이들 인생의 곡절을 만든 장본인은 놀랄 것도 없이 남편이었고.

똑똑하고 인권 의식도 탁월한 친구들이…

여자들은 가난과 폭력과 질병과 가족 문제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순간에서도 악착같이 삶을 이어나갔다. 남자 어른 없는 삶은 분하게도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술 취한 손님이 소주병을 테이블 위로 내려치거나 별안간 엄마의 목을 조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그런 곳에서 어찌 피켓을 들고 시위를 열 수 있을까.

페미니즘 글을 처음 쓰게 되었을 때 출판된 지면을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며칠 뒤 엄마는 말했다. “어떤 손님이 그랬는데 백 번 천 번을 읽어보래. 그러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여자이기 때문에 갖는 어려움은 가난할수록, 교육받지 못할수록 심하다. 시장의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지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여자로서의 삶이 어떤지를 너무나 분명히, 몸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여성주의적 감수성의 8할은 이들에게서 왔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 활동가다. 그러나 언어를 갖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는 과연 누가 대변할까?

활동가로 지내면서 부딪힌 가장 큰 의아함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나는 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다른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세상을 다르게 보는가. 어째서 계급에 관한 문제 제기는 정치적 올바름, 동물권, 환경권에 관한 이슈만큼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하는가. 똑똑하고 인권 의식도 탁월한 친구들이 왜 가난하고 촌스러운 여자들과 도저히 섞이려 들지 않는가.

가난한 남자가 자신이 가진 소수자성(계급) 때문에 젠더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내 징징거리는 것처럼,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은 자신이 가진 계급적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아무 말이나 쉽게 할 수 없는 요즘, 비난으로부터 더 자유로운 사람은 일찌감치 진보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이들이다.

또 다른 의아함은 나를 향했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보수적이었을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주류가 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를 소속으로 판단하며, 성취에 그토록 목맸을까. 자라면서 들은 이야기는 줄곧 돈을 벌고 성공해야 한다는 말이었지 공동체 안에서의 정의나 공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시장의 여자들은 내가 이곳에서 어서 탈출하기를 원했지, 이 게임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불리한지를 말하지 않았다.

최근 SNS에서는 여성들이 더 돈을 모으고, 더 좋은 직업을 갖자는 이른바 ‘야망 플로’가 일었다. 상위 몇 퍼센트 남자가 누리던 세계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나도 들어가겠다는 운동이다. 여러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간신히 그 세계에 편입한 여성의 이야기는 가난한 여성의 목소리를 더더욱 가릴 것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것은 자신과 같은 계급이면서 더 많은 보수를 받는 남성일 테니까.

페미니즘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다시 묻는다. 이 운동이 이미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도덕적 만족감을 선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기자명 하미나 (페미당당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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