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김경수 경남도지사(사진)는 “제2 메가시티는 수도권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더불어민주당)가 재미있는 구상을 다듬는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 7월이었다. ‘부산을 축으로 하는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이라는데, 질문이 당장 꼬리를 물었다.

첫째, 부산이라니? 경남지사가 왜? 그러고 보니 김 지사는 꾸준히 “김해공항 확장 계획을 재검증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었다. 부산·울산과 보조를 맞춰, 사실상 부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염두에 둔 얘기다. 두 번째가 더 궁금했다. 메가시티라니? 균형발전은 어디 가고 대도시 집중 전략이 나왔지? 균형발전은 노무현 정부를 상징하는 노선이다. 김 지사는 ‘걸어 다니는 노무현 대통령 기록관’이다. 국정 전반에 걸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상과 정책을 거의 날짜별로 꿰고, 정치가로 나선 이후 노무현 노선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런 김 지사가, 메가시티?

들어봐야겠다 싶었다. 8월10일 서울에서 100분 동안 만났다. 모자랐다. 9월17일 경남도청이 있는 창원에서 한 번 더 만났다.

 

왜 메가시티인가?

엄밀하게는 메가시티(초거대도시)와 메갈로폴리스(광역 거대도시권)도 다른 것이지만, 큰 틀에서 메가시티라고 부르자. 수도권 일극체제로는 다 죽는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도 어려워진다. 청년 문제만 봐도, 지방은 청년이 줄어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고, 서울은 경쟁이 너무 심해져서 청년들이 결혼이고 출산이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교통? 수도권은 인프라가 모자라서 끊임없이 확장해야 하고, 지방은 피폐해진다. 부동산? 수도권 집값은 너무 올라서 문제고, 정작 지방은 미분양 사태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노선도 그 문제의식이었나?

문제의식은 같다. 핵심 전략은 ‘권력 분산’이었다.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는 각각 행정 권력과 경제 권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이었다. 행정수도가 원래 계획대로 됐으면 지금보다 나았으리라 본다. 하다못해 국회는 무조건 같이 가야 했다. 두 번째 핵심축이 혁신도시다. 지역별로 특화한 혁신도시를 두고, 그 혁신도시의 특화 분야와 비슷한 공공기관과 연구소까지 모아서 클러스터 몇 개를 조성해본 시도였다. 이걸 발전시킬 2단계 전략도 잡아뒀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멈췄다.

수도권 중력을 벗어나는 지역 거점 네댓 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특화 발전은 가능하다고 봤다. 혁신도시 중 어디가 클지는 결국 지역의 역량에 달려 있다. 정부가 발전 경로까지 계획해서 집행할 수는 없으니, 핵심 역량을 결집시켜 뭔가 해볼 수 있는 기틀을 정부가 제공하고, 성장은 각 지역의 몫으로 생각했다.

그게 다 메가시티가 될 순 없는데?

인구 5000만명인 나라에서 이미 수도권에만 2500만명이 사는데, 메가시티가 네댓 개 나올 수는 없다. 다만 동남권은 가능성이 있다. 부산·울산·경남권이 800만명, 대구·경북까지 묶을 수 있다면 1300만명이다.

지역별 특화 전략과 메가시티 전략은 다르다. 특화 전략은, 비유하자면 지역별 혁신도시에 서로 다른 씨앗을 심는 모델에 가까웠다. 메가시티 전략은 그게 아니다. 교육과 주거 등 정주 환경, 금속 제조업 등 대규모 고부가가치 산업, 거기에 법률·회계·금융 등 기업 상대 서비스 인프라까지 한 생활권에 모두 갖추겠다는 의미다. 종합 플랫폼으로서 거대도시 하나를 더 만들겠다는 얘기다. 김 지사에게 물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메가시티 전략이 있었나?” 그는 잠시 머뭇거린 후 답했다. “이건 제 가설이다. 지방정부를 운영하면서 균형발전 전략을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다.” 특유의 조심스러운 표현법을 고려하면, 이건 노무현 정부의 구상에는 없던 ‘김경수 오리지널’이라는 말을 돌려 한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년 전인 2002년에 당선했다. 17년 동안 도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가장 큰 차이로, 도시를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었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이용자가 몰릴수록 그것으로 정보 생산자를 끌어들이고, 정보 생산자가 몰릴수록 그것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인다. 이것을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른다. 커질수록, 더 커진다. 플랫폼이 갖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먼저 자리 잡은 플랫폼은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갈수록 벌린다.

