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질문 기발한 대답
  •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 호수 629
  • 승인 2019.10.1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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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나는 날> 미로코 마치코 지음, 유문조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바람은 왜 이렇게 세차게 불까? 천둥은 왜 칠까? 시간은 어떤 때 빨리 가고 어떤 때 한없이 느리게 갈까? 밤은 어떻게 오는 걸까? 나는 왜 잠들지 못할까?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치게 되는 의문은 끝이 없다. 자연현상, 나의 감정과 감각, 인간관계 등 종류도 한이 없다. 우리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얻을까? 그 답은 만족할 만할까? 아니, 최근 뭔가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나? 다시 의문이 솟는다.

의문이 생기는 것은 건강한 생명현상이다. 세상을 파악하여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잡게 만드는 삶의 방향타이다. 의문이 없어지면 성장이 그치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왜요?’ 폭탄을 던져 어른을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한다. 토니 로스의 그림책 <왜요?>를 보면 심지어 외계인까지도 항복시켜 지구를 구한다! 아이들의 의문은 힘차게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만 묻고 시키는 대로 해’ 하면 안 된다.

내놓는 책마다 상 휩쓰는 미로코 마치코

 

아이들 의문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스스로 대답하게 해보자. 그 입에서 나오는 기발하고 절묘한 말은 어른들에게도 놀라운 개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바람이 휭휭 세차게 부는 이유는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단언처럼.

내놓는 책마다 상을 휩쓰는 일본의 신진 작가 미로코 마치코의 첫 책 <늑대가 나는 날>에는 이런 기발한 대답이 대담하고 역동적인 그림에 실려 있다. 시간이 빨리 갔다 늦게 갔다 하는 것은 다람쥐나 거북이들이 시곗바늘을 돌리기 때문이고, 책이 자꾸 없어지는 건 박쥐들이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박쥐들이! 노래가 잘 되는 이유는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가기 때문이고,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순록이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란다. 세상을 파악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아이의 눈은 하늘 높은 곳과 바다 깊은 곳까지 뻗쳐 있다. 조그만 다람쥐에서 거대한 고래까지 각양각색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 멋지지 않은가! 머리에 고슴도치를 얹은 아이의 입에서 새가 날아 나오고, 책을 움켜쥔 박쥐가 하늘을 날고, 꼬리깃을 활짝 펼친 공작이 고래의 등에 올라앉아 “커다랗고 커다란 밤”을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이라니.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데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시간이 빠르고 느리게 가는 이유도 과학이 설명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과학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 이런 기발한 상상력, 거침없는 표현력으로 발현되는 자유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왜 그런지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이 가슴 뭉클하게 설명해준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다스리려면, 나쁜 의미의 지배가 아니라 건강한 의미의 자기 질서, 자기 통제력을 갖추려면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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