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을 키워준 돌봄의 힘
  • 임지영 기자
  • 호수 628
  • 승인 2019.10.0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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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인문학 수업>은 돌봄의 기쁨과 고충을 이야기한다. 저자 김희진씨는 돌봄을 통해 타자에 대한 겸손과 환대를, 약자에 대한 존중의 감수성을 익혔다.
ⓒ김흥구김희진 반비출판사 편집장은 돌봄의 기쁨과 고충을 알리는 <돌봄 인문학 수업>을 펴냈다.

여덟 살 딸아이가 엄마의 책을 읽었다. “다 내 얘기잖아.” 모르는 단어를 아빠에게 물어가며 재밌어했다. 틀린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벌레 공장이 아니라 벌레 창고라고 했어.” 자기가 한 말이라 기억이 정확했다. ‘눈 밝은’ 최연소 독자다. 김희진 반비출판사 편집장은 서른여덟에 아이를 낳았다. 한국 사회에서 ‘늦깎이 워킹맘’으로 사는 건 피곤하고 구질구질한 일이지만 돌봄의 기쁨과 고충을 알리기로 했다. 일과 돌봄이 양립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좋은 학생, 좋은 편집자, 좋은 시민이 되고 싶었던 적은 있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보다 고차원적인 가치라고 배웠고 한국 사회에서 가족제도는 개혁되어야 할 구악이라고 생각했다. 야근과 철야를 거듭하며 겨울 내내 아이가 아프다며 늦게 출근하는 워킹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적도 있다.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것은 확실했다. 낳기만 하면 본인이 키우겠다던 남편은 3일의 출산휴가와 주말을 지낸 뒤 월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출근하는 남편의 뒤통수가 충격적이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태어난 아기가 지나치게 사랑스럽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전향자의 열정’이 시작됐다. 아이는 예쁜데 돌보는 일은 너무 힘들어서 그 불균형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힘들 땐 ‘쓰는 사람’이 된다”는 김 편집장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육아일기를 썼다. 다른 워킹맘과 꾸린 ‘돌봄+인문학 독서모임’을 취재한 육아 잡지에서 그에게 연재를 제안해왔다. 스스로도 그간 다뤄온 인문학 책과 돌봄의 접점을 만들고 통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 좋아하는데 양립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남자 동료들이 하나둘 육아휴직을 하던 시기였다. 아빠들은 6개월만 휴직해도 그걸 가지고 책을 쓰던데, 엄마들을 만나면 주옥같은 경험이 쏟아져도 그 안에서 공유되고 끝이었다. 기록하고 싶었다. <돌봄 인문학 수업>이 그렇게 나왔다.

그에게 출산은 전선을 넘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강했다. 부모를 원망했다. 어른은 ‘나쁜 존재’이고 줄곧 ‘아이의 편’이었는데 적진인 양육자로 넘어가는 게 어려웠다. 가족이라는 사적인 이슈와 무관하게 공동체, 공적인 가치에 관심을 갖고 살았다. 아이를 키우며 유년기가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를 기억하고 글을 쓰며 비로소 그 시절의 부모와 화해하기도 했다.

ⓒ김흥구

환자, 노인, 동물로 확대되는 보편적 과제

아이를 낳기 전에 예상했던 문제점은 그대로 들어맞았는데 긍정적인 부분은 예측을 못했다. ‘돌봄의 과정에서 얻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통찰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전에는 주위를 둘러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주로 일의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했다. 논리적 설명을 알아듣지 못하면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출판계에 비슷한 기질의 ‘사고형’ 인간이 많다. 요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기능을 발휘하며 자기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두 누군가에게 귀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양육을 통해 타자에 대해서는 겸손과 환대를, 약한 존재를 향해서는 ‘존중의 감수성’을 익혔다.