특히 21세기형 지식 기반 경제에서 대도시는 플랫폼처럼, 집중될수록 더 많은 자원을 끌어들인다. 지식은 한데 모일수록 증폭하기 때문에, 집중될수록 더 많은 지식 노동자를 끌어들인다. 어느 한 도시가 집중의 ‘임계질량’을 일단 돌파하면, 그때부터는 플랫폼처럼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한다. 서울은 이 플랫폼의 위력을 발휘하는 글로벌 대도시다. 한국의 나머지 지역은 서울의 자장으로 갈수록 빨려 들어간다.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120조원짜리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경북 구미의 구애를 뿌리치고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용인으로 갔다(〈시사IN〉 제601호 ‘서울이 이겼다, 우리도 이겼나’ 기사 참조).

수도권 집중을 법과 제도로 막으면 사람과 돈이 지방으로 내려가 균형발전이 되리라 믿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이 방법이 안 통한다는 걸 안다. 집중의 힘은 하도 강력해서, 단호한 균형발전 정책도 좌초시킬 수 있다. 정부가 정책으로 택한 ‘분산’의 힘이, 대도시의 자생적 ‘집중’의 힘을 넘어서지 못한다. 기존 균형발전 전략으로는 이 숙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메가시티 전략은 그 숙제를 해결할 수 있나?

도시가 플랫폼으로 기능하려면 규모가 필요하다. 그런데 플랫폼이 된 대도시를 그대로 두면 그쪽으로 모든 게 쏠려버린다. 이 둘 사이, 규모의 효과와 역효과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균형을 잡느냐가 관건이다. SK하이닉스처럼 수도권으로 가려는 요구는 계속 커지는데, 다른 지역에 매력 있는 대안을 만들지 못하면 그걸 막을 수가 없다. 균형이 만들어지지 않고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이 힘에 버틸 만한 독자적 발전축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블랙홀 걱정 없이 수도권 규제도 더 풀 수 있다. 이러면 수도권도 과밀은 피하면서 수도권만 할 수 있는 산업을 더 키우는 윈윈이 가능하다. 제2 메가시티는 수도권을 살리는 길도 된다.

ⓒUNIST 제공울산의 연구 중심 대학 유니스트(위)는 산학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학교이다.

기존 특화 전략으로는 발전축 형성이 어렵나?

맹점이 있었다. 지역별 특화 전략을 내걸었더니, 그거 말고 나머지 모든 기능을 수도권이 가져가버렸다. 흔히 백오피스(후방 지원업무)라고 하는, 회계·법률·금융·컨설팅 기능이 다 서울에 있다. 공장은 지방에서 돌려도 결국 본사는 서울로 간다. 하나의 거대 생활권·경제권으로 자생하려면 백오피스 기능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본사들이 홍콩에 많이 있는데, 홍콩 정국이 불안정하니까 이들이 옮겨갈 장소를 물색하려 하고 있다. 이들을 데려오려 해도 종합 서비스 기능을 다 갖춰야 하고, 교육과 주거환경도 잡아야 한다. 중앙에서는 지방이 그걸 왜 다 하려고 욕심을 내느냐 특화를 해라 비판하는데, 그런 비판도 이제는 안 맞는 얘기다.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분산이다. 메가시티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집중이다. 균형발전론에서 벗어날 생각인가?

메가시티 전략도 균형발전론이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다. 균형발전이라는 노선이 ‘분산의 시대’에서 이제 ‘집중과 분산의 시대’로 가는 것이다. 분산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집중은 필요하다. 그래야 진짜 문제인 수도권 과밀을 분산할 수 있다. ‘분산을 위한 집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스키아 사센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도시사회학자다. 판을 거듭하며 꾸준히 읽히는 책 〈사스키아 사센의 세계경제와 도시〉에서 사센은,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는 현 시대에 대도시 집중 현상이 오히려 더 심한 이유를 탐구했다. 글로벌 기업은 세계 곳곳의 공장을 생산기지로 활용한다. 이러면 소재·부품 수급과 생산 공정을 관리하고, 물류에서 판매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능력이 매우 중요해진다. 본사 기능이 커진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 본사들은 금융·회계·법률 등의 전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도시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 즉, 도시가 글로벌 기업 본사에 종합 서비스 기능을 제공할 수 있어야만 글로벌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특화·전문화 도시로는 여기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 꽤 역설적인 결론이 등장한다.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종합 기능을 갖춘 글로벌 대도시가 더 필요하다. 메가시티가 여럿 있을 수는 없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수도권 바깥의 특정 지역을 메가시티로 집중 육성하는 전략이 된다.

ⓒ연합뉴스부산은 종합 서비스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위는 부산 해운대 신도시 모습.

그런데 왜 부산인가?

