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미’로 불린다. 영어로 A.R.M.Y.(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인데, ‘청춘의 사랑스러운 대변자’라는 의미다. 이지영 세종대 교수(대양 휴머니티칼리지)는 전 세계 아미들에게 자신들의 대변자로 불린다. 8월26~28일 사흘간 열린 ‘BTS 인사이트 포럼’에서 기조 발제를 했던 이 교수는 내년 1월4~5일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 관련 학제 간 연구 콘퍼런스(BTS A Global Interdisciplinary Conference)에서도 기조 발제를 할 예정이다. 영화철학 연구 논문을 주로 쓰던 철학자는 어떻게 해서 아미의 대변자가 되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철학자가 대중가수 팬클럽의 대변자 구실을 하는 것이 이채롭다.
철학은 만학의 왕이라는 말을 한다. 어떤 분야에든 철학은 할 말이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면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살지 않고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실천적 학문으로서 철학이 의미 있게 쓰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미들에게 본인이 경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밝혀주는 것 또한 철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대중가수를 연구의 주제로 삼는 것이 자칫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방송에 출연하는 게 겁은 난다. 그런데 아미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나가서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나가서 우리를 대변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전까지 여성 팬덤은 무시의 대상이었다. 아미의 팬덤이 ‘어리고 철없는 여자애들의 문화’를 넘어섰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아미에게 방탄소년단은 어떤 의미인가?
아미는 방탄소년단을 그냥 좋아한다고 하기보다 ‘지지를 보낸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스템에 순치된 캐릭터가 아니다.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캐릭터다. 이것은 음악적 진정성과 연결된다. 그들의 노래에 나오는 사회 비판 메시지가 진지하면서도 자기성찰적인 이유다.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된 과정을 SNS를 통해 팬들이 지켜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을 더욱 신뢰한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적 인기를 얻는 데 아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메이저 기획사가 아닌 마이너 기획사였다. 메이저 출신이 아니라서 곧 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마케팅 노하우 그리고 미디어의 친화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곡이라서 방송에 제외된 적도 부지기수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대안으로 유튜브와 SNS를 적극 활용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서 업로드했다. 열심히 하고 실력도 있는데 방송에 안 나온다는 것, 팬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어떤 인성을 가졌는지 SNS를 통해 지켜봤다. ‘방송에서 못 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그럼 우리가 알리자’며 속상해했던 팬들이 직접 나서서 전 세계 음반 판매량 1위를 만들어냈다.
아미가 다른 팬클럽과는 다르다고 한다. 무엇이 다른가.
방탄소년단이 팬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 선한 힘을 주변에 나누자, 긍정성을 퍼뜨리자, 현실에서 함께 만들어내자며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지지하는 아미라면 우리가 받은 선한 영향과 긍정성을 이 세상에 퍼뜨리자는 생각을 공유한다. 그래서 홍보와 번역 계정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메시지를 동시에 번역해서 확산시킨다. 그런 재능과 의지를 바탕으로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구현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축전을 보낼 때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날개, 아미’라는 표현을 했는데 적확한 것 같다. 그 날개는 단순히 높이 멀리 날게 하자는 게 아니라 메시지와 희망을 현실에서 함께 만드는 동반자이자 조력자라는 의미다. 힘든 순간에 방탄소년단을 만나 마음과 삶이 변했다는 수많은 팬을 접했다.
미국 아미들이 주류 음악시장의 편견을 깨뜨리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들었다.
그들은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 서부·중부·동부로 나뉘어 있고 50개 주에 지부가 있다. 이들이 초기에 한 것은 온라인과 전화로 라디오 신청곡을 보내는 일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텔레마케터가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로 노래를 한다고?”라며 대부분 황당해했다. “제대로 된 노래를 신청하면 틀어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아미(BTS×50states)들은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방탄소년단을 모른다고 할 때, 방탄소년단이 싫다고 할 때, 노래를 틀어준다고 할 때’의 대응 매뉴얼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2017년 가을부터 서서히 라디오 방송에 방탄소년단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청곡을 틀어주던 DJ가 방송을 떠날 때 꽃다발 감사 카드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국 팬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2018년 1월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리기 위한 1년 플랜이 발표됐는데, 7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성공했다. 새로 팬이 된 사람을 위한 신병훈련소(boot camp)도 있다. 10일짜리 훈련 과정인데, 방탄소년단을 위해 돈을 쓸 때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쓰면 효과적인지 매뉴얼도 제공한다.
MTV VMA(Video Music Awards)에서 방탄소년단과 관련해 인종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와의 대결이 계속 있었다. 미디어는 계속 교섭의 대상이거나 대항의 대상이거나 극복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대상이었다. ‘영어를 쓰지 않는, 한국에서 온 가수’에게 미국 주류 음악계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려 했다. 방송계도 마찬가지였다. 방탄소년단이 상을 휩쓸 것이 예상되자 MTV VMA 측은 ‘베스트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시상 분야를 만들었다. 본상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케이팝 버전의 ‘짐크로 법(흑인분리 법)’이라는, 인종차별이자 외국인 혐오행태라는 논란이 일었다.
아미가 방탄소년단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아미는 팬덤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여러 사례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방탄소년단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과 그 흐름을 이해하는 길이다. 영어가 아닌 언어에 대한 차별은 음악시장에만 아니라 실제 세계에도 존재하는 차별이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영어가 아니면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음악시장에서 성과를 이루었다. 영어 중심, 백인 중심, 서구인 중심의 사고에 금이 가게 했다. 미국에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다.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이는 정서가 우리와 닮아 있다. 다보스 포럼(세계경제 포럼)에서 방탄소년단이 언급됐는데 ‘미국 중심의 문화 세계화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방탄소년단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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