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수능이 50여 일 남았다. 내가 가르치는 재수생들은 점점 기대치를 낮춰가는 중이다. 피 말리며 보낸 지난 1년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에 열심히 안 살아서 이 꼴로 산다”라고 자조하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불평할 거리가 수없이 많은 이 제도를 두고 학생이 “제 능력이 부족하다”라며 노력이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담담히 수용할 때, 나는 계속 미안해진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단지 열심히 공부하는 노력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말은 일면 달콤하다. 학생들의 학습 수준은 일정 목표가 달성되어야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교육 이론을 자주 체감한다. 각자가 쌓아온 학습 역량은 어떤 교육 환경에 노출되어 왔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 12년간 누적된 격차는 이미 상당하다. 노력하면 개선되지만, 어떤 학생들에게는 단 1년 만에 이 격차를 뛰어넘기가 어렵다. 이른바 ‘교육특구’에서 자라 수많은 학원 강사와 과외 교사를 통해 수능 기술을 켜켜이 쌓아온 학생과 평소 교과서 한번 들춰보지 않다가 재수 생활을 하며 비로소 공부를 시작한 학생의 격차는 겨우 1년으로 해결될 수 없다. 게다가 오랫동안 쌓아온 학습 태도, 그 기간을 받쳐줄 체력과 주변에서 부여하는 학습 동기마저 천차만별이다.

물론 이들은 재수가 하고 싶어도 경제적 형편 등의 이유로 하지 못하는 수많은 학생들에 비해서는 출발선이 앞서 있다고 봐야 한다. 아무 때나 교무실로 찾아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량과 학습법을 점검받고, 학습 동기가 떨어질 때 자신을 다시 책상에 앉혀놓을 환경 속에 있으니 말이다. 지난 시간이 만든 격차가 본인의 나태함 때문이든, 가정환경 탓이든, 양질의 수업을 받지 못한 탓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재수 학원에서 조금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재도전의 기회 자체가 이들의 환경이 만들어준 격차일 것이다.

재수 생활이라는 1년만 놓고 봐도 이 학생들의 출발선은 제각각이다. 딱 한 번 주어진 재수 기회로 마음이 조급한 아이들도 있고 삼수, 사수까지 할 요량으로 느긋한 아이들도 있다. 재도전 혹은 재재도전이 가능한가 여부도 순전히 허락된 시간과 비용, 즉 속한 가정의 경제적·사회적 위치에 달려 있다.

시험 결과만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함정’

1년 재수하는 데 최소 2000만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 학원생들은 아마 계급 피라미드에서 상층에 가까운 이들일 것이다. 말 그대로 ‘공부만’ 하면 되는 속 편한 아이들조차 투입 자원으로 인한 계급 격차를 느낀다. “내가 아는 ○○는 안 될 것 같으니까 부모님이 아예 유학 보내버렸어. 돈 많아서 좋겠다”라며 부러워한다.

노력을 뒷받침해주는 환경은 오랫동안 계급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애초 서열화한 학벌 체제에서 공정한 노력이란 존재할 수가 없건만, 노력이 결과를 담보한다는 환상은 늘 이 문제를 지워왔다. 최상층이 아니면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출발점에 대한 고려 없이 시험 결과만으로 인재를 평가하는 방식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십 대의 전부를 입시 전쟁에 쏟아넣으며 학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학생들에게 굳이 계급의 혜택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이 아이들 또한 당장은 살아남기도 벅찬 처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벌 사회에 잘 안착한 후 언젠가는 이들도 학벌이라는 유리 바닥 아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격차가 단지 한 개인의 노력 부족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노력은 공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헤아리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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