부산의 혁신도시 주제 중 하나가 금융이다. 종합도시 기능을 이미 어느 정도 갖고 있다. 물류 중심지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철도가 연결되면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물류 허브가 부산이다. 그래서 공항 문제가 합리적으로 풀리는 게 중요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해운 산업을 살리지 않은 것은 참 황당한 결정이었다. 부산은 항공·철도·해운을 연결시키는 거점이 될 수 있다. 고급 인재들이 와서 살게 하려면 주거 요건과 교육환경이 중요한데, 부산은 경쟁력이 있다.

부산을 천만 도시로 키우자는 뜻인가?

아니다. 그렇게 들을 수 있어서 메가시티라는 용어를 쓰기가 조심스럽다. 부산에다가 울산과 경남까지 엮어서 동남권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자는 얘기다. 쉽게 말해 전철 타고 오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기차 말고 전철. 이것만 해도 800만명 대도시권이다. 경제권으로 보면 대구·경북까지 한 묶음으로 가야 한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한 시간 걸리는데, 이 정도면 수도권에서는 단일 권역으로 보는 거리다. 이러면 1300만명 경제권이다. 영남권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면서 물류의 시너지 효과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신공항 문제도 풀린다. 지금은 그런 그림이 없으니까 신공항 문제가 지역 갈등으로 간다.

생활권을 엮으려면 뭐가 필요한가?

메가시티 전략의 핵심은 공간의 압축이다. 수도권이 갈수록 넓어진다고 하지만, 사실 그건 교통 인프라를 깔아서 공간을 계속 압축한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강남으로, 강남에서 분당으로, 용인으로, 광교로 계속 생활권이 넓어졌다. 요즘은 천안까지 간다. 이런 공간 압축에 국가가 투자해야 한다. 수도권의 교통 인프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국비가 들어가는데 지방에 광역전철망 깔자고 하면 지방정부 돈으로 하라고 한다. 투자로 보지 않고 낭비로 보는 것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면 당연히 같은 생활권으로 보고 투자한다. 그런 투자가 지방에도 있어야 균형발전이 작동한다. 균형발전도 정부의 중요한 가치이므로 예산을 투입할 이유가 당연히 있다.

전철만 깐다고 경쟁력이 생길까?

여기는 기초체력이 있는 곳이다. 울산·경남은 한국 제조업의 기반이다. 유니스트(UNIST)와 같은 연구 중심 대학은 알앤디(연구개발)의 기반으로 잠재력이 있다. 부산과 대구는 도시의 종합 서비스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다 쪼개져 있다. 그러니까 광역단체들이 중앙정부만 바라본다. 이 공간을 압축해서 플랫폼 효과가 발생하도록 만들자는 얘기다. 첫 불씨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권역에 사람이 빠지는 흐름을 멈추고, 사람과 돈이 돌아오도록 흐름을 돌리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다음은 알아서 불이 번질 것이다.

플랫폼 효과가 발생한다고 해도 1위 플랫폼인 서울의 중력에 버티기 어려우면?

일단 여기가 수도권과 멀다. 자생력도 제법 갖춘 곳이다. 그런 동남권에서도 안 되면 다 어렵다고 봐야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도시의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스마트시티 시대가 온다. 그게 기회가 될 거라고 본다. 스마트시티는 자율주행부터 해서 기존 도시 인프라와 충돌하는 실험이 많다. 기존 도시 인프라에 덧대는 것보다는 아예 빈 땅에 세팅하는 게 더 유리하다. 그러니 지방에 공간이 비어 있다는 현실이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균형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인가?

효율은 기업 운영의 논리다. 균형은 국가 운영의 논리다. 사회에서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늘 어려운 구조다. 가만히 두면 수도권 쏠림을 제어할 수 없듯, 균형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사회의 쏠림을 제어할 수 없다. 사회가 정치라는 것을 만든 이유는, 한쪽으로만 재화가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주라는 것이다. 그러려고 행정 권력을 만든 것이다.

김경수 지사는 정치권이 공인하는 친노무현·친문재인 그룹의 적자다. 그런 그가 균형발전의 전략으로 대도시 집중을 내세우고, 집중을 만들어낼 첫걸음으로 과감한 토건 투자를 말한다. 뭐로 보나 기존 진보 담론과는 결이 다른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간 보수는 ‘집중’을, 진보는 ‘분산’을 자신의 키워드로 내세워 논쟁을 이어왔다. 김 지사가 제안하는 것은 ‘분산을 위한 집중’이다. 균형이라는 목표는 같다. 하지만 목표에 접근하는 경로가 상당히 달라졌다. 경남발 균형발전 2.0 구상은 국가 차원의 의제로 성장할 수 있을까.

ⓒ대우조선소 제공경남은 고부가가치 금속 제조업의 중심지다. 위는 옥포조선소 전경.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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