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을 넘어 ‘공공’으로
  • 엄기호 (문화 연구자)
  • 호수 629
  • 승인 2019.10.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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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그림

이른바 ‘조국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기에 나경원 의원의 아들 문제까지 겹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득권층의 특권의식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며 실망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교육과 입시 문제이기에 반감이 더욱 크다. 교육과 입시는 계층 이동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무슨 논문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고등학생도 우수한 논문을 쓸 수 있다. 우수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잘 갖추어진 실험실과 그 실험을 함께 수행할 우수한 ‘동료’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실험 과정과 결과를 함께 모니터링하며 조언하고 지도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이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그 통로를 일부 기득권층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한 축이다.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 더 잘못했는가 하는 문제도 아니다. 합법이건 불법이건, 그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기득권층이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폐쇄적으로 촘촘하게 활용하고 있다(바로 이 점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만 문제 삼는 것에 반대한다).

이 문제를 배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차원이 보인다. 탐구와 연구는 배움에 이르는 가장 좋은 길이다. 누구에게나 권장되어야 한다. 탐구와 연구로 흥미를 지속시키고 실제적 역량을 쌓고 질문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움의 관점에서 보면 공정성이 아니라 배움의 통로가 가진 공공성이 문제가 된다.

고등학생도(아니 초등학생에서부터 일반인까지) 탐구와 연구를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성과를 내건 안 내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는 게 교육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자기가 연구하고 싶은 아이디어나 주제가 과연 연구할 만한지, 또한 어떻게 연구를 설계할지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공성이다.

임윤희 나무연필 출판사 대표가 쓴 <도서관 여행하는 법>은 바로 이 탐구와 연구의 공공성에 대한 책이다. ‘도서관 덕후’답게 저자는 도서관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탐구와 연구의 통로여야 한다는 점을 세계 여러 나라 도서관 사례를 들어 강조한다.

왜 도서관인가? 탐구와 연구를 지속하고 현실화하는 데 ‘조언(reference)’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내 탐구와 연구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이 수준에서는 어디를 가야 하고 누구를 만나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조언의 역할이다. 도서관은 자신이 참고할 지점을 같이 찾고 알려주며 사람들에게 배움을 지속시킨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도서관에서 참고봉사 데스크(reference desk)가 이 구실을 한다. 안내 데스크와 달리 별도로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길을 찾아주려고 사서가 대기하고 있다. 책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 뿐 아니라 질문자를 환대하고 그 질문의 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도서관은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계속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환대하는 곳이다.

‘배웅의 통로’로서 도서관의 존재

저자는 몸소 그 경험을 한다. 미국에 있는 저자의 조카가 집 뒤뜰에서 노란 열매를 발견한다. 이 열매가 무엇인가를 두고 조카는 가족들과 갑론을박한다. 그 정체를 알기 위해 자기가 갈 곳이 어디인지 스스로 말한다. “도서관에 가서 물어보면 돼요!” 저자는 조카와 함께 열매를 싸서 동네 도서관으로 간다. 사서들이 모이고, 도서관 이용자들도 모여 함께 논의한다. 식물도감도 찾아오고 동네 화원들 약도도 건네준다. 이렇게 어디를 참조해야 하는지 그 길을 알려준다.

도서관에서는 초등학생 수준의 궁금증에 국한되지 않고 더 전문적인 연구로 나아가도록 길을 안내받을 수도 있다. 이 또한 저자 스스로의 경험이다. 저자는 도시 농업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들렀을 때 그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도시 농업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근처 대학 도서관에 메일을 보냈다.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돌아온 답은 A4 용지 석 장이 넘었다고 한다.

사서는 저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개괄적인 정보가 필요한지 아니면 정책 자료가 필요한지 물었다. 구체적인 관심사와 도서관 방문 일정을 알려주면 적절한 자료를 갈무리해놓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서의 질문에 저자는 자기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 자신의 앎이 어느 수준인지 배우게 된다. 자신의 앎에 대한 앎에 도달한다. 이보다 더 나은 배움이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도서관에 도움을 청하면 “최소한 공부의 어떤 문턱까지는 넘어서게” 한다고 말한다. 실제 중요한 연구로 이어지고 인류를 위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로렌조 오일’의 사례처럼 말이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의약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탐구와 연구를 시작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이런 통로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할 때 그 ‘모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책에서는 여기에 대해서도 저자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모두에는 제한이 없어야 하고 노숙인에게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도서관의 신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공공도서관은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도서관 내부에 샤워시설을 마련했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노숙인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항의하면 그 노숙인에게 샤워를 권한다. 노숙인들도 엄연한 도서관 이용자이며 도서관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탐구와 연구의 통로라는 원칙에 비타협적이다.

‘모두’에는 잠시 잠깐 들르는 여행자도 포함된다. 홋카이도 대학의 사례가 그렇다. 저자는 아무런 준비 없이 홋카이도 대학 도서관을 방문한다. 한국이라면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겠지만 서고까지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도서관 안내 유인물을 훑어보고 있을 때 관계자가 접근했다.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저자에게 한국어 안내문을 건넸다고 한다. 또한 도서관 이용증을 발급받겠느냐고 물어보고 간략하게 등록한 뒤 책까지 대출해주었다고 한다. 여행자에게도 열려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나는 입시의 공정함만큼이나 배움의 공공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탐구와 연구로 배움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을 참고해야 하는지 조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통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공공성의 핵심은 바로 이 무차별성에 있다. 특권과 적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대척점이다. 조국 사태가 공정을 넘어 한국 사회 배움의 공공적 통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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