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밸따기’ 하던 그녀들의 노동
  • 김만석 (독립연구자)
  • 호수 629
  • 승인 2019.10.1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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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가공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한데 우리 사회에는 이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녀들의 노동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생존 활동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연합뉴스강원도의 한 덕장에서 여성들이 말린 명태를 손질하고 있다.

올해 초 명태가 강원도 고성 인근 바다에서 잡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대구를 잡기 위해 쳐둔 그물에 명태가 걸렸던 것이다. 2008년 어획고 ‘0’을 기록하면서 한반도 동해 바다에서 명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는데, 10년 만에 명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14년 해양수산부가 벌인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치어 방류와 양식 사업)가 부분적으로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명태의 귀환’이 확실시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명태는 아직 되돌아오지 못했고 올해부터는 아예 명태잡이 자체가 전면 금지되고 있다.

명태가 동해 바다에서 사라진 원인은 통상 두 가지로 이해한다. 하나는 수온 상승이고 다른 하나는 남획이다. 이 두 진단 모두 일리가 있지만 ‘회귀성 어종’인 명태가 여전히 러시아의 오호츠크해나 베링해에서는 잡히는데 한반도 동해안에서 잡히지 않는 이유를 명백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종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명태가 회귀를 포기하고 오호츠크해나 베링해에서만 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남획으로 한반도에서 씨가 말랐다면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더군다나 한반도 북쪽 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진단은 반쪽일 수밖에 없다. 현재 명태의 주산지였던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명태가 잡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반도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명태가 한국인의 밥상에서 떠난 적은 없다. 동네 곳곳에서 ‘생태탕’ ‘코다리찜’ 가게들이 성업 중일뿐더러, 여전히 각종 의례와 일상의 음식에서 명태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추석에 명태 가격이 오르자 해양수산부는 러시아산 명태 4641t을 시장에 풀어놓았다. 역설적으로 한반도에서 명태가 사라질수록 명태의 가치는 빛난다.

북한 역시 명태를 ‘민족 고유의 음식’ 자리에 놓고 있지만, 분류상 함경남도의 지역 음식으로 간주한다. 북한에서 명태의 유통은 전 사회적이었지만, 명태를 담론화할 때는 ‘지역’의 자리에 겹쳐 놓는다. <조선료리전집>이나 월간지인 <조선료리> 등에서는 명태 관련 요리들이 함경남도 지역 음식, 그리고 겨울철 계절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다. 동결건조를 통해 명태가 ‘북어’로 제조되면서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지만, 북한에서는 지역과 계절에 밀착해 있는 음식으로 여긴다는 점이 독특하다.

명란젓갈 수출과 여성 노동력 착취

역사적으로 명태는 원래 한반도에서 주로 먹던 어종이지만, 일본인들이 명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명태와 그 부산물이 제조 과정을 거쳐 상품화하고 점차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옌볜만 하더라도 명태를 술안주로 파는 가게가 즐비했던 적도 있고 지금도 옌볜 ‘서시장’의 작은 상점들에서는 북어와 명란젓갈을 판매 중이다. 소련이 해체된 직후 모스크바에 특파원으로 간 기자가 ‘명란’이 식료품 보급소에 들어왔다는 뉴스를 전하기도 했다.

과거 일본은 주로 어묵을 만드는 데 명태를 사용할 뿐 다른 부속물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바다에 눈독을 들인 일본은 자연스럽게 조선의 명태와 그 부속물의 제조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명란이 가장 중요했다. 일본이 한반도 수탈 목적으로 조사한 <한국수산지>(1908) 1권에는 조선에서 명태가 채취되는 과정, 유통과정, 판매금액, 이용방법, 제조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달아두면서 의도치 않게 한국 수산사에서 중요한 기록을 남겨둔다. “대개 이 지방(함경남도)의 어민은 용감해서 풍파를 두려워하지 않고, 잘 참는 성격으로 추운 기후를 피하지 않아 도저히 다른 지방 어부와 비견할 수 없기 때문에 영업주는 기꺼이 이들을 채용한다. 그리고 뛰어난 자를 고용하려고 하면 어기(漁期) 전에 미리 예약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명태를 냉동·건조하려면, 먼저 어선에서 하역한 것을 바닷가 또는 자신의 집 마당으로 운반해놓고 부녀자를 모아 그것을 해체한다. 그 방법은 먼저 작은 칼로 생선의 머리를 앞에 두고 아가미 아래부터 항문까지 절개하여 알, 간장 및 위장을 갈라내고 각각 그것을 별도의 용기에 넣는다. 알은 조리를 담당하는 부녀자가 품삯 대신 거두어 가진다.”

