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 시사IN 편집국
  • 호수 626
  • 승인 2019.09.20 13: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폭력 문화에 깃든 감정 노동과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제들
엠마 지음, 강미란 옮김, 우리나비 펴냄

“여자들은 지속적이고 보이지 않는 감정의 부하 상태에 있다.”

1875년생 밀레바 마리치는 수학과 물리학에 능했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취리히 공대에 입학해 공부할 정도였다. 임신과 결혼을 하며 모든 학업이 중단됐다. 연구자인 남편과 물리학 논문 세 편을 함께 작업했지만 공동 명의로 발표하지 않아 밀레바의 업적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남편은 노벨상을 받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이 책을 읽다가 우리가 알던 세계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페미니스트이자 컴퓨터 엔지니어인 작가가 일상에서 느낀 균열을 만화 형식으로 쉽게 풀었다. 쉽게 읽히지만, 다양한 문헌 자료를 참고해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동의 문화와 성폭력 문화는 어떻게 다른지, 성추행과 유혹의 차이는 무엇인지 드러난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펴냄

“일본인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각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열한 번째 번역본이다. 1974년 국내에 처음 번역된 이래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종류의 번역본을 펴냈다. 이번 책에서는 문장을 현대적으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이나 사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30쪽에 걸친 용어·인명 풀이나 34쪽을 할애한 작품 해설은 이 책을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탈바꿈시켰다.
원작 그 자체에 대해서 긴 말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일본에 가보지 못한 저자가, 미국의 전쟁 수행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미국 내 일본통 등을 조사해 역사상 가장 화제가 된 일본 문화 탐구 서적을 펴냈다. 여러 한계가 명확함에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다.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유민석 지음, 서해문집 펴냄

“‘그냥 말’은 없다.”

혐오 표현이 만연한 시대다. 혐오 표현이란 무엇일까?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데 이 자유는 절대적인 것일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혐오 표현의 해악에 대처할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무수한 철학자들을 만났다. 언어철학자, 법철학자, 정치철학자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혐오 표현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혐오 표현이 소수자들을 침묵시키며, 침묵당한 소수자들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라는 언어철학적 논증에서 나온 것이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또한 법철학과 정치철학적 논증이 뒷받침하고 있다.

 

 

 

 

 

 

눈 속의 구조대
장정일 지음, 민음사 펴냄

“그 잘난 현대가 행방불명이다.”

장정일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28년 만이다. 장정일 작가는 1984년 <언어의 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발표한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으로 햄버거를 이야기했던 작가가 이번엔 맥도날드 경희대학교점의 폐점 소식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다. 표제작엔 ‘눈 속 구조대’가 등장한다. 이들은 신현대빌라를 찾지만 동네엔 현대빌라뿐이다. ‘우리가 사는 현대 그 잘난 현대가 행방불명이다.’ ‘양계장 힙합’에선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나는 문예지를 볼 때(2019년 기준) 시인들의 약력부터 보고, 1990년생 이전 태생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 등단한 지 10년만 되면 모조리 폐닭, 쉰내 나는 쉬인이지.’ 흔한 ‘작가의 말’ 한마디가 없다. 그래도 반갑다.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장대익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도 독특합니다.”

유명해지고 싶진 않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모임에선 왠지 위축된다. 바쁠 때는 ‘혼밥’을 하지만 사실 혼자 밥 먹는 게 좋진 않고 남이 볼까 신경이 쓰인다. 인맥이 넓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절친’은 두셋에 불과하다. 과학자 중에서 사회성만은 좋은 편이라고 자부해왔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도 별수 없이 사회적 동물이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인간의 사회성에 대해 공부했다. 우리가 ‘사회성이 고민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 뇌 용량이 허용하는 관계의 최대치는 150명이라고 말한다. 외로움을 느낄 때 뇌의 ‘배측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는데 타인에게 감정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반비 펴냄

“그래서 말인데, 너 강간당한 게 맞니?”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동시에 작은 논리적 허점도 보이면 안 된다. 2008년 8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아파트에서 성폭행을 당한 마리는 경찰서에서 여러 차례 진술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를 하고 만다. 경찰은 마리가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사건은 종결됐다. 범인은 자유롭게 여러 주를 돌아다니며 더 많은 여성을 강간했다. 만약 사람들이 마리에게 “너 강간당한 게 맞니?”라고 묻는 대신 범인에게 “너 강간하지 않았니?”라고 물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 미국 독립언론 <프로퍼블리카> 기자인 저자들이 사건을 꼼꼼히 파고들었다. 결국 범인을 잡은 건 피해자의 말을 끝까지 믿었던 여성 형사 두 명이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