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 들끓게 한 인도의 ‘힌두투바’
  • 이유경 (프리랜서 기자)
  • 호수 628
  • 승인 2019.10.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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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가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인정한 헌법 370조를 폐기하면서 분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대립하는 현재 남아시아 정세를 1980년대 말의 데자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유경라마단 기간이었던 5월31일 카슈미르 청년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 당국은 라마단 기간 내내 모스크의 문을 폐쇄했다.

9월16일 인도 최북단 잠무카슈미르주 장관을 지낸 파룩 압둘라가 공공안전법(Publci Safety Act·PSA) 위반 혐의로 구금됐다. 지난 8월5일 인도가 카슈미르의 특별지위를 명시한 헌법 제370조 및 35A항을 폐기하며 그를 가택 연금에 처한 바 있다. 파룩은 82세로 인도 연방정부 장관까지 지낸 카슈미르 출신의 대표적 친인도계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4~5월 총선에서 스리나가르(잠무카슈미르 주도) 지역구에서 당선했다. 이런 거물 정치인조차 PSA 위반 혐의로 재판 없이 2년 동안 구금당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카슈미르 현실이다.

카슈미르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격한 분쟁지역으로 꼽힌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이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등 갈등을 겪으며 60%는 인도 땅, 40%는 파키스탄 땅이 되었다(<시사IN> 제625호 ‘스리나가르에서 들려온 어머니의 절규’ 기사 참조). 무슬림이 다수인 잠무카슈미르는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에 속해 있지만, 국방·외교 등을 제외한 영역에서 자치권을 인정한 인도 헌법 370조에 따라 특별지위를 누려왔다. 헌법 370조 폐기는 이 특별지위를 박탈한 셈이어서 분쟁이 격화되리라 보인다.

AFP 통신에 따르면 8월5일 헌법 370조 폐기 이후 카슈미르에서는 시위가 하루 평균 20건씩 발생했다. 9월15일 현재 시위 발생 건수는 722건, 구금자 수는 4100명, 이 가운데 170명이 정치인이다. 이 숫자만 보더라도 카슈미르를 향한 인도의 칼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 수 있다. 친인도계 주류 정치인들도 예외 없이 구금 혹은 가택 연금 상태다. 다큐멘터리 감독 샌제이 칵은 최근 미국 대안방송 <데모크라시 나우>와 인터뷰에서 “헌법 370조 폐기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카슈미르의 친인도계 정치인이다. 인도 중앙정부가 이 지역의 유일한 동맹 세력을 가장 곤란하고 어렵게 만들었다”라고 꼬집었다.

극우 성향의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은 헌법 370조 폐기를 당론으로 내건 바 있다. BJP 전신인 인도인민연합(Bharatiya Jana Sangh, 1951~1977)과 국민당(Janata Party, 1977~1980) 시절부터 당론으로 고수해왔다. 헌법 370조 폐기는 선거 때마다 BJP 단골 공약이었다. 힌두민족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이른바 ‘힌두투바(Hidu-tuva)’를 무슬림이 주류인 카슈미르 지역에 어떻게든 적용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오랜 기간 당론이었고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이었지만 실제 속전속결로 폐기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지난 7월 말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인도는 60만 군대가 주둔한 이 지역에 추가로 병력 3만8000명을 배치했다. 8월3일 카슈미르 남부 아마르나트 동굴사원을 찾은 수십만명의 힌두 성지순례단(일명 ‘야트라’)에게 서둘러 카슈미르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BJP 정부가 힌두 성지순례를 중단시킨 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헌법 370조 폐기라는 무리수를 둔 배경에는 카슈미르 주변 정세, 즉 지정학적인 전개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7월 파키스탄 임란 칸 총리는 미국을 방문했다. 파키스탄 육군 참모총장, 최근 카슈미르 상황을 가장 열심히 브리핑하고 있는 군 공보국장, 정보국 국장 등이 동행했다. 7월22일 백악관 정상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임란 칸 총리를 옆에 두고 “모디 인도 총리가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말은 카슈미르는 분쟁 영토이며 국제무대에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파키스탄 정부에 더없이 반가운 소리였다. 반면 인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인도는 카슈미르가 ‘국제분쟁 영토’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인도 양자 간의 문제이므로 제3국이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도는 최근 카슈미르 문제가 (양자 문제조차 아닌) ‘국내 문제’라고 주장한다. 국제 인권단체나 유엔의 카슈미르 인권보고서에 대해서도 인도는 ‘왜곡됐다’는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내정에 간섭 말라’는 응대로 일관해왔다. 인도 외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디 중재 부탁” 발언을 부인했다.

아프간 역시 양국의 또 다른 각축장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상 문제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평화협상은 아프간 정부는 배제된 채 미국과 탈레반 사이 담판으로 이뤄지고 있다. 9월7일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과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싶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탈레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파키스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파키스탄으로서는 미국이 떠난 뒤 아프간에서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반(反)파키스탄 정서가 강한 아프간의 주류 정치권은 인도와 동맹관계나 협조를 중요하게 여긴다. 아프간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또 다른 각축장인 셈이다.

지난 7월2일 미국 국무부는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의 분리주의 반군단체인 ‘발루치스탄 해방군(BLA)’을 ‘특별지정 글로벌 테러리스트(SDGT)’로 지정했다. 미국 방문을 앞둔 파키스탄 총리에게는 선물 같은 조치였다. 카슈미르가 인도 인권탄압의 블랙홀이라면 발루치스탄은 파키스탄 인권탄압의 블랙홀이다.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친인도 진영에서는 발루치스탄 이슈를 꺼내 방어했다. 미국이 BLA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것도 결과적으로 인도를 자극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남아시아 정세를 1980년대 말의 데자뷔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소련은 아프간에서 철수했고 카슈미르에서는 무장투쟁이 본격화됐다. 만일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 미국을 겨냥해 싸우던 아프간 내 지하디 전사들이 카슈미르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가 헌법 370조를 폐기하며 카슈미르 특별지위를 박탈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일 수 있다. 하지만 카슈미르에 대한 인도의 강경 정책은 언제든 시한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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