<한국수산지>의 서술에서 중요한 대목이 바로 ‘부녀자’다.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광복 이후 서술된 한국어업사나 수산사의 경우에도 통상적으로 노동자의 자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있다고 해도 조선인 남성 노동자다. 물고기를 잡는 일은 남성들 몫이었고 이를 가공하는 것이 여성들 몫이었다면 어업사나 수산사에는 이들이 놓이는 자리가 구분되어 제시되어야 할 법도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없다. 북한의 수산사인 <조선수산사>(1990)는 이를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밸따기(수산물을 가공한다는 뜻의 북한어)는 주로 부둣가의 여성들이 담당하였는데 그들은 명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말릴 수 있게 한 대가로 명태알을 받았고 덕주(명태 덕장의 주인)는 고지와 간, 밸 등을 받았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그것을 다시 헐값으로 사들여 명란젓이나 창난젓을 만들거나 간유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사IN 조남진명란젓갈을 제조하는 부산 덕화푸드는 종업원 64명 가운데 45명이 여성이다.

북한의 <조선수산사>는 명태의 부속물로 젓갈을 제조하는 여성 노동 착취를 통해, 명란이 일본과 중국의 각지로 수출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인 명란젓갈 제조업자들은 명란의 등급을 나누고 운임을 깎기 위해 철도 당국과 협의하는 등 명란이 일본 내에서 적절한 가격에 소비되도록 만전을 기했다. 명태의 작황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가격과 품질이 적정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임금이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했다. 1920년대 함경남도 원산 인근에 포진해 있는 항구의 명란젓갈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조선인 여성이었는데, 이들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명란젓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가령 “1925년경 신포 털게 통조림 공장의 12~13살 되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6~18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강요당하였으나 한 달에 3~4원 이하의 낮은 임금밖에 받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임금으로는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었다. 이것은 당시 가장 낮은 임금으로 알려진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더 낮았다. 그것도 현금이 아니고 전표로 받았으므로 현금을 얻어 쓰기 위하여서는 그것을 싼값으로 십장에게 팔아넘겨야 하였다”라고 <조선수산사>는 밝히고 있다. 수산제조업에 종사하는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은 일본인 수산업자들과 조선인으로 여겨지는 중간간부에게 이중의 착취를 당해야 했다.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공’이라는 역사적 노동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그나마 확보했던 데에 비해 수산제조업 종사 여성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시화된 적이 없다. 예컨대 부산 지역의 경우로 한정해서 보더라도 ‘조선방직 여성 노동자’ ‘신발공장 여성 노동자’ ‘자갈치 아지매’ 정도를 제외하고는 수산가공업 종사자인 여성 노동자와 그 현장이 드러난 적이 별로 없다.

부산이 수산물 제조와 관련해 중요 도시로 성장해왔음에도 이들 여성 노동자에 관한 기억이나 기록을 정리한 자료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부산이 이럴진대 우리 사회 전체에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은 지워져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수산가공업의 영세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응당 그녀들이 담당해야 할 ‘생존 활동’으로 취급되었던 탓이 크다. 어류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빼고 알집을 수거하는 것은 판매를 위한 예비 과정이거나 물 긷기나 장작 패기와 같은 ‘생존 활동’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여성의 노동은 물물교환 따위로 대체

어획(생산)은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노동 혹은 지불노동으로 이루어지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은 물물교환 따위로 대체된 역사 위에서 우리 수산업은 성장해왔다. 2015년 현재 <부산광역시 수산업통계>에는 수산물 제조업체를 이렇게 분류하고 있다. ‘수산가공업’이라는 명칭을 대분류로 1)어육 및 유사제품 제조업 2)훈제 및 조리식품 제조업 3)냉동품 제조업 4)건조 및 염장품 제조업 5)해조류 가공 및 저장처리업 6)기타 수산가공업으로 나뉘어 있다. 업체 수는 총 499개로 서구에 65개, 사하구에 200개가 밀집해 있으며 총 종사자 수는 6258명이다. 종사자의 많은 수가 여성 노동자이지만 정확한 남녀 통계는 알기 어렵다. 부산에서 명란젓갈을 만드는 덕화푸드의 경우 종업원 64명 가운데 여성 노동자가 45명이다. 이로 미루어 전체 여성 노동자 비율을 짐작할 뿐이다. 서구와 사하구는 부산 수산가공업과 여성 노동의 주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명태가, 북어가, 창난젓갈이, 명란젓갈이 식탁 위에 놓일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여성 노동자의 수산가공 노동 덕분이다. 수산가공물의 기계화와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 노동자의 손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수산가공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근무 연차가 매우 길고, 그들이 수산물을 가공하는 다양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재 여러 지자체에서 수산가공품을 특화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들 여성 노동자를 자산으로 삼을 방도는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바다에 명태가 돌아올 때쯤에는 그들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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