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까닭
  •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호수 629
  • 승인 2019.10.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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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어느 날 밤늦게 대학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멀리 남쪽 바닷가에 사는, 한 대학병원의 내과 교수였다. “제 환자가 중피종인데, 조선소에서 일했대요. 산재 신청 안내를 해도 될까요?” 중환자 치료만 하는 것으로도 바쁠 텐데, 직업성 호흡기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환자의 직업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이번에는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천식이 포름알데히드 취급과 관련성이 있을 것인가, 산재 신청 안내를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포름알데히드는 냄새를 맡는 등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 작업자에게 천식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다. 천식은 기관지가 과민해져서 자극 요인에 노출되면 좁아져 기침을 하는 병이다. 약물치료로 잘 조절된다. 유발 작업을 회피하는 게 중요한 치료이지만, 불가피하게 그 작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흔하다.

직업성 천식, 산재 신청 드물어

산재 신청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있다. 직업성 천식을 입증하려면 더 위험하거나 복잡한 검사를 해야 한다. 어렵게 승인을 받더라도, 휴업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다. 산재 신청 결과 의료비에 대한 요양급여만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천식에 대한 산재 신청은 드물다. 국내 산재통계에서 직업성 천식은 따로 분류하고 있지 않고, 2017년에 대표적인 천식 유발 물질에 의한 산재가 두 건 있는 정도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필요한 서류를 다 챙겨서 산재 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업성 천식은 그 까다로운 산재 신청 절차를 감당할 만한 이유가 아닐 수 있다. 그렇게 직업성 천식은 보고되지 않고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된다.

지난해 특수건강진단을 하면서도 직업성 천식 의심 사례가 있었다. 특수건강진단은 유해 작업 종사자가 받는 검진이다. 유해 작업에 의해 직업병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지 파악하고, 직업병 예방을 위해 작업 전환과 같은 근무상 조치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몇 년간 하루 반나절 정도를 저농도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되었다고 했다. 그가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기 한 달 전에 천식 증상이 발생해서 투약 중이었다. 작업 전환을 검토했으나 환자가 좀 더 생각해보고 싶다고 하여 경과 관찰을 하기로 했다. 사업주는 작업 공간의 환기를 개선하고 포름알데히드 노출을 조금 막을 수 있는 실험용 마스크를 지급했다. 1년이 지나서 다시 왔을 때, 증상이 악화되어 작업 전환을 권고했다.

천식 환자를 접하면 떠오르곤 하는 청년이 있다. 오래전 기침과 호흡곤란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직업성 천식이 의심되어 우리 과로 의뢰되었다. 소규모 샌드위치 패널 제작회사에서 MDI라는 대표적인 천식 유발 물질에 노출되었다. 환자에게 만일 작업 전환에 대한 근거 서류가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가 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그간 다른 작업을 하면서 잘 지냈는데, 상급자가 바뀌고 해당 작업자가 퇴사하면서 다시 그 작업에 배치되어 다툼이 생겨 홧김에 퇴사했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때 업무적합성 평가서라도 써주었더라면 결과가 더 나았을까?

직업성 천식 환자를 여러 명 만났지만 그중에 산재 신청을 한 사람은 없었다. 직업성 천식 환자를 공식 통계에서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참고로 2017년에 직업병은 3054건, 대부분이 소음성 난청과 진폐증이다. 화학적 유해인자 관련 직업병은 136건이었다.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직업병 예방을 위한 대표적 제도인 특수건강진단과 작업환경 측정에 대한 개선은 거의 없었다. 이 제도의 개선에 대해 현장 전문가와 학계는 꾸준히 의견을 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소관 부서에서 일하는 공무원들로부터 직업병 수가 매우 적어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직업병은 보이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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