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여름 감기 끝에 왼쪽 귀가 먹먹해지더니 소리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 간단한 문진을 마쳤다. 기구를 준비하는 의사를 보며 ‘귀를 들여다보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한 손이 내 턱을 잡더니 다른 손으로 쥔 내시경이 내 콧구멍 속으로 쑥 들어왔다. 순간 펄쩍 뛰어오르고 싶었지만 온몸이 얼어붙고 힘이 들어가 의사가 더 기구를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자, 힘 좀 빼볼게요. 옳지 잘한다, 착하다.”

내 코 안에 금속을 집어넣고 있는 사람에게 차마 아무 말도 못하고 결국 마취와 재검까지 받는 동안 ‘착하다’라는 말이 소화가 되지 않았다. 약을 받아 나오면서야 겨우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콧구멍에 비경을 넣는 거나 질에 질경을 넣는 거나 불편한 건 마찬가지인데 왜 여성들은 산부인과 검사를 싫어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예고 없이 쑥 들어오거나 힘 빼라고 윽박지르는 식의 열등한 존재 취급이 싫은 거구나.

최소 2년에 한 번은 검진해야

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질 안에 손가락·탐폰· 생리컵·성기 등을 넣어본 사람이라면 최소 2년(권장 1년)에 한 번 검진이 요구된다. 검진은 증상이 없을 때 체크하기 위해 받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내진(질경 검사), 자궁경부암 세포진 검사를 하게 된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증상이 있을 때는 당연히 진료를 받아야 한다. 본인의 경험도와 불편도에 따라 내진이나 질초음파는 생략될 수 있고 복부초음파나 초소형 질경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검사가 두려워 병원 방문을 피하지는 말자.

질경 검사는 산부인과 검진의 기본적인 검사 중 하나다. 오리주둥이처럼 생긴 기구를 질 내에 삽입하고 그 주둥이를 약간 벌리면 의사가 질 내부와 자궁경부(자궁 입구)를 관찰할 수 있다. 쉽게 들어가게 하기 위해 생리식염수나 젤을 묻히는데, 바쁜 진료실이나 검진센터에서는 충분히 윤활을 못하고 빨리 진행되는 경우가 있어 아플 수 있다. 처음인지, 이전의 검사는 어땠는지 충분히 말하고, 윤활제를 써달라고 요구하자. 완경 이후 질 건조 때문에도 불편감과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 차갑고 신경을 긁는 금속음을 내는 스테인리스 질경 대신에 일회용 플라스틱 질경이 좀 덜 불편하다. 전에는 1만원 정도 추가금액을 내면 일회용을 쓸 수 있었지만, 원가는 400원 남짓이었다. 2018년 8월부터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므로 일회용 질경을 쓰고 있는 병원인지 미리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알고 말하자. “자궁이 간지러워요” “소중이가 따가워요” 같은 언어는 시간과 감정만 소모한다. 거울로 외음부를 한번 관찰해보자.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고, 한 번도 배운 적 없다면, 〈질의응답-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지음, 2019)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당신의 외음과 엉덩이가 의사의 눈앞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다리가 오므려지고 기어 올라가고 싶지만,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 의사는 그곳을 보라고 월급을 받는 사람이다. 정말 어색할 것 같으면 간호사 등 여성 의료 보조인력을 요청하거나 여성 의사를 찾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젠더 감수성과 생물학적 성별이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가까이 있고 궁합이 맞는 의료인이 최고다. 진료에 대해서, 치료 경과에 대해서 의사에게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잘 안 낫는다거나 불쾌했다고 다시 안 가게 되면 환자뿐 아니라 의사에게도 좋지 않다. 처방 효과를 알지 못한 의사는 발전할 수 없다. 만일 의료진한테 위해를 받거나 심각한 권리침해를 받은 경우에는 관할 보건소에 제보하는 방법도 있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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