책에는 22개월간의 모유수유, 리얼리즘 계열의 악몽을 꾸는 엄마들, <양육가설>에 대한 적극적인 독해, ‘여성화’하는 현대의 교육 등 아이가 커가며 경험하고 성찰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개인의 체험이 담겼지만 그 이상의 인문학적 사유가 녹아 있다.

보조 양육자에 대한 단상이 눈에 띈다. 출산휴가밖에 쓰지 못한 김 편집장은 ‘시터’들의 도움을 받았다. 자신을 포함한 엄마들과 보조 양육자 간 불신의 골이 깊다는 걸 실감했다. 많은 엄마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보기엔 아이를 키우는 책임이 최종적으로 엄마에게 있다는 감각이 강해서인 것 같다. 그런 부담이 양육을 보조하는 이들을 불신하는 풍조와 연결된다는 생각이다. “젊은 부모를 보며 세대차를 느끼기도 하는데 나도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지만 강도의 차원이 다르다. 그들이 문제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사회 전체의 불신과 불안이 굉장히 높은 수위에 와 있다. 아이를 보호해야 하니까 그게 더 커졌고 돌봄 노동에 교육, 살림, 외모 관리, 재테크까지 더해져 잘한다는 기준이 예전에 비해 가혹해졌다.”

김희진 편집장은 줄곧 공적 자아가 비대했고 사적 자아가 왜소한 삶을 살아왔다. 인간이 수천 년간 해온, 밥 먹이고 애 키우는 노동이 자신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뒤 그 불균형을 절실하게 깨닫고 균형을 맞춰나가는 중이다. 그 균형이 곧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목표 중 하나도 돌봄이 인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일이라는 걸 설득하는 데 있었다. 특히 돌봄과 일을 양립하는 건 집중력과 분산력 사이 균형을 키우는 일이고 그게 사람의 성장에도 필요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번엔 양육자와 비양육자의 경계에서 번역하는 심정으로 썼다. 앞으로도 본인같이 ‘서툰 손’에 아이들이 맡겨질 확률이 높다. 양육자끼리만 경험을 나누고 치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돌봄은 환자, 노인, 동물에까지 확대돼 더 보편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모든 어른에게는 ‘지켜주고 싶고 그러지 못해 미안한 아이의 이미지’가 있다고 김 편집장은 생각한다. ‘노키즈존(No Kids Zone)’ 같은 이슈가 나올 때 특히 젊은 층이 자기 일처럼 아이들 처지를 대변해줄 때가 있다. 보편적인 약자로서 아이 때의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인권에 대한 감각이 있는데 그게 훼손되었을 때의 상처가 어른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주변 상황이 달라졌다. 일을 그만둔 엄마들이 양육을 일처럼 하려고 했다. 의외였다. 어릴 때는 다 같은 마음이었는데 충격을 받기도 했다.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라는 생각에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아이를 가졌을 때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건강한 책임감이 변질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돌봄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낙관적이다. 불완전한 부모가 아이를 망치기는 매우 어렵다는 걸 알고, 잘하려고 할 때보다 아이가 하도록 두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희진 편집장은 ‘육아 능력시험’이 있다면 낙제점을 간신히 면할 수준이라고 말한다. 가장 못하는 일이 육아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어느 날의 육아일기에는 평생 동안 잘 못했던 리스트를 적었다. 몸으로 하는 달리기와 악기가 대표적이다. 첼로 배우는 데 열정이 있었는데 너무 못해서 가르치는 사람이 화를 냈다. 잘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돌봄은 못할 줄 알았지만 잘하고 싶었다. 20여 년 차 인문서 편집자의 경험을 보탰고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이 만나 제3의 결과를 냈다. 저자로서의 첫 책을 앞에 두고도 반비출판사의 책을 언급했다. 최근 너무 좋은 책을 냈는데 ‘우리끼리’만 좋은 것 같다고 침울했다가 그게 또 어디냐고 금세 낙관하는 데서 돌봄에 대한 그의 태도가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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