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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효과’의 진실 혹은 거짓

KAIST에 이어 대학들이 잇달아 입시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KAIST 입시 개혁안 또한 결국에는 제 잇속을 차렸을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2009년 03월 16일 월요일 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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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진기자단
2월27일 KAIST 졸업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서남표 KAIST 총장(대통령 옆)이 졸업생과 더불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남표 효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지난 3월5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입시 개혁안을 발표하면서이다. 이 안은 두 가지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올해 2010학년도 입시부터 일반 고교 출신을 150명 뽑겠다고 명시한 사실이 그랬고, 각종 경시대회 성적을 입시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점이 그랬다. 이렇게 학생을 뽑기 위해 카이스트는 입학사정관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했다. 그 뒤 고려대·건국대·한양대·한국외대·홍익대 등에서 입시 개혁안이 쏟아졌다(48쪽 상자 기사 참조).

이를 두고 이광형 KAIST 교무처장(미래산업 석좌교수)은 ‘마른 짚에 불이 붙은 격’이라고 말했다. 사회 전반에서 대학 입시에 대한 불만이 들끓던 상황에서 KAIST 입시개혁안이 불쏘시개 구실을 한 셈이라는 것이다. 서남표 총장은 ‘20년 뒤 한국을 먹여 살릴 인재를 얻기 위해’ KAIST가 새 입시안을 내놓게 되었다고 말했다. 획일적인 암기 위주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 사교육으로 사육되어 문제풀이에만 강한 학생은 이런 인재가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지난 몇 년간 KAIST가 자체 분석한 결과, 입학 성적과 입학 후 GPA(평점 평균)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 성적이 뛰어났던 학생이 KAIST에 입학해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암기 위주 교육과 사교육에 길들여진 학생의 경우 독창성과 독립심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김도경 입학본부장(신소재공학과 교수)은 말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한 교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학생은 시키는 일은 정말 잘한다. 남이 시작한 연구도 잘 따라 한다. 그런데 스스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일은 끝까지 잘 해내지 못한다.” 독창성을 생명으로 삼는 과학자에게 이는 치명적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KAIST는 창의적 인재를 발굴하는 쪽으로 입시 정책의 초점을 바꿔왔다. 2007년 서남표 총장 취임 이후 도입한 심층 면접이 대표적이다. 심층 면접은 교수 3인이 한 조가 되어 지원자를 한 시간 넘게 심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루에 10명 넘게 심사하기 어려운 시험 특성상 면접 과정에 투입되는 교수만 150명에 이른다.

4개 분야로 이뤄진 면접 평가 항목도 골치 아프다. △KAIST에 입학해 얼마나 공부를 잘할 것인가(탐구 역량) △졸업 후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대인 역량) △입학 후 얼마나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연구할 것인가(내적 역량) △특정 분야에 영재성이 있는가(영재성)를 고루 따져야 한다. 어려운 문제 몇 개 풀게 해 채점하면 끝이었던 과거와는 다르다. 김도경 입학본부장은 지난 2년간 쌓은 심층 면접 노하우 덕에 이번 입시개혁안을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능 잘 본 학생이 대학 공부는 처져

그러나 KAIST형 입시 개혁을 다른 대학이 쉽게 따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KAIST 개혁의 중심에는 서남표 총장이 있다.

취임 2년 만에 ‘대학 개혁의 상징’으로 떠오른 서 총장은 위로부터 권력의 신임과 아래로부터 여론의 지지를 받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취임 직후 신성장동력기획단장에 서남표 총장을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27일 KAIST 졸업식에 참석하며 서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KAIST 또한 입시 개혁안으로 정부 정책에 화답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교육비가 오히려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와 뒤숭숭하던 차에 KAIST가 이른바 공교육 정상화의 총대를 멘 형국이 됐다.

그런가 하면 서 총장에 대한 일반 여론의 지지는 이번 개혁안의 모태가 된 KAIST식 심층 면접을 큰 구설 없이 정착하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합격자를 발표한 뒤 2~3주는 엄청난 홍역을 겪었던 것 같다”라고 김도경 교수는 말했다. 심층면접 특성상 정량적 평가가 아닌 정성적 평가가 주가 되므로 심사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어, 불합격한 학부모·학생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거나 정보 공개를 청구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KAIST에 따르면, 이런 심층 면접으로 당락이 뒤바뀐 학생이 각각 21%(2008년도 입시), 29%(2009년도 입시)에 이른다. 곧 서류 심사에서 받은 성적으로는 합격할 수 있었던 학생의 21~29%가 심층 면접에서 떨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KAIST의 경우 현재까지 항의는 받았을지언정 고소·고발을 당한 예는 없다고 한다. 이광형 교무처장은 “그만큼 서남표식 개혁에 대한 일반의 신뢰가 두터웠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심층 면접 도입 이후 KAIST 지원자는 오히려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반면 일반 대학에서 이런 면접 방식을 도입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고려대의 경우 올해 수시 입학 전형에서 특목고 학생을 우대했다는 의혹을 받아 시·도 교육위원들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러니 이른바 서남표 효과가 다른 대학에서 통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KAIST 입시 개혁이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지도 아직은 의문이다. KAIST는 초등학교 때부터 경시대회 준비를 위한 사교육이 널리 퍼져 선행학습을 하는 학생이 상을 받는 경향이 있다며, 경시대회 성적을 입시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KAIST의 경우 서 총장이 그간 추진해 온 개혁 방안 자체가 사교육 절감 목표와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고 이 학교 재학생 ㅇ씨는 주장했다. 이를테면 서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2010년까지 ‘이중 언어 캠퍼스’를 실현한다며 전 과목 영어 강의를 추진한다. ㅇ씨는 고교 과정 내내 영어학원을 다녔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자신조차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차다며, “공교육만 받은 학생이 KAIST 수업을 과연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학업 성적이 일정 수준(평점 3.0) 이하일 경우 수업료를 차등해 물리는 방식 또한 신입생 일부에게는 불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 총장은 취임 이후 전체 학생의 수업료를 면제하던 기존 조항을 없앴다. 대신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는 최대 750만원에 이르는 수업료를 내게 했다. 그런데 KAIST가 늘려 뽑겠다는 일반고 학생의 경우 저학년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2학년까지 고교 과정을 마치고 3학년부터 대학 과정을 준비하는 과학고 출신과 달리 일반 고교 출신은 출발점부터 불리한 상황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특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고 KAIST 측은 밝혔다. KAIST에 합격한 일반 고교 출신 학생을 위해 입학 전 수학·물리 예비 강의를 개설하겠다는 것이다.

KAIST 입시 개혁안은 꽃놀이패?

KAIST는 올해 일반 고교 학생을 150명 뽑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선발한 일반 고교 출신이 50명인 데 비하면 3배 늘어난 규모이다. 그러나 이로써 KAIST가 정원(750명)의 20%를 일반 고교 출신으로 채우게 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오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학부 정원을 150명가량 새로 늘려, 이를 일반 고교에 할당하려는 것이 KAIST의 기본 구상이기 때문이다. 설사 교과부에서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해도 KAIST는 개의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일반 대학과 달리 KAIST 정원은 총장이 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보자면 이번 입시 개혁안은 KAIST에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취임 직후 밝힌 KAIST 발전 5개년 계획(2007~2011)에서 서 총장은 2010년까지 KAIST 학부 정원을 1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입시 개혁안으로 KAIST는 여론의 찬사를 챙기면서, 증원 목표에도 성큼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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