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쓰시마섬)는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와 거리가 더 가까운 섬이다. 규슈까지는 82㎞이지만 부산까지 거리는 50㎞가 채 안 된다. 날씨가 좋을 때면 부산에서 육안으로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부산항에서 불꽃놀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대마도에서 폭죽 불빛에 비친 광안대교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아예 ‘한국 전망대’라는 망루까지 세워 관광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한국에서 가깝다 보니 한국 관광객이 많고 지역경제 상당 부분도 그에 의존한다. 대마도는 최근 일본 불매운동의 성패 여부를 가름하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물론 애초에 빌미를 제공한 건 공공연히 차별의식을 드러내며 한국인을 홀대하는 일부 상인들이었다. ‘가게가 협소해 한국인은 받지 않습니다’라든지, ‘Japanese Only(일본인만 오세요)’라고 써 붙인 이미지가 SNS를 타고 문전박대하는 대마도의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했다. 지난 8월 한 달 한국 관광객 수는 작년 8월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고, 130여 대에 달하는 도내 버스 기사들 중 대부분이 실직 상태라고 한다.
대마도는 조·일 관계 정상화 ‘주역’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지난 8월4일 대마도 관문 이즈하라 항구에서는 ‘조선 통신사 한·일 문화교류’ 행사가 예정대로 열렸다. 대마도는 부산항을 출발해 현재 도쿄에 해당하는 에도(江戶)로 향하던 조선 통신사가 처음으로 당도하는 일본 영토였다. 조선시대 항해술로도 날씨만 좋으면 출항 당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통신사는 이곳에서 한 달을 체류하며 일종의 현지 적응 기간을 가진 뒤에 규슈를 거쳐 일본 본토로 향했다. 통신사가 조선의 국서를 들고 와 대마도주에게 전달하는 옛 모습을 재현하는 ‘조선 통신사 행렬’이 행사의 클라이맥스인데,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 탓에 취소 위기까지 몰렸다. 민간 문화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부산시와 쓰시마 시민들의 의지 덕분에 행사는 무사히 치러졌다.
조선 통신사는 조선의 조정에서 일본에 파견하던 500명 규모의 사절단을 이르는 말이다. 대마도 사람들에게는, 이 통신사 행렬이야말로 일본 본토와 조선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절의 기억이기도 하다. 중앙에 새 막부가 들어서면, 대마도주가 조선 조정에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다. 조선시대 세종 때 왜구 소탕을 위한 대대적인 대마도 정벌이 이뤄진 이래, 대마도주는 조선 국왕의 신하이자 일본 막부 체제의 다이묘(지방 영주)라는 이중적인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땅의 넓이에 비해 산지가 많아 농업으로 먹고살기 힘들었던 대마도 사람들로서는 양국의 경계에서 무역을 중개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전략이었다. 이런 위치였기에, 때로는 막부의 안하무인 격인 외교 메시지를 조선에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또 조선 통신사의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주느라 어려움을 감내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일 양국이 통신사 파견을 위한 문서를 서로 먼저 보내라고 다툴 때, 대마도주가 공문서를 위조하는 모험을 감수해가며 조·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주역을 담당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세력 간 힘겨루기의 한복판에서 겪어야 했던 대마도 수난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마도의 주력 산업인, 한국인 상대 관광업이 거의 궤멸 직전의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을 내세우는 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여행자들이 자신의 방문지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저지른 일들의 후과가 아닌지도 성찰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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